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철학 이야기
[스크랩] ▣ 지심과 신학하기 13 / 본회퍼 읽기2-계시의 우발성
지심 정경호
2014. 7. 11. 10:00
그대라서 고마워요 - 임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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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의 우발성
샬롬^^
지심 정경호 목사입니다.
지금 우리는 신학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읽기는 '신학자'들의 원저서를 함께 읽어가는 것입니다. 원래 모든 공부는 '텍스트'를 함께 읽어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 그런데 권위 있는 신학자의 책을 직접 읽은 것은 매우 난해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답이겠지요. 그 신학자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 100%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측면에서 접근해가다보면 어렴풋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읽어가다가 제 해석과 접근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하면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여러분들의 새로운 시각을 공유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계속해서 본회퍼를 읽어가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둔스(Duns)와 오캄(Occam) 이래로 계시의 '우발성'에 비중을 둔 모든 신학의 관심이 이해될 수 있다. 계시의 우발성은 이성 초월을 주장하도록 만든다. 즉 이성에 대한, 그리고 -잠재적 실존으로부터 전개되는-모든 가능성에 대한 계시의 절대적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아를 진리 안에 세우는 계시, 즉 하나님 이해와 자기 이해를 제공하는 우발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의 '실증성'(Positivität) 속에서 단지 긍정되거나 부정될 수 있을 뿐이다. 즉 이 사건은 현실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적 실존에 관한 '사색'(Spekulation)에 의해 정립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자유 속에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긍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기 선사'(Sichgeben), 부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기 거부'(Sichversagen)의 사건이다.
-본회퍼의 『행위와 존재』, 94. 중 "계시의 우발성"에 대한 내용에서-
본회퍼는 '계시의 우발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계시가 우발적인 것'일 수 있는가? 그리고 계시가 우발성이라면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계시의 절대적 자유'라는 본회퍼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하심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본회퍼는 이 부분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자아를 진리 안에 세우는 계시." 이 말의 의미는 계시는 자아를 진리 안에 세워준다는 것인데, 자아를 진리 안에 세워주는 계시가 왜 '우발'인가? 우발은 '필연'의 반대이다. 그래서 계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필연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유는 결코 필연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우발성'으로 다가올수밖에 없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발성이라는 말인가?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간 편에서 우발성을 지닐 때 더 우리에게는 은혜롭게 다가올 수 있다. 왜냐하면 우발성적 예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거부할 수도 수용하실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유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시의 우발성은 상당한 의미를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다. 계시가 우발성이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본회퍼를 읽어가면서 극단적인 논리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의문들과 논리의 전개는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나님의 자유 안에 기초하고 있는 계시는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없이 감격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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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어느 날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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