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의 기도는 관상기도의 한 단계로서, 이 기도는 모든 내적 기능이 점차적으로 하나님께 사로잡히게 되는 단계인데, 정적의 기도나 기능의 휴지와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정적의 기도에서는 의지가 사로잡힌다면, 기능의 휴지는 지성이 사로잡히게 되고, 일치의 기도에서는 이러한 모든 내적 기능들이 사로잡히게 되는데, 오직 자유로운 것은 외적, 신체적 감각만은 자유롭게 된다는데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일치의 기도는 말로써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제까지 이야기되어 온 기도의 등급과는 그 차원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관능이 하나님 안에 몰입되는 것이 잠시 동안 머물게 되나, 강도가 증가되면 여러 시간으로 연장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일치의 기도에 대하여 아빌라의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은 이것을 마치 이미 지나온 궁방에서처럼, 잠든 상태와 같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잠든 상태라고 말한 것은 거기서는 영혼이 자는지 안 자는지 아리송하여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선 우리의 정신 능력이 모두 다 잠이 든 듯, 세상도 자기도 잊어버리고 깊은 잠을 자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상태가 계속되는 얼마 동안 우리는 감각을 잃게 되고 무엇을 생각하려해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이 경우 사랑을 한다면, 사랑하는 그것조차, 어떻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것마저 모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감미로운 죽음-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작용에서 해탈한 영혼의 상태-그렇습니다, 하나님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느라 영혼은 육체를 떠난 듯한 감미로운 죽음입니다.…거기(제 사 궁방)에는 독한 짐승들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도 조그마한 도마뱀들은 날쌔기 때문에 어디고 스며드는 것입니다.…그러나 여기(제 오 궁방)에는 제아무리 날쌘 도마뱀이라도 들어오질 못합니다. 상상도 기억도 오성도 이 궁방의 행복을 막지 못합니다. 다짐하여두거니와, 진정 하나님과의 합일이 이루어지면, 악마는 여기에 들어서지도, 해를 끼치지도 못합니다.
일치기도의 징표로는 첫째 분심이 없고, 둘째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일치에 대한 확신이 있으며, 셋째 지루하지도 싫증이 나지도 않게 된다. 이러한 기도를 아빌라 데레사는 『영혼의 성』에서 제 5 궁방에서의 현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일치의 기도의 단계에서 따라오는 동반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신비적 접촉(mystical touches), 둘째, 영혼의 이탈(flights of the Spirit), 셋째, 불같은 사랑의 화살(fiery darts of love), 넷째, 사랑의 상처(wounds of love)"로 네 가지의 현상들이 대표적이다.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데레사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비적 접촉’으로서, 영혼이 이러한 접촉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접촉의 감각을 지니게 되고, 이 감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어서, 때때로 영혼이 탈혼의 상태에 떨어지기도 하며 그와 비슷한 정도의 강도 속에 머물게 되는데, 이러한 접촉은 ‘본질적 접촉’이라는 가장 숭고한 접촉으로 이르게 된다.
영의 이탈, 즉 영의 도피는 하나님께 대한 강하고 돌발적인 사랑의 충동의 현상으로, 이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에 목말라서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기에 하나님에 대한 한 마디의 표현으로도 큰 충동을 받고 육신을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들의 주의를 요하는 것은, 아빌라의 데레사가 말했던 것처럼, “자연적 원인에서 나오는 사랑의 충동-이성으로 억제해야 할 충동-과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수동적인 신비적 접촉을 구별해야 한다.”
‘불같은 사랑의 화살’은 불화살에 과녁에 접촉되는 것처럼, 어떤 내밀한 접촉으로써, 이 접촉은 영혼을 태우게 되고, 그리고 완전히 꿰뚫어서 사랑의 불로 영혼을 태워버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영혼은 상처를 입게 되는데, 이 상처는 즐거움의 상처로써,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욕망이 일어남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육신을 미워하는 증오가 생기게 된다. 즉 사랑의 불화살로 인해 영혼의 상처가 생기게 되는데, 사랑의 불화살은 피조물을 통해서 얻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서 생겨나게 되지만, 그러나 사랑의 상처는 하나님의 활동하심과, 그 신비에 관한 지식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다음카페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를 중심으로 쓰여지는 글입니다.
저희 공동체에 들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지붕과 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