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7-31
들어가는 말
오늘 이 새벽에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허락하셔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축복이 있어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기록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시대 상황은 분명 ‘남녀 평등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대답을 기록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을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남자와 여자는 ‘부부’라는 관계 안에서 평등하며 한 몸을 이루어야 하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평등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위에 있고 여자라는 존재가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서로 협력하는 협력자로서 ‘하나’되어야 하는 ‘사명’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과 여’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결혼’이라합니다. 결혼은 남과 여가 만인 앞에서 ‘언약’을 행함으로 ‘하나된 부부’임을 선포하는 예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부부’를 이루고 일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은 ‘남편과 아내’는 ‘평등한 사람’이고, ‘한 몸’을 이룬 ‘자기 자신’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요, 아내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고, 남편의 기쁨이 아내의 기쁨이요, 아내의 기쁨이 남편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몸과 마음의 하나됨을 통해서 우리는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의 ‘교회’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하나되신 하나님의 역사
위에 세워졌음을 볼 때, 교회와 가정은 매우 닮은 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에는 결국, ‘부부는 철저하게 하나되어야 한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부’의 사명은 ‘하나’되는 것에 있고, 하나됨 위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것에 ‘남과 녀’의 한몸됨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계속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둘째, 오늘 말씀은 남녀의 하나됨을 통해서 ‘카바쉬’, 즉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28절 말씀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우리 민족은 남자는 하늘같이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요, 여자는 남자를 하늘같이 섬겨야 하는 존재로 이러한 말을 해석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의 말씀을 비추어 보면, 이러한 해석은 매우 잘못된 해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은 땅 없이 존재하지 못하고, 땅은 하늘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늘의 관심은 ‘땅’에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진정한 땅은 땅 안에 ‘하늘’을 담아야 진정한 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하는 분야 중에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은 기독교의 교리를 공부하는 신학을 의미하는데, 그 종류에는 “신론, 인간론, 죄론, 구원론, 내세론”과 같은 분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야 중에서 특별히 “초월주의 신학”이라는 것이 있고, “내재주의 신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초월주의 신학이라는 것의 장점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에 ‘나도, 세상도 없고 오직 주님만 존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신학입니다. 그런데 단점은 “세상과 땅”이 없어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의 성향을 나타내는 교파가 흔히들 ‘순복음 계통의 신학’이라 말들을 합니다.
반대로 ‘내재주의 신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내주주의는 오직 ‘땅’의 문제에 집주하는 신학입니다. 그래서 이 신학은 ‘투쟁’을 하고, ‘이 땅의 헐벗은 자들을 향하여 구제’하려는 성향을 갖는 매우 개혁적인 성향의 신학입니다. 대표적인 교파로 ‘기장’이라는 교파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땅의 교파들은 자신들의 성향에 선을 그어서 ‘초월주의’ 혹은 ‘내재주의’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하늘과 땅”을 구분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세 제자를 데라고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변형되셔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산상회의를 하시는 예수님의 신비한 하늘에 속한 모습을 제자들은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초막 셋을 짓고 영원히 이곳에서 있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 아래 ‘땅’의 문제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시자 ‘귀신 들려 물에도 불에도 들어가는 자녀를 둔 부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내려오시자마자 하신 일은 이 자녀를 고쳐주신 것이었습니다.
즉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변화산’에는 ‘하늘과 땅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사가 있음을 우리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된 ‘남자와 여자’는 하늘로서 땅에 속하고 땅으로서 하늘에 속한 하나된 존재가 되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왜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인간’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자는 너무 이상적이고 일 중심적이어서, 땅의 중요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는 현실적이고 관계중심적이어서 ‘실제적인 문제를 인식하나, 대범하게 일을 진행하는 힘이 조금 약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서 세상을 정복하고 인생을 아름답게 다스리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이 이루고 계신 가정이 여러분의 인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세상이지 않습니까? 이제 부부가 하나되고 가족이 하나되어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세상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스리시는 역사가 있어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남과 여의 하나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처음 에덴의 창조처럼 거룩한 존재로 ‘회복’되는 거룩함을 이루시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29-30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히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감탄하셨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양육강식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육식을 먹는 짐승도 없었습니다. 서로 공격하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세상은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후부터 사람들은 ‘육식’을 하시기 시작했고, ‘짐승’들도 ‘육식’을 먹는 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죄’에 의한 타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언젠가는 이러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는데, 신약시대가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사는 이러한 회복의 창조를 이루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흥”을 외치는 것입니다. 부흥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남과 여의 창조 목적”에 맞추게 되면, 결국,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도어야 하고, 새로운 창조의 모습으로 ‘성화’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과 여’는 새롭게 창조되고 회복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부’가 회복되면, ‘가정’이 회복되고, 가정의 회복은 곧 교회와 모든 인류의 변화로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언드립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창조사건 앞에 서게 되었음을 고백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시고 싶으신 뜻을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하나님의 감탄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부부’간의 모든 변형된 것들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땅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우리 자신이 되게 하시고, ‘땅의 것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통해서 우리로 새롭게 하신, 그리고 새롭게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 앞에서, 우리 자신이 주님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재창조되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시고, 동시에 우리의 가정이 ‘부부가 일심동체’되는 역사 속에서 거룩하게 세워져가는 하나님의 기쁨이 가득한 거룩함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섯째 날의 하나님의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쁨되게 하실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