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의 활 노래, 수치에서 영웅으로
샬롬^^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순교자들의 피로써 이 땅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피로써 이 땅에 광복과 전쟁의 참사에서 일어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은 축복 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배가 너무도 배불렀을까요? 이 땅에 정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들은 싸우고, 비리를 저지르고, 교계의 어른들은 수치스러움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창피함을 당하면서도 아무도 이에 대하여 변론하거나 말하거나 대변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여러 곳에서 사고들이 나기 시작합니다. 세월호의 참사, 우리의 부끄러움입니다. 어제 지하철의 충돌 사건과 또 한척의 배가 회항한 사건...아! 어찌한단 말입니까? 수치가 이런 수치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회개'해야지요. 다시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어야 합니다. 이 땅이 병들어서 썩어가고 있다면 이제 마땅히 도려낼 것은 도려 내야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어떤 곳이 썩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어떤 곳이 썩었을 까요? 우리의 '마음'이 썩었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요? 회개하며 다시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오늘 저는 다윗을 바라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었던 사울이 요나단과 함께 죽었습니다. 저 같으면 속이 시원했을 것인데, 다윗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슬퍼했습니다. 사울왕과 요나단의 전사는 자칫 이스라엘의 수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왕이 될 인물로서 다윗은 '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합니다. 유다 족속들로 '활 노래'를 통해서 두 영웅이 죽었음을 기념하게 합니다.
사무엘하 1장에 22-27절에,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네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무기가 망하였도다 하였더라"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야살의 책은 "의인의 책"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 둔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영웅'으로 치켜 올립니다. 물론 요나단을 사랑하는 다윗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단지 사랑하는 마음 하나 때문에 야살의 책에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생각했습니다. 나라에 엄청난 수치가 생겼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초대 왕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서 전사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이스라엘에서 떠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노래합니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 졌도다", "사울과 요나다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의 수치스러운 사건을 다윗은 '영웅적인 사건'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위로받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민족을 떠나지 아니했다는 확신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아니하셨음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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