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관상 기도를 통한 영적 성숙에 대한 연구 12

카테고리 없음

by 지심 정경호 2005. 12. 30. 11:35

본문

반응형
 

# 단순함의 기도(prayer of simplicity)

단순함의 기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작크 보수에(Jacques Bossuet: 1627-1704)인데 성녀 데레사는 이러한 기도를 ‘습득된 잠심의 기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데레사는 이 기도를 관상기도의 1단계인 ‘주입된 잠심’과 구별해서 사용함을 알 수 있다. 즉 단순함의 기도는 주입된 잠심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이것을 ‘단순한 응시의 기도’, 혹은 ‘하나님 현존의 기도’ 또는 '신앙에 대한 단순한 비전(vision)의 기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기도를 보수에는 하나님을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응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화된 수덕적 기도, 즉 수동적인 기도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형태의 기도에 추리적 묵상이 도달하면서 추리적인 명상에서의 지적 능력은 ‘단순한 지적 응시’로 바뀌게 되며, 정감기도의 정감들은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애정의 관심과 하나가 되어진다. 기도의 수준의 이동은 바로 수덕적 기도 혹은 능동적 기도와 신비적 기도 즉 관상기도간의 다리 노릇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기도의 방법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단지 응시하고 사랑하는 것만 하면 되는데, 이 기도에 들어갈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첫째, 너무 급작스럽게 기도에 들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둘째, 묵상과 정감기도를 하는 동안에는 억지로 끝내지 말고 이러한 기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면 즉 어떤 특수한 추리적 묵상이나 정감의 활동을 하지 않고도 깨달음의 은총이 오면 굳이 그러한 기도를 할 필요 없이 애정 어린 응시나 사랑의 응시만을 하면 되는 것이다.

기도자는 특별히 이 기도를 하는 동안 하나님께 고정된 사랑스러운 관심을 유지하도록 애써야 하는데, 여기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억지로 하게 되면, 사랑의 응시 안에서 일어나는 분심과 나태의 현상 앞에서 너무 애씀으로 단순성이 파괴되어서 수동적인 태도가 파괴되고, 이 파괴는 바로 자신의 힘으로 하는 기도가 됨으로 단순기도가 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함의 기도를 행할 때에 다음과 같은 유익(열매)들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첫째, 생활이 단순해지고, 이 단순함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지속적인 잠심으로 이끌리게 되며, 둘째, 기도자가 일상생활의 직무에 바쁠 때에도 항상 내적으로 하나님을 응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며, 셋째, 외적인 모든 활동은 단순함의 정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열망을 수행하게 되고, 넷째, 정감기도의 모든 장점들 즉, 정감기도가 단순기도의 탁월한 준비가 되는 것처럼 단순기도는 주부적 관상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써 준비되게 된다. 단순기도는 수덕생활의 최고 단계의 기도인데, 이 기도를 통해서 수덕의 최고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관상(신비)의 단계로 흘러갈 수 있는 입구의 역할을 한다는데 단순기도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 주부적 관상(infused contemplation)

지금까지 관상에 대하여 이야기해 왔는데, 다시 한번 관상에 대하여 논한다면, 관상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지식으로, 이 과정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즐거움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특별히 주부적 관상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신비적인 주입된 잠심으로 인하여 지혜와 은사를 얻게 되고, 이러한 지혜와 은사의 작용에 의해서 체험되는 하나님에 관한 복된 지식을 의미한다. 이것을 아빌라의 데레사는 ‘주입된 잠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관상은 은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주부적 관상은 은사일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은사나 비상한 은혜(gratia gratia data)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지만, 이것들은 개인의 성화를 이루어주지 않는데 비하여, 주부적 관상은 이 은총 안에 들어온 이의 영적 성숙의 유익을 지향하게 함으로 성화의 역사를 허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부적 관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 현존의 체험’은 관상의 기본적 특징으로써,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것을 ‘정화적 관상’이라고 정의한다. 둘째, 기도자가 정확히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초자연적인 것이 자신 안에 스며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고, 셋째, 기도자가 누리는 체험은 자시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체험되고 있음을 알게 되며, 넷째, 신적 피동성(patiens divina), 즉 기도자가 자신이 원할 때 이 기도의 차원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체험시켜 주신만큼만 체험할 수 있는 것과 다섯째, 관상 중에 누리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명확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나타나며, 여섯째, 이 관상은 기도자에게 하나님의 활동 안에 있다는 안정감과 확신을 가져다주며, 일곱째, 기도 자에게 은총 안에 있다는 어떤 윤리적 확신을 가져다주며, 여덟째, 이러한 체험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아홉째, 이러한 신비적 일치는 변화의 동요-오랫동안 신비적 일치가 가능했다면-그것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며, 열째, 기도의 초보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써 이것은 관상가가 체험하게 되는 강한 영적 기쁨으로 인해서 기도자의 감각기능들에 놀랄만한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현상이고, 열 한 번째, 이러한 신비적 관상은 강렬한 탈혼의 상태에 빠지게 하는 수도 있으며, 열 두 번째, 기도자가 전에도 계속해서 무엇인가 덕행을 하려고 했어도 얻지 못했던 그러한 것들을 순식간에 이루게 되어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부적 관상에 들어온 사람이라도 언제나 더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을 감지할 때까지는 추리적 관상이나 단순함의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은총이 관상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면 즉시 기도자는 스스로 행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멈추고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관상기도의 기본인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