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옥중서신(Widerstand und Ergebung, 1943~1945)
1. 여러 학자들의 견해
본회퍼는 『윤리학』을 1940~1943년에
썼고 이어서 1943년 4월 5일 비밀경찰에
체포된 이래 1945년 2월까지 『옥중서신』을
썼는데 이는 이론적이거나 조직적인 작품이
아니라 “서신” 형식으로 된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서 신학적 통찰들이 번쩍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세속화 신학자들은 『옥중서신』을
세속화 신학의 새로운 장(章)으로 생각하면서
『윤리학』과는 연속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본 작품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인데, 무엇보다 그 내용이 깊은 이론이나
조직적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여러 본회퍼 해석자들의 글들을
통하여 『옥중서신』이 아무리 세속화 신학
혹은 “비종교화의 기독교”(religioness christianity)를
말하고 있을지라도 여기에서 계시, 교회,
및 교리가 결코 무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1930년댕 본회퍼는 고백교회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이 고백교회가 에큐메니칼한 인정을
받게 하기 위하여 크게 활동하였으나 전쟁이
터지자 “독일군 정보부원”
(a German military intelligence employee)으로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지 3년이 지나는
동안 제도적 교회를 떠나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독일의 국가교회(루터교)에
대해서는 물론 고백교회에 대해서 조차 비판적이
되었다. 이처럼 기성 독일의 국가교회와 고백교회에
대한 비판이 본회퍼의 세속화 신학의 진행을
가족회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 본회퍼는 경건주의 교회, 루터파
정통주의 교회, 및 고백교회로부터 해방되어
개개 크리스천이 인간 예수의 모범을 따라
타자를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을 그의
『옥중서신』에서 주로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숙한 기독교적 삶 혹은 ‘비종교화의 기독교적
삶’이란 그의 전존재가 타자를 위한 삶이었던
그 인간(the man=Jesus)의 원형을 따라
순응하는 바 완전하게 인간다운 삶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옥중서신』 중 특히 세속화된 크리스천
개개인의 실종에 관심을 집중하는 필립스는
『윤리학』과 『옥중서신』에서 나타나는
교회론은 무시하는 바 그는 그 당시 유럽의
기독교 자체가 세속화 내지는 비종교화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본회퍼를 해석한다.
“『윤리학』은 서양 기독교 역사으 잘못된
세속화를 말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의
일탈 및 하나님 없는 세속화의 상장에
반대하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옥중서신』에서 본회퍼는 이 서양의
세속화를 적극적인 역사적 과정의
소산으로 보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바르트의
계시실증주의(Offenbarungspositivismus)에
대한 본회퍼의 비판을 프렌터(Prenter)가
해석하였는데, 프렌터는 계시, 교회, 교리가
본회퍼에 있어서 무식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현실 참여를 결핍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렌터는 바르트의
계시 실증주의에 대한 본회퍼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회퍼가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하는
문맥을 보면 이것은 신앙의 진술들이
세상의 현실과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이 신앙의 질술들은
현실과 무관하기 때문에 단순한
데이터에 불과하게 되었고 이떤
설명도 없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본회퍼는 비종교화의 기독교는 결코
교회의 주체나 성경을 비신화화하여
실존적 의미만을 찾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경과 신학이 말하는 중요한
개념을 모두 인정하며 이것이 세상의
현실과 어떻게 의미있는 관계를
맺는가를 중요시한다.
마이어(Maier)는 본회퍼의
비밀훈련(Arkandisziplin)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종말적인 것”과
“전 종말적인 것”의 구별이 비밀에
속하는 바 이 구벽의식이 훈련되어야
한다....웰펠(Woelfel)은 본회퍼의
“비종교화의 기독교” 혹은 기독교의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교회, 기도,
예배, 교리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웰펠은 “기독교 신앙의
신비들이 속화하지 않고 보호되도록
하나의 비밀훈련이 회복되어야 한다.”
에 근거하여 “비밀훈련에 대한 본회퍼의
진술은 무엇보다 교회의 가르침 즉,
순수교리의 보존에 관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베트게(Bethge)의 아들이
본회퍼가 옥중에 있을 때
본회퍼(대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본회퍼는 이 유아세례에 관하여 “...
신약성경은 유아세례에 대한 규범을
갖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아세례는
교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요,
이 은혜는 신앙으로 받아 사용해야
한다...”가고 말했다. 오트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본회퍼의 신앙은
“신 죽음의 신학”의 신 개념을 배격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갓세이의
입장은 월펠과 비슷하다.
본회퍼는 『옥중서신』의 끝부분에서
교회의 특수성과 그 사명을 “세상”과의
관계에서 말한다. 즉 교회란, “하나님에
의하여 부름받은 사람이긴 하나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를 얻은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이 세상을 위하여 실존한다.”
리텔(Littel) 역시 해밀톤, 반 뷰렌 등
세속화 신학자의 입장과는 달리 갓세이
등처럼 『윤리학』과 『옥중서신』에서
교회론을 중요시하는 바 이 두 작품이
그 이전 작품들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빌켄(Wilcken)에 의하면 본회퍼가
1944년 4월 30일 “오늘날과 같은 비종교화의
세계 속에서 교회, 공동체, 설교, 예배의식,
기독교적인 삶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했으나 본회퍼는 곧 이어 우리가 언급한
비밀훈련에 관하여 논하고 있는 것이다.
2. 본문분석
본회퍼는 1945년 4월 9일 플뢰센부르크에
있는 강제수용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졋다.
아니, 그의 죽음은 순교의 죽음이었고 오늘날
살아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기독자는 불경건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세속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이것이 참 회개이다.” 본회퍼의 비종교화의
기독교, 그리고 성경의 세속적인 해석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역사 내적 실존을 따라 세속적인
삶 속에서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 1944년 6월 22일에
쓴 편지에 보면 참된 세상성이란 참된 인간이 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 한복판에서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종교인이
아니다...이는 훈련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고한 지식에
의해서 특징지어진 세상성을 의미한다.
루터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세상적인 삶을
살았다.” 이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영역 안에서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참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기독자란 참 인간으로서
타자를 위한 실존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에 유비된다.
-김형기의 "본회퍼의 신학사상" 중에서-
샤마임 지붕과 쉼 ^^
유리의 성 ost /Try to remember (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