이봉창에 이어 또 한 명의 의기남아인 윤봉길이 백범을 찾아오자 백범은 그에게 상해 홍구 공원에서 있을 예정인 천장절 행사장에 폭탄을 던질 것을 제안하였다. 윤봉길은,
"할랍니다. 일이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하고 응낙하였다.
천장절 행사에는 일본군 대장 백천의칙 등 일제의 중요 인사가 여러 명 참석할 예정이었다.
해사일은 4월 29일이었다. 윤봉길은 행사장을 미리 살펴보고 위치를 잡았다. 백범은 그에게 전에 자기가 토전양량을 타살하려 할 때 가슴이 울렁거리던 것과, 그때 문득 고능선 선생에게 들은,
득수반지부족기(得樹攀枝不足奇)
현애철수장부아(縣崖撤手丈夫兒)
란 구절이 생각하자 마음이 고요하게 되더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 뒷이야기를 김구 선생의 저서 <백범일지>에서 옮겨보기로 한다.
이튿날은 4월 29일이었다. 나는 김해산 집에서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였다. 밥을 먹으며 가만히 윤 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이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밥을 넉넉히 먹는 모양과 같았다.
김해산 군은 윤 군의 침착하고도 용감한 태도를 보고 조용히 내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지금 상해에 민족 체면을 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윤 군 같은 인물을 구태여 다른 데로 보낼 것은 무엇이오?"
"일은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윤 군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내나 들어봅시다."
나는 김해산 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 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떼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 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윤 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윤 군은 자동차 안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내게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말에 윤 군이,
"자동차 값 주고도 5, 6원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 군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 공원을 향하여 달렸다.
그 뒷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 매헌 윤봉길은 단상에 폭탄을 투척하였고, 일본의 중요 인사 다수가 죽거나 다쳤다. 이에 장개석을 비롯한 중국 정부가 비로소 한국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상해 임시정부는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행동하나하나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크리스천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음을 기억하여
오늘 하루 삶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의 올바른 행함을 갖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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