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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나미스(δύναμις)의 권능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샬롬^^ 샤마임고 함께 하시는 여러 지체님들의 삶이 어떠신지요?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랜동안 제 마음을 잡고 있던 고민 하나가 서서히 풀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쓸 마음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오늘은 '뒤나미스(δύναμις)'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임하시면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능력이 생겨나게 되는 것일까요? 오늘은 이와 같은 당연한 역사에 대해서 잠시 깊은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보통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실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실재가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실재의 존재'가 아닌, 하나의 '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즉 한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의 이미지가 우리의 정신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일 나무를 보았다면, 그 나무는 하나의 허상으로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허상의 이미지를 '나무'라고 하지만,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무'라는 것의 실재가 내 안에 들어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인생'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헤겔 선생의 변증법에 대한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헤겔 선생님께서 이야기하는 변증법은, 쉽게 말하면 한 존재가 내 안에 인식되어져 올 때에, '실재'라는 정이 있고, 실재의 허상이라는 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실재를 참되게 인식하는 방법으로써 변증법은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나무'는 실재합니다. 이 존재는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인식되어져 있는 나무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래서 '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무의 참된 실재가 내 자신의 '반'에 의해서 진정한 합의 나무가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혹 헤겔 선생님을 좋아하시고 연구하시는 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가 이해하는 조잡한 변증법의 한 측변일 뿐임을 이해해 주시길...그리고 조언해 주십시오^^) 그래서 진리는 정과 반의 작용에 의해서 합으로 이루어지는 인식에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저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앞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반 피조물들의 이미지들은 우리의 인식 속에 하나의 허상으로써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우리의 심령에 '이미지'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놀라운 것은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에페르코마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잇달아 일어나다', '다다르다', '일어나다', '임박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에페르코마이'는 '에페코'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페코'는 '굳게 잡다' , 혹은 '(함축적으로)보유하다'의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다다르신 것'으로 '보유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굳게 잡으셔서 자신을 우리의 심령에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인식은 오직 '이미지'를 통해서 사물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사물'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나의 '이미지의 역사'가 아닙니다. 실재가 바로 우리의 인식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역사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영혼 안에서 하나의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을 느끼게 됩니다. 인식의 함축이요, 직접적인 인식이요, 그래서 영혼은 하나의 폭발가 동시에 '놀라운 변화와 하나님의 능력'에 휩싸이게 됩니다. 상상하지 못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써 이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성은 마땅히 '정'이 있어야 하고, '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는 '정'과 '반'이 없습니다. 이것들을 뛰어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증법과 같은 식의 존재증명이 아닌, 영성으로서의 '정'과 '반' 그리고 '합'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더욱 뚜렷하게 인식하기 위해서 '영성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권능은 이미 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잠시 '듀나미스'라는 '권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이미 우리의 심령, 즉 영혼 안에서 이루어졌고, 역사되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부인'이라는 무無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이같은 두나미스의 역사가 연속되어지기를 소망하며.....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