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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샤영공 소식지 12-13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by 지심 정경호 2012. 6.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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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영성 공동체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

샬롬^^

지심 정목사입니다.

 

샤마임의 영성수련을 함께 할 연구원 혹은 수련회원을 모집합니다.^^

 

샤마임을 운영해 온지가 벌써 10여년을 훌쩍 넘어버린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하여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온 세월이 벌써라는 말로 표현해야 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영성의 길이 너무 깊기에 함부로 이 사역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매우 조심 조심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처음 이 사역을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연구하고 수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 '영성수련'을 함께 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모집합니다.

어느 정도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지면 '정기적인 영성집회'를 갖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계속되어지는 '영적지도'의 사역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샤마임과 함께 해 주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올바른 영성'의
확립을 위해서 헌신하실 분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연구하며 수련하고자 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글 밑에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회원신청 글이 있스니다. 그곳에 댓글로 달아 주시면 '회원 신청'으로
알고 일정 회원이 되었을 때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하고 작지만, 샤마임과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정기적 영성수련의 시작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많은 분들의 동참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   지  심  』

추신) 영성 연구회원(혹은 수련회원)은 '이단'및 사이비 단체의 분들은 들어오실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샤마임의 영성수련은 교회의 사역을 돕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임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회원신청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b4n/124

 

좋은글 나눔

 

□ 유별나게 굴지 말라

아무도 끓는 물을 끓일 수 없다.
얼음을 얼릴 수 없듯이.
같은 이유로,
아무도 유별난 존재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유별난 존재가 되려고 별짓 다하지만
괜한 수고 끝에 허망을 거둘 뿐이다.
유별나게 굴지 말라는 공자 말씀이 참으로 옳다. ⓒ이현주 (목사)



 

좋은글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rJB/1409

 


I.로고스 신학회에 대한 소식

이번 주 학문과 나눔의 방에 올라온 글

 

 

 어거스틴의 문화 변혁의 역사

1. 어거스틴의 역사관 서론 이해

21C를 바라보고 살고있는 이 시점에서 5C기 사람을 언급하고 연구한다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거스틴은 5세기 이전의 소아시아 신학, 라틴(서방)신학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신학을 통합하였을 뿐 아니라, 중세 교회의 어두움을 깨는 동인이 되었고, 종교개혁의 물꼬를 준비하였던 이론적 사상가였으며, 그의 사상을 17,18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새기의 대표적 자유주의 자인 폴틸리히는 "나는 매우 분명하게 나 자신과 나의 전 신학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에 서 있기보다는 훨씬 더 어거스틴의 노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개혁신학의 전통이 바로 어거스틴의 전통에 있는데 바로 그러한 어거스틴의 사상이 대표적 자유주의자인 폴틸리히의 전제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신학이 얼마나 방대하였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계속되는 연구속에서 어거스틴의 신학적 이해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보게 될 것이다.

어거스틴은 당시의 혼란했던 신학을 정리 종합하였던 위대한 신학자였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그의 전 신학 체계를 살피고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방대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다룰 만큼,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방대한 신학 체계중에서 역사관에 중심을 두고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문화 변혁의 역사의 관점에서 어거스틴의 사상연구에 point를 두려고 한다.

21세기는 첨단 과학과 문화의 시대이다. 옛날처럼 문화의 지역성이 각종매체를 통해서 우리가 접하는 문화는 우리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동시에 접하고있는 문화이다. 이재는 문화가 삶을 인도해 가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런 세대에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는 매우 심각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교회는 이원론의 행습에 빠져 있어서 문화에 대한 전혀 무관심하였다. 교회가 무관심속에서 외적 성장에 기치를 다할 때 속으로 문화는 썩어지고, 교회의 기둥들을 부식시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현대교회는 점점 세상에 대하여 힘을 잃어가고 기독교인들의 정체성은 첨예한 이원론의 삶 속에서 방황하다, 교회를 등지게 되는 현상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에 대한 눈은 떴지만 왜곡된 문화의 눈으로 문화신학이 "토착화 신학""민중신학""다원주의 신학"으로 되어버렸다.

 

위의 내용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HMQ/329

 

II. 샤마임 영성 공동체의 후원 선교사 소식

 

김기성 멕시코 선교사님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4Yi/7

임채일 인도 선교사님 방 http://cafe.daum.net/shamaimprayer/LAaw/2

한국청소년사역연구소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mRA/1

 

 

 
III. 샤마임 영성 공동체 자료방에 대한 소식
최근에 샤마임 영성 공동체 카페가 새롭게 단장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시작은 미미하지만, 이 작업들을 통해서
좀 더 풍부한 내용의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의 동참을 희망합니다.
 
1. 영어성경 신약 묵상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JOA/375
2. 영어성경 구약묵상 목록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JOA/374
3. 예화모음 바로가기(가나다순)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077
4. 신학용어&신앙용어 모음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WAb/146
 
이번 주 십계명 시리즈 소개

 

*부부 금슬의 묘약*

1)자주 칭찬을 하자!
... 부부사랑은 배우자의 칭찬을 먹고 자란다.
"당신 생각이 옳아요" "자기 옷차림이 어울려요" 칭찬을
입버릇처럼 자주 하라.

2)날마다 한끼 이상 함께 식사하자!
날마다 한끼 이상 함께 식사하자.
밥상머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면 소화제가 필요 없다.

3)일주일에 한번 이상 사랑의 편지를 쓰자!
일주일에 한번 이상을"사랑하는 당신에게"로
시작해서"당신을 사랑하는 000로 부터"로 끝나는
사랑의 편지를 쓰자.

4)매달 한번 이상 같이 외출하자!
부부동반 외출은 활력을 북돋운다 한달에 한 번쯤은
즐겨가던 곳이나 맛있게 먹었던 곳을 찾아가자.

5)계절마다 한 번 이상 여행을 떠나자!
변화는 새 삶이고 발전이다 계절마다 변화있는 색깔에
마음을 물들이는 여행을 떠나자

 

6)기념일을 기억하자!
배우자의 생일에는 배우자의 부모님을 초대하여
감사하고 결혼 기념일에는 단둘이 오붓한 추억을 만들자.

7)상대를 애인처럼 여기자!
배우자는 평생 애인이고 애정은 나눌수록 커진다.
신바람나고 생기 넘치는 사랑을 만들자.

8)휴식에 인색하지 말자!
대가를 받는 일은 피곤한 노동이고자의로 하는
일은 즐거운 휴식이다.
둘이 마음을 모아서 여가선용에 투자해 보자.

9)행복을 창조하자!
부부의 행복은 우연히 오는것이 아니다.
서로 손을 잡고 동심으로 돌아가서
행복만들기 소꿉장난을 시작하자.

10)고생도 즐기자!
계획은 환상적인 꿈이지만 실행에는 고행이 따른다
고생도 즐길 줄 알아야 금메달 부부라네~~~ ^^&^* - 퍼온 글

 

 

십계명 시리즈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663

 
5. 신학용어&신앙용어 모음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WAb/146
 
이번 주 신학, 신앙용어

 

십일조를 다른 곳에 내도 되는가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히 11:38).

최근한국 교회의 성도들 중에 자신들이 출석하고 있는 본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게 헌금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계속 본 교회에 십일조 헌금을 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고민 뒤에는 교회 바깥에 도와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그를 돕기 위해 필요한 돈이나 물질은 항상 부족하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다. 이럴 경우, 차라리 교회에 내는 십일조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나 기관에 기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십일조를 본 교회에 내지 않고, 다른 교회나 구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단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니면 부당한가?

십일조는 헌금의 최하한선을 규정하는 기준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일조에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해마다 드리는 토지 소산 곧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신 14:23)로 이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의 생활비로 쓰여졌다(민 18:24). 둘째는 이스라엘 지파들이 바친 십일조를 생활비로 받은 레위인들이 그 받은 십일조에서 또 십분의 일을 떼어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도록 돼 있었다(민 18:26). 셋째는 해마다 드리는 십일조 외에 별도로 삼 년마다 한 번씩 십일조를 모아 하나님께 드리도록 돼 있었다(신 14:28~29). 이 십일조는 레위인을 포함해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구제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모세 시대에 하나님 앞에 드린 십일조는 기업이 없는 레위인의 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 유지를 지원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십일조 생활을 현대 교회의 헌금 생활에 연결시켜 볼 때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하나, 십일조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 최대의 상한선을 규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최소의 하한선을 규정하는 기준이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이 천거하는 헌금의 정도는 십일조를 훨씬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수님은 성전 연보궤에 부자들이 연보하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연보하는 것을 보시고, 가난한 과부의 연보가 바른 연보임을 지적하셨다(눅 21:1∼4).

본문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아마 부자는 소득의 십일조 정도를 헌금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평가에 따르면,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의 전부’를 드렸다. 예수님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의와 신을 버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마 23:23) 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십일조 헌금 생활을 인정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의 헌금관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글보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WAb/333
 
6. 동화시리즈 모음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WAb/144
 
7. 성경공부 검색 바로가기(가나다)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lF0/290
 
이번 주 성경공부

 

성경의 형성사

1.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하나님은 여러부분과 여러모양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성서에 수록되어 있다.

첫째, 이사야가 성전에서 들은 음성, 사무엘이 들은 음성,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들으신 음성과 같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시려는 뜻을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셨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그냥 사람에게 전달 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로 구체화 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이른바 하나님의 역사화(歷史化) 작업이라 한다. 성서에서 주신 말씀은 일체 역사화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실 때 사용하신 방편도 여러가지 나타나는데 우선은 역사속에 사건들을 일으키셔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간섭하신 사건 하나하나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배우게 하시며 다음에 예언자들과 시인과 지혜자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해석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사람의 말로 전달하게 하셨다.

넷째, 여러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역사적 사건 그 자체가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동시에, 그것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문서화하게 될 때 더욱더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다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은 성서 해석에 있어서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역사로서, 시는 시로서, 비유는 비유로서, 격언은 격언으로서, 소설은 소설로서, 희곡은 희곡으로서, 신화는 신화로서 각각 분류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적절한 해석법에 따라 해석할 때에, 그 계시의 참 뜻을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구약성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어느 부분도 사람의 글이 아닌 것이 없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저자들이 고유한 환경 속에서 기록한 책들이 모여서 성서가 되었기 때문에 성서는 역사적인 검토와 문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lF0/316

 

 
IV. 지심과 함께 하는 말씀과 영성 이야기
 
1. 지심과 함께 하는 말씀 여행
 

마태복음 1장 5절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을 낳은 다윗

 

오늘 말씀은 다윗 왕이라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람이 그리스도의 족보에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왕국'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의 왕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가지고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윗 왕'은 '메시야의 도래'의 희망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의 이 땅에 오심의 역사가 바로 '다윗 왕'을 통해서 예언하셨던 '메시야 도래'의 약속의 성취임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족보에서는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라고 기록합니다. 이 부분에서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음으로써 '성군'의 모든 것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 족보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로 주목하게 하는 것은, '메시야의 구원의 역사', 즉 '구원의 족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언약의 역사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솔로몬을 낳은 다윗 왕의 회개와 겸손의 모습처럼, 우리 자신도 그렇게 겸손하며 은혜를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주님은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아멘.

어느 새벽에 말씀을 잠시 묵상하며....지심 정목사.

 

더 자세한 내용 보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b4n/88
 
2. 지심과 함께 하는 신학여행

 

일하시는 하나님(使役)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고 말씀하신 것은 유대교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깨우쳐 주신 것이다.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우주적이며, 만민의 하나님이요, 살아 계시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 민족주의 운동을 맹렬히 일으켜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유대인의 민족신으로 만들어 가두었고,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비활동적인 왜소한 신으로 만들어 유대교라는 액자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경외심 없는 형식주의에 빠지고,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때에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제자들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다.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나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만민의 하나님이 되시고 만민은 하나님의 자녀로 형제 자매가 되도록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신다」는 점을 강조하시고, 그리스도 자신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도 밝혀 주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깨닫고 있는 하나님은 액자 속에 갇혀 계시는 神이 아니다. 창조 사역과 섭리 사역을 통해서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그 만드신 만물을 붙들고 계시면서 친히 다스리시고, 일하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2:4-25에서 인간을 손수 만드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섭리 사역에 대해서 좀 더 자상하게 알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창조와 섭리, 두 가지가 있다.

 

전체내용보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b4n/89
 
센터렁 프레이어

 

침묵의 역사적 이해

* 관상기도
관상의 개념을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관상 기도의 모든 과정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이곳에서는 관상 기도로
이끌어져 가는 모든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침묵과 관상, 그리고 관상기도의 단계를
살펴봄으로 관상에 대한 모호한 이해가 더욱
확실해 질 것이다.

  1) 침묵의 역사적 이해
관상에 있어서 침묵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관상의 목표는 바로 일치에 있으므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계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침묵은 이와 같은 깨달음을 위해
성서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주게 하며,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자신이 고요해지게 함으로 계시의 깨달음,
즉 일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침묵에
대하여 시편 62 : 1에서는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라고
표현하고 있고, 광야의 교부 암모나스(Ammona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네게 침묵의 힘이 얼마나 철저하게 친교하는지,
또 얼마나 하나님께 온전한 기쁨이 되는지를 보여 주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침묵에 의해 성도가 자라나며,
침묵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들 안에 거하며, 침묵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이 성도들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침묵은 영적 성숙과  또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는데, 침묵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는 것을 방해하는 우리 안에
있는 사회, 문화, 종교구조들에 대한 잘못된 역할에
대하여 씨름하게 하고, 이 ‘침묵의 씨름’은 거짓된
문화에 대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변화의 가능은 침묵 속에서 그 말씀이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 되어서 맛을 보게 하며 소화되게 하며, 흡수되어서
거짓자아를 도려내 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즉 침묵의 첫
계시는 우리를 더욱더 고요하게 만들고, 이 고요함은 바로
자기 자신을 드러나게 하는데, 이러한 계시는 자신 안에서
지혜, 평화, 기쁨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얻게 되는
성소의 입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침묵에 대하여 기독교의
영적 전통을 살펴보면, 침묵을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기도의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침묵의 초대는 대부분 사람들의 방황 속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것은 마음의 방황과 내적인 동요가 심하여서
도저히 고요하게 생활할 수 없음을 느끼는 것이 침묵의 표지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이 채워질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서,
채워지지 않음은 인간을 동요하게 하고, 이 동요는 엄밀하게
말해서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서 끝없는 격정과 함께
인간의 내면에 가득찬 모든 거짓된 유한한 것, 그리고 지상의
것들을 파괴시키는 정열(Leidenschaft)을 일으키는 현상에
속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침묵은 하나님의 첫 계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관상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4세기에서 5세기에 사막의 교부들의 어록에서도 이러한 침묵의
가치들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있는데, 5세기의 수도자
은자 존(John the Solitary)은 “하나님은 침묵이시다”라고 말했고,
동방정교회 영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헤시키아(hesychia)가
아토스 산(Mount Athos)을 중심으로 ‘내적 침묵의 획득’이라는
침묵 영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중세
서양의 신비주의 작가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토마스 아 캠피스는
침묵과 정숙 속에서 신앙의 성숙은 이루어짐을 그리고 성경의
감추어진 신비를 깨닫게 됨을 말한다. 또한 동방신학자
나지안주스(St Gregory Nazianzus)와 시므온(St Symeon)은
신학자의 자질들 중에서 침묵과 내적 평화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는
사실은 모든 영성에서 침묵이 중요함을 알게 한다. 이러한 침묵의 흐름은
십자가의 성 요한으로부터 퀘이커의 조지 팍스(George Fox), 그리고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까지 영성생활의 기초가 됨을 강조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19세기의 러시아 디오팬 더 레클루스(Theophan the Recluse)는 침묵에
대하여 말하기를 “중요한 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며, 계속해서 끝날까지 밤이나 낮이나 끊임없이 그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침묵에 대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공동체 생활』140장에서 “침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마음이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들은 내적 침묵을 위하여 외적 침묵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침묵 장소와 침묵 시간을 지킬 것이며, 수도원 내의
특정한 장소를 제외하고는 이를 어김을 금한다(수도서 8, 4, 15).”고
말함으로써 내적․외적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침묵의 두 가지 종류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침묵에는 외적인 침묵과
내적인 침묵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침묵을 말함에 있어서 본 소고에서는 외적인 침묵을
‘외재적 관상’, 내적인 침묵을 ‘내재적 관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외적인 침묵이 깊어지면서 내적인 침묵으로 흐르게 되는데,
이 과정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관상으로 들어가게 하는 하나의 입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관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침묵을 본 소고에서는 관상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나, 그러나 정확한 의미에서 침묵과 관상은 같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관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이라는 입장에서 침묵을 바라볼 때
이것을 외재적, 내재적 관상이라고 본다. 이 두 가지의 외재적,
내재적 관상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지심-

 

지심 정목사의 '관상기도를 통한 영적 성숙에 대한 연구'의 글
관상과 성숙 7 위의 글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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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김재신 교수님 소식
 

“히브리인 예수님과 바울”

- 히브리적 사유체계로 성경을 읽어라!(I) -

김재진 (케리그마신학연구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겸임교수)

I. 왜 히브리적 사유체계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설교자가 설교준비 하기 위하여 설교본문을 분석하고 해석할 때, 가장 거침돌이 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설교자의 예비지식이나, 성경의 원어에 대한 지식, 혹은 설교자의 성경해석 능력이 아니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2차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뿐만 아니라, 신학자 그리고 일반평신도에게 이르기까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오히려 독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험적 전이해, 혹은 사유체계’이다. 즉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유체계’와 독자가 가지고 있는 ‘사유체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의 사유체계는 ‘히브리-셈적’ 사유체계 혹은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전통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인도게르만적’ 사유체계 혹은 사고방식을 갖고 성경을 읽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유체계는 서로 아주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이 지중해 연안과 팔레스틴 및 고대 근동을 점령한 이후로는 유럽 문화사에 두 가지 사유체계가 혼합 내지는 종합 - 때로는 히브리-셈적 사유체계가 상당부분 그리스 사유체계와 융합 혹은 모형변형Paradigmawechsel 양식으로 - 되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많은 학자들은 ‘헬레니즘 기독교’(스토아 철학과 신新-플라톤주의, 그리고 Lxx(구약성경의 70인 번역본)의 출판,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에 의한 성경의 최초의 알레고리적 해석 등) 혹은 ‘기독교의 헬레니즘화’라고 특징지어 말한다. 예컨대 이러한 점을 불트만R. Bultmann은 ‘기독교의 헬라화’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교리사와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어느 한쪽을 강조하는 - 그것이 어느 쪽이든 - 사람들에 의해서 신학적 논쟁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예컨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같은 학자는 두 사유체계를 아주 잘 종합 또는 융합하여 ‘보편적 교회catholic church’의 신학을 기초하는 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반면에,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서로 그들 자신들의 일면적인 진리만 주장한 나머지, 그 중 어느 한파가 학문의 장에서 퇴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안디옥’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신성과 인성)을 분리시켜 ‘인성’을 강조한 반면에,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을 혼합시켰다. 그래서 초기 보편적 교회는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배척하고 이들이 주장하는 기본요소만 진리로 수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을 기독교의 교리로 선포하였다.(451년 칼케톤 신조에서 예수는 참신 참인간vere deus, vere homo라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마르틴 루터M. Luther의 종교개혁과 문예부흥Renaissance을 통하여 그리스-인도 게르만적, 바꾸어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체계에 기초하여 발전된 중세 스콜라Scholar 철학적 신학에 반기를 든 히브리-셈족 사유체계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예컨대 미켈란제로의 동적動的 조각품은 조화된 고전적 그리스 조각품과 비교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물리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이 서로 비교되었다. 즉 미켈란제로(Michelangelo, 1475-1564)의 동적 조각품은 조화를 강조하는 그리스 고전적 조각품을 대신하게 되었고, 칼릴레오의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대신하게 되었고, 루터의 하나님 중심의 신학과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개혁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시작하여 토마스 아퀴누스(Thomas Aquinas, 1225 - 1274)에 이르는 그리스 철학적 신학을 대신하게 되었다. 즉 루터의 사상과 종교성은 가톨릭교회의 시각적 관조적 경건성에 반하여, 다분히 동적이고 청각적이었다는 점에서 히브리-셈적 사유체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성경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는 - 신학자,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를 막론하고 - 대부분 어느 사상이 히브리-셈적이고, 어느 사상이 그리스-인도게르만적 사유체계인지를 세심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문화 혹은 서양사상 - 더 자세히 말하면, 그리스-인도게르만적 사유체계 - 으로 교육받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의 교유한 ‘사유체계’를 - 대부분 도덕적 혹은 인과응보적因果應報적 사유체계를 - 가지고 성경을 읽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증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 가능한 한 그리고 필수적으로 -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인물들의 - 예컨대 아브라함으로부터 모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에 이르기 까지 - 사유체계에서 성경의 증언을 읽을 때, 성경의 증언하는 바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비록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그리스적 사유체계와 히브리적 사유체계가 서로 종합 혹은 융합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성경이 증언하고자 하는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히브리적-셈적’ 전통의 사유체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저자들은 모두 히브리인이요, 신약의 저자들도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모두 히브리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인의 사유체계’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컨대, 예수님께서 어느 날 “한 서기관이 나아와 …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마 8:19)라고 말하였을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예수의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마 8:21)라고 청한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마 8:22)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말씀을 읽을 때, 히브리적 사유체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즉각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어떻게 장사하는가?’라고 질문할 것이다. 여기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자연과학적, 더 자세히 말하면 생물학적 혹은 그리스-인도게르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죽은 자’란 ‘靈的으로 죽은 자’라고 종교적 혹은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결코 그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적 사유체계는 그리스의 사유 체계처럼 정적靜的이 아니라, 동적動的, 더 자세히 말하면 ‘현실적이고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히브리적 사유체계에서 ‘죽음’은 곧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됨’을 뜻한다.(참조 시 88편) 다시 말하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에서 분리되면, 죽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유목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은 집단적 공동체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의 침입이 있을 때는 유목 공동체가 서로 단결하여 외부의 침입을 막아냈다.

따라서 ‘가족 혹은 씨족 혹은 유목민 공동체’에서 일탈하면,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가인Cain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2)는 징벌을 받았을 때,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라고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살해한 죄 때문에 사막으로 쫓겨났으며, 그래서 그는 유리방황하는 자가 되었다. 이 사실은 광야 유목민의 ‘바슴’(표시)에서 식별되었다. 다시 말해서 가인은 무법자들이 표류하는 광야에서 방랑하는 자가 되었다. 그리고 하갈은 아브라함 가족 공동체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여 광야에서 사지死地를 배회한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창 21:14) 이러한 증언들을 고려해 볼 때, 히브리인의 사유체계에 의하면, 공동체를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출회당하는 것’은 ‘죽음의 형장’으로 내어 쫓기는 것이다. 예컨대 아담Adam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네(= 아담)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아담의 죽음을 선포’하시면서, 그를 ‘에덴동산 공동체’에서 내어 쫒으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Eden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창 3:23)

그래서 예수님도 탕자의 비유에서 집을 떠난 작은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 병행 15:32)는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은 천국잔치에 대한 아들의 ‘혼인 잔치’에 대한 비유(마 22;1-14)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성 밖으로 내어 쫓으라고 명하신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22;12-13) 이와 상응하게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공동체 혹은 교회 공동체에서 떠나 있었던 이방 사람들을 ‘죽었던 자’로 표현한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이상 앞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인의 사유체계로 기술된 구약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은 그 사유체계에 있어서 서로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을 기록한 사람이나, 예수님 그리고 사도 바울 모두가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히브리인의 사유체계’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경을 히브리적 사유체계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히브리적 사유체계’에는 어떠한 특성이 있는가? 이점에 대하여 앞으로 연재될 “히브리적 사유체계로 성경을 읽어라!”에서 하나, 하나 취급해 갈 것이다. 그러나 우선 그 개괄적 특성을 이야기 하면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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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기독교 문화산책
 
1. 은혜의 찬양 1곡 소개하기
 
밀알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lF4/6371
 
2. 문화산책
 
Age of Loneliness - Enigma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stD/212
 
VIII. 비교종교(이단)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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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사이비,사이비성에 대한 개념/82회-1997년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ZGU/9

박무수씨(부산제일교회)/84회-1999년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ZGU/10

이재록씨(만민중앙교회)/84회-1999년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ZGU/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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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샤마임 영성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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