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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아닌 능력으로 역사하는 복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삶을 산다는 것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일평생 온 힘을 다하여 행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런 일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그 일을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에 신앙생활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되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창조된 목적이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창조하셨는가? 그리고 왜 '나'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으며,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는가? 그리고 지금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심각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정답을 성경을 통해서 찾아야 합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려고'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말에 대하여 그 어떤 반론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외에 다른 영광 받을 존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미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영광 받으실 분 단 한 분만이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 앞에서 영광받을 수 없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니다.
이러한 전제 앞에서, 저는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교회의 강단에 '이야기 뿐인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받으시기 위한 성도들의 행위를 강조해야 하는 복음의 역사에 대하여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많은 교회들이 이 부분들에 대하여 선포하고 있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민하는 부분은, '우리끼리'라는 테두리를 두고 선포하는 메시지가 너무 강한 것은 아닌가하는 문제입니다. 복음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능력은 다이너마이트의 폭파되는 것에 비유되면서 설명되는 능력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그 말씀에 사람들은 순종할 수 밖에 없는 권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의 능력은 있는데, '폭파'시킬 장소가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서 '능력'을 행할 곳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모든 열정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행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너무 고요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테두리를 허물어 뜨리는 것이 어쩌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과 분리되어서 담을 쌓는 거룩함이 아닌, 거룩함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켜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기에, 이제는 믿음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열방을 품고 나가야 합니다. '땅끝'이 바로 이 자리라면, 이곳에서 세상을 복음으로 품어야 하고, '땅끝'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머나먼 이국 땅이라면 그곳에 가서 그 영혼들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 앞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님은 바로 이러한 능력의 역사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이 능력은 말의 영역에만 속한 것이 아닌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권능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인도하심에 깊은 순종을 이루기를 소망하며....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