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
즐거운 아침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입술의 고백에 생각이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샬롬'을 외쳐봅니다.^^
저는 가끔 새벽 1시 20분에서 2시 사이에 깰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잠이 오질 않아서 고생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럴까? 고민해 보았지만 달리 답이 없었더랬습니다.^^ 2-3시간 밖에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하루 종일 힘든 상황들이 벌어지곤 하는데요, 오늘은 그 해답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새벽 2시 눈이 떠지면서 '잠님'이 달아났습니다. ㅎㅎ 이 일을 어쩐다! 오늘 어떻게 보낸다^^. 지금도 잠님이 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 2시 부터 홀로 다른 방에 가서 '말씀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암송하는 영성수련을 홀로 시작한지 3주째가 되는가 봅니다. 암송하면서 새벽기도회에 갔는데, 눈을 감아도 말씀이 암송되고 있고, 지금 타이핑을 치면서도 암송되는 말씀에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부러우시죠^^! 그러면 암송하는 기도 생활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새벽 일찍 잠님이 달아났지만, 그 시간을 암송을 바꾸어 놓아서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영광'을 향하여 나가는 존재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영광스러운 무엇을 향하여 나가는 본능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만이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영혼에 채워넣어야만 삶의 보람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번째 아담의 실수로 이런 영광스러운 존재였던 사람이 흙의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사람이 된 것이겠지요. 제가 시골로 내려온지가 벌써 3년을 지나 4년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시골 아저씨' 분위기가 몸에 배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서울에 올라가는데, 올라가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서울의 웅장함을 느끼게 됩니다. 서울 사는 분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시골에 사시면 느낄 수 있는 이상한 것입니다.ㅎㅎ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왜 그럴까요? 땅의 영광이 서울에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땅의 영광이 최고인 줄 알고 땅의 영광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땅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같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영적인 세계가 보일 때에야 비로소 땅의 영광이 하찮아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39-41절에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매우 심오한 말을 사도 바울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놀랍지요?^^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듯이, 결국 땅의 영광이 있다면 하늘의 영광이 있는데, ,어떻게 땅의 영광을 하늘의 영광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 어떻게 하면 하늘의 영광에 우리가 다다르며 그 영광을 소유할 수 있을까?하는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심어놓으신 본능적 욕구가 발산되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고리도전서 15장에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시선을 잡는 것은 '심는 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심어야 신령한 몸으로 다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무엇으로 심어야 합니까?^^
이 해답은 48-49절에 나오는데,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면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령한 부활의 존재가 될 것입니다. 아하^^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속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그리고 내 인생의 왕으로, 내 인생의 대제사장으로 영접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를 주님의 것으로 드리면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되는 것이요, 그 순간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비전은 '육에 속한 불쌍한 존재'가 '신령한 존재의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을 실현시켜 가십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은 '나'를 육에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신령한 사람으로 변모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엄청난 비전이지요. 물론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러나 '나'라는 존재를 '나' 자신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능력이 내게 있음을 안다면 이것은 엄청난 비전에 속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이 엄청난 비전의 역사에 우리의 삶이 동참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느 날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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