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일어나서'의 아브넬과 요압
샬롬^^
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도 개인적인 용무로 남쪽 지방을 다녀 왔는데, 돌아올 때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더군요. 휴게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30여분을 줄서서 들어가는데 정말 '힘들다'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제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휴게소에 모든 차들이 들어가기 위해서 몇 킬로미터 전방부터 줄을 서서 들어가는데 갓길로 갑자기 차들이 쌩쌩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대가 아닌 상당히 많은 차들이 자신들이 먼저 들어가겠다고 갓길을 달리는 것을 보면서 정말 짜쯩이 나더군요. '누구는 갓길로 달릴 줄 모르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교통법규를 자신들 마음대로 어기는 사람들의 불법 앞에서 분노하게 되더군요. 갓길은 비상시를 위해서 준비해 둔 공간인데, 비상시가 아닌 차들이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놈이 얼마나 못된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기주의'는 '악'입니다.
오늘 아브넬과 요압을 잠시 지켜보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그러나 이제 모든 대세는 다윗으로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이 흐름을 간파하고 있는 사울의 군사령관 아브넬은 사울의 친족 베냐민 지파를 설득시킵니다. 그리고 북쪽에 있는 이스라엘 지파들을 설득시키면서 다윗에게 나아갑니다. 이에 다윗은 아브넬을 위해서 잔치를 베풉니다. 이 잔칫자리에서 아브넬은 자신의 역량을 다윗 앞에서 자랑합니다.
사무엘하 3장 21절에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어나 가서"라고 운을 떼고 있는 아브넬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그를 평안히 돌려 보냅니다. 죽이지를 않습니다. 이 사실을 전쟁에서 돌아온 요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25절 말씀에 "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라고 말한 뒤에 아브넬을 데려와 죽이게 됩니다.
요압은 자신의 동생에 대한 복수를 핑계로 아브넬을 죽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압의 동생 아사헬은 전쟁 중에 아브넬의 경고를 듣고도 아브넬을 쫓는 것을 멈추지 않아서 아브넬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요압은 지금 그의 마음에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아브넬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니다. 무서운 모습이지요. "내가 일어나서"라고 말하면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아브넬은 결국 '복수'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요압을 통해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내가 일어나서'라는 말처럼, 우리 주님 예수님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자리'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힘을 받게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자리'는 매우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 자리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그 자리 때문에 '악'을 선택하게 된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의 자리를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복 주시는 자리를 추구하는 자가 복된 존재일 줄 믿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내가'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악함'을 의미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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