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평과 검
샬롬^^ 오늘도 주님의 크신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여렀을 적에 동네 친구와 싸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말 다툼으로 시작된 싸움이 주먹싸움까지 갔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코가 깨졌고, 그 친구는 옆구리가 심하게 다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형들이 말려서 끝난 싸움인데 이미 잊혀진지가 오랜 사건입니다. 원래 사내아이들은 싸우면서 우정을 깊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간혹 그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제 코 라인이 비뚤어져 있거든요.ㅎㅎ 그 친구 주먹이 얼마나 세던지...^^ 얼마 전에 이 친구를 만났는데 어느 교회에서 집사님으로 잘 섬기고 있다 합니다.^^ 오늘 갑자기 싸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살면서 간혹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관계가 어려워지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맞기게 되면, 진실이 밝혀지기도 합니다만, 간혹 어떤 문제는 약간 싸우더라도 거론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시시비비를 너무 따져도 문제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은 서로의 이해를 위해서 이야기하며 다루어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내할 때는 인내하고, 또 토론 할 때는 토론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마태복음 10장 34-39절 말씀입니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오늘은 "화평"과 "검"에 대한 묵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화평'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칼'을 빼들고 오신 '의사'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인류가 병이 들어서 잘못된 죄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세상을 향하여 '칼'을 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다보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우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런 심한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매우 심오하면서 난해한 말씀임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흔히 영성신학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두 가지 단어를 이야기합니다.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과 '신화적 회원 의식'이라는 용어입니다. 이 두 단어를 통해서 본문을 읽다보면, 이 말씀은 '당연한 말씀'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나'라는 존재가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서를 변형시켜 갑니다. 부모님께 복종하게 되고,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정서에 복종하면서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자신을 만들어 갑니다. 또한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지역이나 나라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그 안에서 '회원'이 되어서 보호를 받으려는 성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지역과 나라의 사상에 동화되게 되고, 그것이 전부인양 자신의 인생과 사상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속한 가정이나 단체에서 '거짓된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나라의 종교성이 '진리와 반대의 길'로 나갈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역사, 선 보다는 악을 선택하는 역사들이 이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그것이 최고의 선이요, 최고의 이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신화적 회원의식'이라는 강력한 힘의 상징은 이슬람과 같은 세력이 아닐까 합니다.^^
죄를 짓는 사회, 그리고 타락의 문화 속에서 가정이 이루어지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나라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배타하는 세상에 예수님께서는 '화평'이 아닌 '검'을 들고 오셨습니다. 고쳐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세상과 화평하면 우리에게는 구원이 주어지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적대시하며, 진리와 생명으로부터 멀어져가게 하는 힘이 만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는 구절에 속하고 있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절박하며 당연한 말씀이 되어집니다. 그렇다고 오늘 말씀이 부모를 미워하고 가정을 파괴시키라는 메시지가 아님을 우리는 잘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세상과 타협하고 싶어하는 성향에 대한 메스를 주님께서는 지금 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죄와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반대로 가는 길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타락은 멸망으로 가는 것이기에,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생각했던 가족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최고로 여겼던 것과의 결별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부분에서 '자신의 죽음'은 '새로운 태어남'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39절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라는 말씀은 진리요, 생명을 얻는 길과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칼을 선택하는 것이 화평을 선택함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훨씬 낳은 길입니다.^^
어느 날 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샤마임 출판신청 일백교회,일백선교200원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