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대한 생각들
[스크랩] 샤마임 영성 이야기 157 / 질투와 우정
지심 정경호
2014. 3. 16. 06:53
희망 - 꿈이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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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와 우정
샬롬^^
거룩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크신 은혜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질투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인기있기를 소원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사람들에게 인기있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인정함을 받기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행할 때에도 '자기'가 중심 되고 싶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아'라는 '자기'가 살아있는 한 놀라운 것은 사역에 '행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집사님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역자끼리 서로 그렇게 적대하는 모습을 보면 성도들이 시험이 빠집니다." 저를 향한 말씀이라 제 스스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러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우습게 되었더군요.^^ 마치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역자들의 모습 때문에 그렇게 비추이고 있다는 점이 우습기도 하고, 앞으로 더 처신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나'라는 존재가 그 안에 들어가서 '영광'을 받아 먹으려는 것은 '원죄'에 속한 대죄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는다는 것에는 '기독교의 무'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말은 '나는 없는 존재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묵묵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조심스럽게 감당하면 그뿐인 것을, 그것을 통해서 그 이상의 무엇을 얻으려는 것은 '선악과'를 먹고자 하는 사람이 악함임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나 문제는 '회복되지 않는 자아'에 있는 것 같네요.^^
오늘 저는 사울의 질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요나단의 '우정'의 존귀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 질투합니까? '인기' 때문입니다. '천천'은 자기에게, '만만'은 다윗에게 돌린 노래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왕권이 이제 다윗에게 넘어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왕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자의 것'임을 사울은 지금도 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고 물러 날 때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 참 인생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끝까지 틀어쥐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은 그 공동체나 국가에서 '암'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겠지요. 사울은 지금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과 부귀와 권세를 빼앗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투'는 눈을 멀게 합니다. 그리고 질투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게 합니다. 내 안에 질투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그리고 봉사하는 장소에서, 또한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면서 '질투'가 가득하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같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나단은 사울의 아들로 '왕권'을 이어받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을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우정'이지요.^^ 우정이 왕위를 뛰어넘었습니다. 요나단은 사람을 보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욱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이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윗에게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적인 사랑'으로 말입니다.^^ 사무엘상 19장 4-5절 말씀에,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사울을 설득하면서 다윗과 사울 사이에서 중재하는 요나단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다윗이 다윗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요나단의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질투와 우정!^^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질투하면 불행한 사역을 행하게 됩니다. 도리어 축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나아가는 우정의 삶에 하나님의 천국의 역사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사랑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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