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현실과 유사
2.1. 현실의 시간
2.2. 주기와 시간 사이
2.3. 중간 시간대
3. 간격과 괴리
4. 유사 시간과 허상
5. 비슷한 시간과 현재의 시간
지심 정경호
(*시대를 바라보면서 깨닫는 것들을 고유하며, 함께 고민하는 문제들을 독자들과 나누면서 작은 책들을 써가는 곳입니다. 이 글들은 모두 저작권을 갖습니다.)
시간은 금이다. 아니 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그런데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 특징을 갖는 반면, 결코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 버린 시간은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지만, 동시에 영원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은 허상을 보게 한다. 무엇이 진정한 시간이며, 만일 이런 시간이 우리의 현실적이며 진실한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 만들어가는 시간은 인생의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는가? 시간이 만일 작품을 만들어 간다면, 그 작품 안에 있는 시간은 참됨을 반증한다. 그러나 작품이 아닌 허공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현실을 살지 못한 시간의 허비일 것이다. 이것은 시간을 소유하지 못한 허망한 시간의 반증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소유하느냐 아니면 가짜 시간이라는 유사 시간을 지내느냐를 인생이라는 삶을 통해서 나오는 작품으로 증명하게 된다.
인생은 하나의 작품을 써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한 작품이 완성되면 그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과 작품을 써가는 마치 글을 쓰는 연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삶을 연재하는 시간의 작가이다. 이 시간의 작가라는 개념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어떤 작품을 써가는지 인생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의 인생을 시간으로 써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연재 작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우리의 이와 같은 상상은 너무 깊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시간으로 내 인생의 작품을 연재한다 생각해 보라. 나는 내 인생을 작품화하고 있는 또 하나의 시간 예술가이다. 그리고 이 예술의 작품 속에 무엇이가를 넣어가야 하는 사명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에 온갖 사물들과 동물들과 생명들을 사냥하여 잡아온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칸에 집어 넣는다. 그렇다. 이것은 시간의 화물칸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화물칸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서 우리는 1초, 1분, 1시간, 하루, 1주일, 1년 등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1주일은 너무 길고 1년은 상상 이상이다. 그리고 1초나 1분은 너무 빠르다. 그래서 우리의 분류 방식은 하루가 적당한 것 같다.
예를 들어서 하루라는 시간을 한 칸으로 비유하여 바라본다면, 이것을 글쓰는 작업에서 ‘챕터’로 볼 수 있는 것일까? 만일 이런 상상이 타당하다면, 우리의 하루는 한 챕터를 이룬다. 그리고 하루라는 시간 동안 놀랍게도 그 안에 어떤 내용의 맥락을 이루며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하루의 시간이 끝날 때에는 그 날의 챕터의 핵심적 사건들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의 시간이 사라지는 무無가 되기 십상이다. 다시 말하면 한 챕터는 하루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 상징화된 것을 자신의 의미를 부여해서 기념하지 않으면 그것은 허무함과 사라짐의 망각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한 챕터와 다음 챕터 간의 상호 연결점 혹은 연관상이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한 챕터의 사라짐은 결국 인생을 이야기할 때, 챕터와 챕터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한 챕터가 사라지는 순간 문장들이 허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의 시간이라는 챕터가 다음 하루라는 챕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시간을 ‘성찰’로 다루어가야 한다. 우리는 나의 하루를 의미 없는 시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하루라는 시간이 끝나서 다음 챕터로 넘어갈 때 반드시 자신의 시간을 다루며 의미와 상징을 부여해야 하니다. 이것이 주기와 시간 사이에 해야 할 우리의 사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작품은 사라지는 허무함만이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하루라는 챕터의 시간과 다음 날이라는 챕터의 시간을 살피고 있다. 어쩌면 이 시간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재미있는 상상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한한 시간이기에 이것은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대략 많이 잡아서 100년이라는 시간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큰 틀로 죽음 앞에 선 영혼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얼마나 큰 불행인가? 이 불행의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인생을 글로 따진다면, 시간과 시간 사이의 중간 시간대를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 중간 시간대는 마치 영원을 맞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아무리 중간 시간대가 영원을 맞이하는 것을지라도 여전히 이 시간은 카이로스가 아닌 크로노스의 시간임을 알아야 한다. 크로노스 안에서 우리 시간은 여전히 한계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자연이 계절을 맞이하듯이 우리 또한 삶의 계절을 타게 된다. 10대, 20대, 30대, 40대, 그리고 50대 이후의 시기를 우리는 맞이한다. 그리고 10대와 20대 사이의 중간의 시간을 촘촘하게 하루의 챕터들의 잠들기 전의 시간의 쌓임을 통해서 통과하게 되고,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중간기의 영원성이 찰나로 지나가게 된다. 그렇다. 인생은 찰나의 중간기들을 통해서 더 깊은 잠에 빠지고, 동시에 새로운 날을 마치 오늘을 다시 맞이하듯이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인다는 것보다는 숙명적으로 그 안에 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지배 안에서 거하게 되고, 동시에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몸부림은 챕터와 챕터 중간긴의 영원성이라는 착각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중간기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영혼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어쩌면 이 중간기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영감을 얻고, 이 얻음을 통해서 내일의 오늘을 다시 살아가며 새로운 작품의 삶을 써가는 것일지 모른다.
하루라는 챕터와 챕터의 중간기의 시간이 계속 반복되면서 영혼은 하나의 괴리감을 느낀다. 그것은 간격이 달라지는 듯한 착각이다. 이런 말이 있다. 20대 때에는 자동차가 20킬로미터로 주행하는 것 같고, 30대는 30킬로미터, 40대는 40킬로미터로 주행하듯이 시간이 점점 더 빨리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 듯이 시간은 정확한 흐름과 빠르기로 흘러간다. 물론 우주 안에서 모든 시간은 동일한가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그러나 지구 안에서 우리의 시간은 동일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챕터와 챕터의 중간기의 간격이 달라지게 느끼는 것일까? 왜냐하면 늙기 때문이다. 시간의 간격은 동일하다. 그러나 인간 육체의 반응속도는 달라진다. 똑같은 시간에 20대가 달려갈 때와 60대가 달려갈 때 그 속도는 상당한 간격을 보인다. 그처럼 동일한 시간 안에서 무엇인가를 행할 때 늙어가는 존재는 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시간의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간격에 대한 괴리감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간격이 챕터의 빨라짐으로 다가온다면, 마땅히 자신의 생각도 그렇게 인정하고 그 안에서 적응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먹어갈수록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이라는 하루에 집중해야 한다. 그저 늙어진 영혼은 이제 자신의 육체에 맞추어서 시간을 느리게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그다지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20대 때 행하던 것보다 60대 때 하루의 챕터 안에서 행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으리라! 왜냐하면 지금까지 평생의 순간의 챕터 안에서 간격과 괴리를 통해서 얻게 된 지혜가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리는 이제 나이가 먹은 존재의 재료가 되고, 그다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시간을 느리게 하는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 경허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진 존재라 할지라도 모든 영혼이 시간의 능력자로 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젊을 때부터 시간과 시간의 챕터의 간격 안에서 괴리에 대한 고심을 하지 않은 사람은 나이가 먹을 때 ‘시간’이 ‘가짜’로 느껴지기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모두 허상으로 비추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채로도 지혜로도 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이야기가 자신의 삶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행한 것이다. 불행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챕터와 챕터의 간격 안에서 다가오는 괴리’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단련시켜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인생의 시간이 유사 시간이 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이 허상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의 간격은 커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챕터의 훈련을 잘 받아서 ‘영성의 길’을 제대로 걸어온 존재는 시간이 비슷하다. 젊을 때의 챕터가 나이가 먹은 상태의 챕터와 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시간에 대한 중간 시간이 어제나 오늘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 관리자는 행복한 영혼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신의 시간 관리가 자신에게 지혜였고, 이 지혜는 영혼의 힘으로 강력하게 공급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시간의 계산’이라는 제목으로 시간 될 때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눔을 하려고 한다. 조금 기괴한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 시간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이곳에 방문하시는 독자분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된다. 삶의 여러 이야기들을 조금은 심각하게 그리고 조금은 가볍게 다루는 이곳이 ‘사랑방’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지심 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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