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영한 공평의 규
샬롬^^
오늘도 좋은 아침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실줄 믿습니다.
"묵상의 오솔길, ConQT"라는 책을 2013년에 출판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출판작업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한 권 낸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닌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1년의 작업에 책을 한 권 출간한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설레이기도 하고, 또한 두렵기도 합니다. 작년 한 해 얼마나 마음이 졸이고 엄청난 무게가 느껴지던지, 책을 작업하는 일 뿐 아니라,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물론 감사한 일도 많았지만 말입니다. ^^ 누구나가 다 그러하시겠지요! 어느 순간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신가?'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 '이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묘하십니다. 이제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만이 이생의 길이를 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절반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제 절반이 인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됩니다. 어느 때에는 '이것'이 옳아 보이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저것'이 옳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이 제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 수 없음을 항상 느끼게 됩니다. 놀랍지요.^^ 제 생각은 저를 구원시키지 못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살게하고 제게 구원의 생명력을 허락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외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새벽에는 천사들 이야기 예수님의 심판권에 대한 이야기 앞에 머물러 있습니다. 천사들을 바람으로 사역자드를 불꽃으로 삼으신다는 히브리서의 말씀 앞에서 제 마음이 머무는 곳이 한 구절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 8절에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평하다"라는 표현이 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다'는 말을 사모합니다. 똑같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엄청난 부귀를 누리고 삽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능력 때문에, 아니면 그 사람의 처지와 형편때문에 엄청나게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놈의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막 살려는' 모습도 보입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막 산다'는 말이 실감이 나게 됩니다. 무엇을 해도 되지 않을 때에는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멸망하지 않으면 '나'라도 멸망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 잘 사는 사람은 그 마음에 '인간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종종 봅니다. 마음이 차가워집니다. 왜냐하면 '독선적인 이기주의'라는 사탄의 유혹이 그 영혼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는 '중용'입니다. 그리고 '자기비움'입니다. 이 두 단어는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보이면서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중용해야지요. 그리고 자기비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의 규는 '절대적인 중용'이요, '절대적인 자기비움의 심판'이 아닐까요? 갑자기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쪽지가 어려워지면 좀 그렇지요^^! 다시 돌아와서, 저는 그래서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 날 우리 모두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진정한 축제의 예배를 드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영영한 공평의 규'가 오늘도 우리의 삶 한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어느 날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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