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대한 생각들
[스크랩] 샤마임 영성 이야기 261 / 어찌하여 주께서도!
지심 정경호
2014. 7. 21. 07:14
이 땅에 오직 - 꿈이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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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하여 주께서도!
샬롬^^
지난 25일 동안 저는 13가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작정기도가 끝났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제 마음속의 의도를 간파하시고, 도리어 다른 부분을 이야기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40일 금식으로 부르실 때에도, 제 마음은 '불의 종'을 꿈꾸었는데 '더 깊이 공부하는 신학도'의 명령을 내리셨던 신학대학교 2학년의 시기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불을 받았더라며 아마도 '사이비 교주'가 될 가망성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ㅎㅎ 왜냐하면 그때 당시 제 기도의 분량이 12-18시간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우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저와 함께 하던 기도의 신학도들이 3-40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문제가 있었던 시기였나 봅니다.^^ 신학과 말씀을 공부하라고 신학교에 보냈더니 맨날 산기도하러 올라가고, 부흥회를 어떻게 인도해서 세계적인 스타 목사가 될 것인가를 계획했던 제게 주님의 40일 금식 응답은 "신학해라"였습니다.^^ 이 응답이 얼마나 제게는 다행있는지요. 그리고 어제의 응답도 "마음을 비워내라"라는 말씀으로 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마음을 비워내고 있습니다. 너무 큰 욕심을 갖는 것은 영혼의 독을 품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요?^^ 그러나 제가 포기할 수 없는 단 한가지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모두 소유하는 것입니다.^^
참, 한 가지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한 주간은 제가 매년 한 번씩 다녀오는 '단기선교여행'(비전트립)이 있습니다. 어제 의료선교팀과 단기선교팀을 마지막 훈련 시켰는데, 다음 주에는 제가 한국에 없습니다.ㅜㅜ 그래서 부득이하게 카페가 조용할 것 같습니다. 제 대신 여러분의 글이 카페의 '불'을 밝혀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오늘도 모세의 절망감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5장 22-23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 말 참 많이 들어본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에 들어가려고 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으려 하 때 "어찌하여"라고 우리 자신의 믿음 없는 심령이 탄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말 속에는 우리 자신의 '절망'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적 생각으로 근시안적인 해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이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받들어서 애굽의 바로를 만나자, 도리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괴로움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종들이 모세와 아론을 더 원망합니다. 모세가 고백하기를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탄식입니다. 모세의 기대는 바로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전했을 때에 즉시 '허락'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세의 생각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세의 생각보다 더 큰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30년 동안 노예근성을 가졌더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을 잊어버렸거나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애굽의 하층민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이 깨어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생각은 '즉시'였지만, 하나님의 뜻은 더우 새롭게 하는 신앙의 형성을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게 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 또한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셨던 자신들의 하나님임을 고백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주께서도!"라는 모세의 타원은 마치 우리의 인내하지 못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탄원은 앞으로 구원을 체험하게 되는 모세의 작은 신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인내는 우리에게 기적과 구원의 놀라운 파노라마를 체험하게 합니다. ^^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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