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카즘 연구-예수기도 ♣ 손 대접 속의 하나님의 임재와 두려움
창18:1-15
들어가는 말 주님께서 오늘 이 새벽에 임재의 역사를 허락하셔서. 하루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언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의 습관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계시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시기 위해서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나그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이 세 명의 사람으로 가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가 되어서 아브라함이 있는 마무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이때 장막 문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이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 세 명을 보았습니다. 이때 당시의 전통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나그네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그들의 발을 씻기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고대근동의 법도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이러한 예의를 잘 지키는 사람으로 오늘 본문은 표현됩니다. 놀랍게도 세명의 나그네를 하나님을 대접하듯이 대접했습니다. 융숭하게 대접하고 나무 그들에 쉬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접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로 혼동을 주기에 적당한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주여’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하나님 대하는 듯한 깎듯한 대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은 바로 평소에 손대접을 잘 하였던 아브라함의 모습임을 본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여’라는 말은 이때 당시의 ‘관용구’였습니다. 선생님이나, 기타 존경받을 만한 분들을 향하여 ‘주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지극정성으로 손대접하다가 그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건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아브라함이 하나님인줄 몰랐다가 하나님을 대접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절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일들이 있었느니라.” 손님 대접하는 것을 잊지 않으므로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의로움과 선함의 사건을 오늘 우리는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것을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히브리서 13장 1절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5절 말씀에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나그네 대접’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매우 옳고 좋은 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는 말씀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라 생각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여행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잘 도왔습니다. 이러한 선한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같은 선한 행위가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 선한 행위 중에 은밀하게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삶 중에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겸손의 태도로 나그네를 맞이함으로 다시 한 번 ‘아들’이 있을 것을 계시 받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전적인 순종과 수용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즉 아브라함은 ‘영의 눈’이 열려 있었기에, 이 말씀에 ‘아멘’할 수 있었습니다. 9-10절 말씀에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언약을 받고, ‘할례’를 행함으로써 이제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모두 귀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거로 나그네를 대접하는 태도가 그러했습니다. 너무 진지했고,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나눌줄 아는 자에게 하나님은 임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얼마 전에 영원한 언약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이제 사람의 형상으로 임하신 모습으로 다시 보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극진히 대접하였던 아브라함은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눈이 떠져야 할 줄 믿습니다. 영의 눈이 열린 자란, 믿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신실하게 사람을 대하며, 진지하게 섬길 줄 아는 자에게는, 그러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하나님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기쁨이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선교활동하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기쁨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의 각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부지중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은혜가 있기 위해서 여러분의 믿음의 눈이 떠지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 속에서 주님께서 하라 하시는 대로 손대접하시고, 봉사하시고, 선교하시고, 전도하십시오. 큰 기쁨의 역사가 여러분의 심령에 넘쳐나게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 속에서 ‘당황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라였는데, 사라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속마음을 들키게 되었고, 이 부끄러움에 두려워하며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피함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14-15절 말씀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을 때 사람들의 대부분의 반응은 ‘두려움’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구원받은 백성임에도 회개할 것이 많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사라가 속으로 웃으면서 자신의 경수가 끊어졌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 있겠느냐”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한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먹으면 아기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편에서 불가능이란 전혀 없습니다. 이에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네가 웃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감추지 말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는 이 대목에서 믿음을 성장시키는 매우 중요한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 속에서 우리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수치와 부끄러움의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드러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조명하시는데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인정함과 나아감은 결국 하나님의 능력과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심령에 새로운 빛이 비추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우리 자신의 수치를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때 여러분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수치를 주님께서 대신 지셨음을 기억하시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그 수치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마음을 올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여러분의 심령에 가득 임할 줄 믿습니다. 나아가는 말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고 사라의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의 모습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예배의 장소외에도 사람을 대접하고 섬기는 곳에 임하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선하고 신실하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줄 때, 그곳에서 새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영의 눈이 뜨인 자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부끄러움이 드러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사를 의지하며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영적 성숙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이같은 은혜의 역사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언드립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로 손대접하기에 힘썼던 아브라함의 선함과 신실함을 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자는 ‘섬김과 봉사와 구제’를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붙들게 하셔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더 풍성하게 하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날 때, 주님의 이름으로 그 문제를 인정하고 수용하여서,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지는 은총을 입게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새벽 하나님의 전능의 역사가 우리의 심령에 가득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이 하루 주님과 동행하며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감사를 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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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주일예배에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4. 오른쪽 호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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