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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초 8) 허무주의를 마감하다:-소크라테스의 등장(기원전 469-399)

인생과 철학 이야기

by 지심 정경호 2007. 1. 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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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허무주의를 마감하다: -소크라테스의 등장(기원전469-399년)

 

 


  그때 세계에서는
  BC451년: 로마 최초의 성문법 12동 판법 제정
  BC403년: 중국, 전국시대 시작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말기쯤에 가서는 자신들도 회의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는 허무주의에 이르는 과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은 고르기아스라고들 말한다. 고르기아스(Gorgias, ?-380 BC)는 백 세 이상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해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말로 표현하기나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론적인 철학보다도 윤리적인 실천성이 더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었으나, 고르기아스는 보편적인 덕은 거부하고 개별적인 덕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사회가 학문과 사상의 병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면 그것을 치유할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되지 못하면 사회는 정신적 혼란, 가치관의 붕괴, 짙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소피스트 말기가 바로 그런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 새로운 치유적 책임을 맡은 인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 BC)였다. 그는 너무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철학적 사색에만 잠겨 있는 남편에 대해 부인의 행패가 지나쳤기 때문에 철학자의 부인은 모두 악처일것이다고 농담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몇 가지 특성은 그는 대단한 추남이었던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는 유명한 인물은 그에 해당하는 신화의 주인공 신으로 비유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플라톤을 아폴론으로 비유한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실레노스(Silenos)신에 비유되고 있다. 그 신은 대단한 추남 신이어서 남들이 있는 곳에는 나타나지 못하고 장마비가 그친 뒤 혼자서 논두렁을 돌보는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비가 오면 불편하시겠습니다. 콧구멍이 우리와 같이 아래로 향해 있지 않고 위로 되어서 빗물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고 얘기했더니, "그야 그렇지. 자네들은 땅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으며 살지만 나는 위에서 내려오는 신선한 것을 받아가치고 살거든"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과는 사회풍조가 달랐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여성미와 마찬가지로 남성미가 높이 평가받던 시대로서, 추남은 어딘가 모자라는 인물로 평가받던 풍토였던 것이다. 지금식으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는 용모 때문에 큰 핸디캡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청렴 정직했고, 순결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욕심이 없었고, 솔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고 평했다. 항상 남이 따를 수 없는 기지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고요하면서도 명랑했다.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마땅했고, 넘치는 인간애를 풍기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증오의 대상이 되어 죽음을 강요당했을 정도였으나, 제자들의 지극한 사랑과 존경만은 잃지 않았다. 사제간의 사랑과 존경은 가장 모범적인 편이었다. 이런 소크라테스가 여러 소피스트들 중에 나타나 30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고, 그의 숭고한 죽음이 인류의 양심에 큰 빛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옷이나 외모에는 관심이 없었던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너희들의 스승은 옷도 제대로 갖추어 입지 못하느냐, 좀 새옷을 해드리지"라고 말하면, 제자들조차도 "저 해진 옷자락 속에서 아테네의 빛이 나타나는 것은 보지 못하느냐"고 응수했다고 한다.

   젊어서 아테네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는 여러 스승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스승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면 스승들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거기서부터 문제를 전개시켜나가자고 제안한다. 그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스승은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자연 소크라테스를 기피하게 된다. 얼마 후부터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스승의 위치로 올라가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르치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일삼는 소크라테스를 반기지 않았으나, 소크라테스가 확실한 개념까지 유도해주고 해답에까지 이끌어주면 모두가 만족스러움을 얻기에 이르렀다. 사심 없이 진리만을 추구하기 위하여 열성과 지혜를 쏟는 소크라테스의 자세를 옳게 여기기 시작한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르고 진지한 대화와 토론에 의해 진리탐구에 열중하게 되었다. 제자들의 수는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윽고 소크라테스는 우리를 '참지혜와 진리로 이끌어주는 스승'이라는 정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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