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임 영성 공동체
주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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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추석 인사
추석 명절 잘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민족의 명절 중에 '추석'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고향길 조심히 잘 다녀오시구요^^
음식도 많이 드시고, 소화도 잘 되시는 행복한 명절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예배도 드리시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을의 풍요로움을 나누며
각 가정을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추석명절 되시기를....^^
혹 가정예배지가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밑에 중간쯤 보시면
추석가정예배 목록이 있습니다. 보시고 고르셔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온 가족에게는 건강과 기쁨이 넘치는 시간을 보내시길 다시 한 번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샤마임 영성 공동체 지심 드림]
샬롬^^
지심 정목사입니다.
샤마임의 영성수련을 함께 할 연구원 혹은 수련회원을 모집합니다.^^
『 지 심 』
영성 연구회원(혹은 수련회원)은 '이단'및 사이비 단체의 분들은 들어오실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샤마임의 영성수련은 교회의 사역을 돕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임을
다시 한 번 밝히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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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나눔
깊은 침묵으로의 여행
모든 거룩한 생각들과 부드러운 상징들,
기쁨과 환호 등 그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그에게 선사된 것 모두가 이제는 사소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그런 은총으로부터 완전히 추방되어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런 상태가 마땅치
않습니다. 욕심나는 것도 없습니다.
그는 양극 사이에서 커다란 고통과 압박을
겪습니다.
- 봐일너(I. Weilner) 『요한네스 타울러의 회심의 길.
타울러 신비주의의 체험토대』, 174 -
* 지금까지 익숙해 있던 것들로부터의 결별의 체험들은
우리의 삶에서 매우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40세 전까지
열심히 열정적으로 나아갔던 삶의 방향이 이제 '죽음'을
향한 인생으로 전환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매우 당혹스러움을
감출길이 없지요. 요즘 제 인생에도 이같은 변화가 찾아오는
변화의 여정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기도했던 통성기도도
열심히 하고 있는 '찬양의 열정'도 이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무엇인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봅니다.
무엇일까요? 이것은 아마도 깊은 침묵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일까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깊은 침묵으로 초대하시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의 삶....^^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시며, 지금까지의
삶 보다는 더 깊고 더 오묘하고 더 하나님과 친숙한 동행의
시간들을 요구하시나 봅니다.
오늘 저는 깊은 침묵 속에 들어가며 지금까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여지는 소망을 품으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샬롬^^
[지심의 반추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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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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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고스 신학회에 대한 소식
이번 주 학문과 나눔의 방에 올라온 글
한국 교회사에서 본 금주, 단연 운동
이상규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교회는 한 때 금주,단연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니고 있었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술과 담배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음주나 흡연이 그 어느 측면에서도 이롭지 못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사회적 환경때문에 어쩔수 없이 우리 시대의 문화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의 전통인 금주 단연이 약화되고 있고, 그것은 교회가 지도할 사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적 사안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술과 담배에 대해 한국교회가 어떤 입장을 취해왔는지를 뒤돌아보는 일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교훈이 되리라고 본다. 이 글에서는 초기 한국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금주 단연운동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음주,흡연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교회에서의 금주,단연
한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술과 담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이를 금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교회 초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성탄절에 술을 빚어서 교인들이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 있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신발장 옆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가 폐하면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도 있다. 또 장로교회의 첫 번째 선교사인 언더우드(H.G.Underwood)는 한때 흡연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화란 개혁파 계통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주초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또 부산 경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호주 선교사들 중에도 흡연을 하는 이들이 있었고, 흡연장면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있다. 말하자면 음주와 흡연을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 곧 불간섭의 영역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일정기간 음주문제에 대해 관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890년대를 거쳐가면서 그들은 술과 담배의 해악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금주와 단연은 신앙상의 유익과 건덕(建德)의 차원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지역적 차이는 있으나 한국에서는 초기부터 술과 담배가 신앙생활은 물론, 건강이나 경제적 손실, 그리고 극기나 절제등 국민 정신상 무익하다는 점을 가르쳐왔다.
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는 아편 사용에 대하여는 엄격한 입장이었으나 음주,흡연문제는 비교적 관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정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평소 그처럼 착한 사람도 일단 술을 마시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과 음주로 인하여 패가망신한 경우를 수차 목격하자 금주,단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신학적인 면에서나 생활자세에 있어 보수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이들은 안식일을 성수하고 노름을 범죄로 생각했으며 먹어도 유익이 없고, 안 먹어도 모자람이 없는 술과 담배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들에게 금주 단연을 권고하게 된 것은 주초의 심각한 폐단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은 도박과 축첩을 금하고 혼인, 장례 등의 악습과 구습을 타파하고 비합리적인 인습, 비과학적 의식을 개조하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금주,단연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00년대 후반기부터 금주,단연은 단순히 신앙생활의 유익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운동, 혹은 민족정신 함양운동의 차원에서 교회적으로 강조되었다.
금주,단연운동의 초점
선교사들은 금주 단연 운동의 추진 이유에 대해 크게 세 가지를 말했는데 그 첫째는 신앙상 유익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술 먹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없지 않았다("계주론", 죠선 그리스도인 회보, 32호, 1897.9.8). 즉,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금주,단연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둘째로는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인 이유를 들었다. 그래서 우생학적으로 본 음주의 해독에 대해 강조하고 관계 연구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셋째는 개화 혹은 국민의식 계몽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한국교회의 금주 단연 운동을 시기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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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전체 내용 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HMQ/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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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샤마임 영성 공동체의 후원 선교사 소식
김기성 멕시코 선교사님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4Yi/7
임채일 인도 선교사님 방 http://cafe.daum.net/shamaimprayer/LAaw/2
한국청소년사역연구소 http://cafe.daum.net/shamaimprayer/ImRA/1
멕시코 선교 소식 제 8호(2012091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샬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든 후원자님들께 감사의 인사와 함께 평강을 전합니다. 멕시코의 95%의 카톨릭 교회가 주술과 무속으로 변해서 더 이상 주님이 아닌 성인들을 섬기며 향을 피우고 닭을 바치는 광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해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도하며 여덟 번째 소식을 띄웁니다.
1. 차량 구입과 이사
먼저 선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희는 장안제일교회의 후원으로 중고 차량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은 7월 29일 주일 예배 후에 Mexicali를 출발하여 8월 8일 수요일에 Chiapas 주에 있는 Ocosingo에 도착하였습니다. 저희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차량에 문제가 생겨 여러 번 수리를 하느라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주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으로 안전하게 도착하였고 집도 적당한 장소에 월세로 얻게 되었습니다.
2. 사역
저희 부부는 임원석 선교사님과 함께 9월 2일 Tuxtla 에 있는 신학교 기념예배에 참석하여 인사하고 신학교 홍보를 하였습니다. 또 9월 3일에는 Santa Elena와 주변 지역에 신학교를 통해 지원하고 있는 교회를 임선교사님과 방문하여 격려하고 한국 교회의 지원금을 전달한 후 Ocosingo에 있는 신학교를 방문하여 그곳 노회장이며 학장님과 노회 가입과 협력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9월 5일에는 신입생 입학시험을 San Cristobal에 있는 신학교에서 16명을 대상으로 보았고 그들 가족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지원하고 16명을 Mexicali로 교통비 일부를 지원하여 보냈습니다.
또한 9월 9일 주일에 전에 자리가 없어 가지 못한 4명을 다시 보냈고 9월 12일에 아파서 치료차 늦게 온 David 학생을 보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인데 5일 수요일 예약이 꽉 차서 5명이 금요일 차량을 다시 예약했고 3명은 2시간 거리의 Ocosingo로 돌아와 저희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또 금요일 차량은 문제가 생겨 떠나지 못하고 주일에 다시 예약하여 주일까지 저희 집에 머물면서 지냈습니다. 현지 학생들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머지 재학생들은 각자 자유롭게 개강 전까지 Mexicali로 가게 됩니다.
Mexicali 신학교는 9월 17일에 개강을 합니다. 신학교는 개강을 하면 2주 동안 성경을 읽게 하고 새벽 기도회를 시작합니다.
3. 가족
저희 가족은 주일마다 신학생들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스페인어 보다는 각 부족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저희 가족은 예배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들의 삶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도착 첫 주에는 Monte Livano 교회 초청으로 청년들에게 간증을 하며 강의를 했습니다. 이 지역은 목회자가 부족하여 장로님들이나 리더들이 주일 예배 말씀을 전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아내는 가족을 돌보는 일 외에 함께 다니면서 사역을 돕고 있습니다. 체력과 건강을 위해 지혜와 시간을 조절할 필요를 느낍니다. 아들 하선이는 이곳 공립 중학교에 오전반에 자리가 없어 오후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과 선교 사역과 멕시코를 위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후원과 기도로 지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기도제목
1.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도록 지혜와 계시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기름을 부어 주소서.
2. 저희 가정이 주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매일 유지하며 더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3. 저희 부부와 하선이가 서로 사랑하고 또 주님을 더 알고 깊이 사랑하게 하소서.
4. 저희에게 충성을 허락 하시고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소서.
5. 저희 가정을 위한 깨어 기도하는 헌신된 800명의 중보기도자들을 일으켜 주소서.
6. 저희에게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채워 주소서. 저희가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게 하소서.
7. 저희가 겸손함과 주님의 사랑으로 현지인들을 대하도록 사랑의 은사를 부어 주소서.
8. 저희가 매 순간 마음을 잘 지키며 영의 생각을 하며 성령님을 따라 행하게 하소서.
9. 하선이와 저희를 위해 착하고 정직하며 진실하고 충성된 언어 교사를 붙여주소서.
10. 하선이가 이곳 생활과 음식에 잘 적응하게 하시고 동료 학생들과 잘 사귀도록 지혜를 주시고 어려운 순간들을 잘 대처할 수 있는 감각도 주소서.
11. 제가 지역과 밀림을 운전할 때 조심하게 하시고 위험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소서.
12. 제가 현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말씀을 허락하시고 기도에 기름부어 주소서.
13. 12월에 있을 미전도 밀림 지역 의료 및 복음 전도 여행에 주께서 선한 손길들 붙여 주시고 함께 가는 모든 현지 사역자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며 재정을 채워주시고 안전과 건강을 지켜 주소서.
14. 이 땅을 향한 주님의 마음과 뜻을 제가 깨닫게 하시고 그 마음과 뜻에 순종하여 선교하게 하소서.
멕시코 선교사 김기성, 김정희, 김하선 올림.
나훔가족
마야유적지
신입생 가족
입학시험
학생들과 예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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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내가 지켜야 할 36훈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CxK/696
영적 성장을 위한 십계명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91
이십대에 해야 할 37가지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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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세상보다 좋은 10가지 이유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31
예배 십계명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60
열린가족 10계명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CxK/708
열정적인 삶을 위해 버려야 할 7가지 습관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33
인생잠언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61
인간관계를 위한 10가지 원칙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83
온전한 삶을 이루는 4가지 방법 http://cafe.daum.net/shamaimprayer/HLHP/1773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사 40:18)라고 선지자는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느 것이나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고 말한다. 성경은 인간적인 면에서 인간의 용어로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다. 주의 팔이나 눈, 손, 입에 대해 말할 때 이는 실제로 하나님이 그러한 지체들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며, "그의 날개로 그를 덮으니라"(시 91:4)고 말했다고해서 하나님이 새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인간이 그 용어로 충분히 하나님을 설명하고 드러내며 또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는 인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용어나 비길 것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한 사실들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욥에게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 11:7)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답은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그 자신을 나타내주신 그 이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어떤 개념은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고유하신 하나님의 속성(하나님만 가지고 계신 속성들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특성들이 성경에 나타나있다.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속성"이라 부른다.
1. 자존하심
하나님은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다(요 5:26). 그는 영원 전부터 계셨으며 창세 전부터 계셨다(창 1:1, 요 1:1).
2. 영원하심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는 하나님이시다(시 90:2, 참고:합 1:12).
"스스로 있는 자"께서는 (출 3:14)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다 가지고 계시며, 시간을 초월하신다(계 4:8).
3. 무한하심
이 말은 그 어느것도 하나님을 구속하거나 제한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다(왕상 8:27).
4. 전능하심
전능의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욥 42:2, 마 19:26) 이를 하나님의 "전능"이라 부른다.
5. 전지하심
하나님은 무한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시 147:4~5). 하나님의 이 무한한 지식과 지혜에는 그 무엇을 더할 수 없으며, 그 앞에 무엇을 감추거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놀라시게 할 수 없다.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라 부른다. 그는 처음과 끝을 보신다(사 46:10). 이는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를 포함한다(행 2:23).
6. 편재하심
하나님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그는 동시에 어디든 계실 수 있다.(시 139:7~12) 이를 "하나님의 편재하심"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피할 수 없는 분이다(렘 23:23~24, 암 9:2).
7. 불변하심
하나님은 그 다루시는 일이나 행동은 바꾸실 수 있지만 그의 영원한 특성이나 목적에 있어서는 절대로 변화가 없으시다(말 3:6, 약 1:17). 그는 절대로 변덕스럽거나 불충실하지 않으시다. 이를 하나님의 "불변성"이라 한다.
8. 자족하심
하나님은 부족을 느끼시지 않기 때문에 그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행 17:24~25).
9. 주권자이심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 통치하시며 아무도 그를 방해할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그의 뜻에 따라 행하신다(엡 1:11, 사 40:13~14). 하나님은 그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실 수 있는 무한한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롬 9:15~18). 그는 아무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시다.
상대적인 속성(사람들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속성)
1. 사랑
이는 다른 사람들의 최고의 선을 구하는 희생적이며 또한 헌신적인 표현이다. 이는 실질적이면서도 유익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도록 그 아들을 주셨다(요 3:16). 그의 사랑은 상대방의 반응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사랑이다. 사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적이나 감사치 아니한 자 그리고 악한 사람까지라도 사랑하신다(요일 4:10, 엡 2:4~5, 롬 5:8, 렘 31:3). 사랑은 동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내적 동정 도는 연민을 수반하고 있다(시 86:15, 마 9:36, 14:14).
2. 분노
회개하지 않는 모든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골 3:5~7, 롬 2:4~6) 사랑에 모순되지 않는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이다. 로마서 1:18은 그의 진노의 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3. 은혜
이는 선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거저 값없이 베푸는 하나님의 호의이다(롬 4:4~5, 11:6). 하나님은 은혜로 인간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엡 2:8, 딛 2:11).
4. 자비
대적하는 자들이나 궁핍한 자들에게 동정이나 연민으로 인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이 자비는 은혜와 유사하다(시 103:8). 하나님은 자비에 부요하시다(엡 2:4).
5. 거룩
하나님은 모든 만물에서 떠나 계시며, 그 안에는 악이나 불의가 없으시다(시 99:9, 사 57:15). 그는 "거룩하신 자"라 불리웠으며 하늘은 그의 거룩을 노래하고 있다(계 4:8, 사 6:3).
절대적인 면에서 하나님 외에는 거룩한 자가 세상에 하나도 없다(계 15:4, 히 7:26). 이 하나님의 속성이 죄에 대한 처벌을 요구 하신 것이다(사 59:2).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벧전 1:16).
6. 의와 공의
의와 공의는 신약 원어의 동일한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공정이나 비편파성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어떠한 잘못도 있을 수 없다(느 9:33, 시 145:17). 그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며(딤후 4:8) 또한 언제나 의를 행하신다(창 18:25).
그의 공의는 죄를 벌할 것을 요구하시지만, 사랑은 그 값을 지불하여 그는 공의를 행하시면서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자가 되시는 것이다(롬 3:26).
7. 진리
하나님에게는 거짓이나 불충실 그리고 모순이 없으시다(민 23:19, 요일 5:20). 그는 진리이시다(요 14:6). 그는 절대적으로 신실하시다(딤후 2:13, 계 19:11).
8. 인내
자제력을 구사하는 것은 위대한 능력을 가지신 분의 한 속성이다. 불유쾌한 일에 오 참으시고 관용하시는 것이 인내의 한 면이라면(롬 9:22, 창 13:18), 다른 사람들의 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인내의 또 다른 면이다(벧후 3:9).
9. 지혜
하나님은 전지하시지만 그 지식을 무한한 지혜 즉 건전한 판단과 깊은 이해로 나타내신다(롬 11:33, 엡 3:10).
"그는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사 40:28) 전지하신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롬 8:27, 16;27).
10. 선
그의 선하심은 사람들을 회개케 하신다(롬 2:4). 하나님은 이 친절과 선 또는 자비로 충만하시다(시 119:68, 145:9).
인간들의 고난이나 슬픔으로 인하여 그의 선하심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11. 관대함
하나님은 관대한 분이신데 이는 무엇보다도 큰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심에 잘 나타나있다(요 3:16). 그래서 하나님은 관대히 베푸시는 자들의 문을 열고 축복을 내려부으신 이가 바로 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말 3:10).
절기 예배 (추석명절 자료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클릭해 보십시오^^)
성서 고고학적 12개의 수수께끼
구리 두루마리: 보물은 어디에?
지금까지 발견된 사해사본들 중의 하나인 구리 두루마리에는 60가지 이상의 보물목록과 감춰진 장소가 기록되어 있다. 이 구리 두루마리는 1952년에 발견되었는데, 구리에 기록된 유일한 사본이다. 어쨌든 이 기록의 몇 구절은 아직까지 해석이 불가능하여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 보물들 중에는 무시할 수 없는 양의 금과 은이 포함되어 있다. 보물이 감춰진 장소에 대한 마지막 설명과 관련해서 이 구리 두루마리는 또 다른 두루마리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 기록에는 이 보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 목록에 기록되어 있는 보물 중에서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이런 상황이나 장소묘사의 부정확성 등으로 인해 많은 학자들은 이 기록이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을 놓고 발전된 전설에서 나온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쿰란: 에세네파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쿰란의 유적지와 그 주위의 동굴에 대한 고고학적인 연구를 통해 현세기의 가장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사해사본이 바로 그것이다. 1947년 사해에 근접한 동굴에서 우연히 발견된 최초의 두루마리들을 시작으로 하여 그 근처의 동굴과 쿰란 유적지의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었다. 고고학자들을 난처하게 만든 쿰란의 거주자들은 하스모니아시대(기원전 2-1세기)부터 시작하여 로마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의 대반란이 진압되기까지(기원후 68년) 이 지역에 살았다.
지금까지 쿰란에 거주하던 이 종교인들이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이들은 제 2 성전시대의 중요한 종파 중에 하나이던 에세네파 사람들일 가능성이 있다. 늙은 펠리니우스는 기록하기를 이 에세네파 사람들이 사해 서쪽 해안, 대추나무들 사이, 엔게디 북쪽에 살고있다고 했다. 쿰란 언덕이 위치나 발굴을 통해 밝혀진 쿰란 거주자들의 단순하고 금욕적인 생활상은 에세네파에 대한 이런 표현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정되기로는 쿰란의 거주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관련된 책들을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었으며, 어떤 위험이 닥쳐오자 이 두루마리들을 쿰란 근처 동굴에 숨겼다고 한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조직이나 규율을 묘사하고 있는 두루마리들과 발굴에 의해 드러난 유물들 간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이곳에서 최근 발견된 토기조각 위의 기록에 의하면 '호니/후니(????)'라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카트 하야하드(???? ??: 함께 하는 종파라는 뜻)'라는 이 단체에 기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위의 주장을 반증해 준다.
몇몇 학자들은 쿰란 유적지와 사해사본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판단에 의하면 쿰란 유적지는 지방의 유지의 주택, 혹은 작은 요새였을 뿐이다. 로마에 대항한 유대의 반군들은 제 2 성전이 파괴되기 직전 다양한 두루마리들을 예루살렘에서 가져와 사해 근처의 동굴들에 감추었다. 이런 과정에서 쿰란 거주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수는 있다.
위 글 전체 보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lF0/412
마 1:13-16
법적혈통의 족보
우리들이 가끔 자주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 '법대로 하십시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물론 이 말은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그러나 '법'이 허용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종결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13-15절의 족보는 '아비훗으로부터 야곱'까지 기록된 족보인데, 이 이름들은 본 족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으로 '왕적 관점'에서 기록된 말씀으로 많은 난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인간편에서 이 족보는 너무도 복잡하고 미묘한데,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복잡한 일들도 초월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16절에서 일어납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 아닌, "헬리의 아들"(눅 3:23)이었는데, 오늘 족보에는 야곱의 아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야곱은 '마리아'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형제가 '헬리'입니다. 맛단이 야곱과 헬리를 낳았습니다. 지난번에도 살핀바와 같이 '계대풍습'이 여기에서도 적용됩니다. 즉 법적으로 야곱의 아들로 '요셉'이 허락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야곱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 혈통을 잇는 역사적인 사건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오늘 말씀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란 '하나님의 은혜의 법' 아래에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혈통으로 이스라엘과 관계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가 '우리'를 위한 역사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법'은 이스라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 우리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임을 확신하는 믿음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아멘.
어느 날 새벽,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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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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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양식이 세 가지라는 것을 앞에서 언급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늘에 계시다가(先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成肉身),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사역을 마치시고, 다시 승천(昇天) 하셔서 지금까지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시간적인 순서대로 세가지 양태로 정리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먼저 계심」(先在)과 「육신을 입으시고 땅으로 내려오심」(成肉身)과 「다시 하늘로 올라가심」(昇天)을 시간적인 개념을 가지고 이해하면서, 성자께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계시면서 일하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먼저 계심(先在)」에 대해서 성경과 교회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찾아 보도록 하겠다. 그리스도의 선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본질을 증거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한 확실한 증거를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이 기도는 관상기도의 마지막 단계이다. 아빌라 데레사는 이 기도의 단계를
『영혼의 성』제 7 궁방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완덕 단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이 기도의 상태는 바로 하나님으로의
변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에 의한 하나님에로의
변형과 함께 참여에 의한 하나님의 하나님, 즉 인간적이라기보다 더욱 신적인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빌라의 데레사도 이 기도를 결혼과 비유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적 약혼과 영적 결혼의 차이는 마치 약혼한 두 사람과
그후 결합하여 다시 헤어질 수 없는 부부의 차이와 같다.” 이런 변형일치의 기도는
영혼의 성중 왕실로 들어가는 기도로서, 하나님과 영혼은 사랑이 다할 때까지
서로를 주게 되는 단계로, 여기에서는 어떠한 탈혼도 일어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영혼이 강화되어서 충분한 사랑의 힘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으로,
이러한 체험 속에서 영혼은 성삼위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하여 아빌라의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궁실로 들어서게 된 영혼은 지성의 보임, 그 어떤 진리의 표상을 통하여 지성하신
삼위일체가 그 세 위 전부가 번쩍이는 구름처럼 먼저 그 정신을 불태우면서 나타나
보이십니다. 세 위가 똑똑히 구별지워져 보이시면, 영혼은 그 받은 묘한 인식으로
세 위가 다 하나의 실체, 하나의 힘, 하나의 앎,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더
참될수 없이 깨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앙으로 믿는 바를 여기서는영혼이
깨쳐서 어쩌면 본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상상의 보임이 아니므로 육안이나
영안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여기서야말로 세 위께서 다 함께 영혼과 사귀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고, 주께서 말씀하신 저 복음의 말씀을 깊이 깨치게 하십니다.
이러한 변형의 일치의 기도에서 세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하나님으로의
변형, 둘째, 상호순종, 셋째, 항구적인 사랑의 일치”이다. 이것에 대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혼이 이와 같이 자리를 비워드리면, 즉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아닌 모든 것을 말끔히 벗어버리는 일이므로, 피조물의 가리개와 때를 떨어 버려,
하나님과 온전히 뜻을 같이 하면, 그 순간 영혼이 밝아지고 하나님 안에서 변화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의 초자연적 존재를 주시므로, 영혼이 바로 하나님인 듯,
하나님께 있는 것이 제게도 있는 듯이 보여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의 이 은혜를
내리시면, 합일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모든 것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서 참여적 변화가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영혼이기보다 하나님인 듯, 그렇다 참여로서의 하나님인데,
그러나 비록 변화는 했다 할지라도, 전과 같이 하나님의 본질과는 아주 다른 것이니,
아무리 태양 빛을 함빡 받는 유리라도 그 광선과 본질을 달리함과 같다.
이러한 변형일치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첫째, 자신을 완전히
망각하게 되고, 둘째 고통 받기를 소망하게 되며, 셋째, 박해받는 것을 기뻐하게
되고 넷째,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이 간절해지며 다섯째,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하게 되며, 여섯째 탈혼이 없게 된다. 이러한 효과에 대하여 아빌라의 데레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혼들은 일체에서의 완전한 이탈, 혼자 있는 고독, 아니면 남을 위해 보탬이 되는 일에
골몰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혼의 메마름이나 마음고생보다도 우리 주님께 대한 생각과
부드러운 사랑이 차 있습니다. 오직 하나 주님을 찬미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따름, 혹시
마음이 느슨해질 때면 주께서는 앞서 내가 말한 방법으로 일깨워주십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이 충동은 내가 충격이라고 말한 것처럼, 영혼의 심부에서 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충동이 매우 감미롭기는 하나 상상 또는 사고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스스로 무엇을 해서 이루어졌다고 느낄 만한 것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일은
매우 잦게 으레껏 일어나는 일이므로 관찰하기가 아주 쉬웠습니다. 무릇 불은 아무리
뜨겁게 타오르더라도 그 불꽃이 아래가 아닌 위로 치오르기 마련인 것처럼, 여기서도
이 마음의 움직임은 영혼의 중심에서 나와 다른 능력들을 일깨워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변형일치의 단계는 이제 활동과 관상의 일치로 이어져서 직복직관의 효과를
가져오게 되어서 완전한 성숙의 단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지심-
*** 본 주제는 월간 Church Growth(교회성장) 별책 부록, "설교뱅크"(2010년 1월호부터)에 연재될 것을 회원들을 위하여 원본을 미리 올려 놓는 것입니다.
- 히브리적 사유체계로 성경을 읽어라! -
김재진 (케리그마신학연구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겸임교수)
II. 누가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1.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
동적이고 공간적 인지구조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역사 속에 서 히브리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인지하였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2)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시편 84년 2절에서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2)라고 토로한다. 이렇듯 히브리인들에게는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의식이 마음 깊이 인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할 때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 대제사장도,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고 예수님을 심문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항상 ‘살아서 일하고 계시는 분’으로 인지하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유대인과의 안식일 논쟁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개정)라고 증언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하나님을 의미하는가? 즉 하나님은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시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인의 신앙의식 속에는, ‘하나님은 현존해 계시는 분,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이 고난 속에서 부르짖을 때,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하나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모양으로든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존재를 증명하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신적 존재를 의심하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 14:11)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의 존재, 그분의 말씀은 그분이 행하시는 일(활동)으로 입증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의 최초의 신앙고백인 신명기 26장 5-9절에서, - 앞장에서도 언급하였지만 -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신 26:7-9)라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롤리H.H.Rowly는 다음과 같이 구약의 하나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구약의 사상은 하나님 안에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약에서의 하나님은 체험의 하나님이시지, 사유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톤이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히브리인의 신앙’이 히브리인 인지구조, 곧 신앙의 특성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히브리인의 시인은,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시 10:4, 개정)고 생각한다고 증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신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믿는 자는 악인이고, 어리석은 자이고, 마음이 부패한 자이다.(참조. 시 53:1; 45:14) 그래서 밀톤은 “하나님께서 심판과 구원을 통해 오늘도 계속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가? 그것은 ‘창조활동’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성경의 맨 앞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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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의 역사
1. 초기의 선교활동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온 지 13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매우 천천히 중국 땅에 뿌리를 내렸다. 초창기 세 번의 선교를 시도했다. 그래서 당시 네스토리안 기독인들(618-907), 원대의 프란체스코 수도사들(1271-1368), 그리고 明(1368-1644)과 淸(1644-1911)대의 예수교 선교사들 등 여러 선교사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선교 노력들이 중국인들이 영적인 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1) 네스토리우스파의 첫 시도(618-907年)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당대 초기에 비단길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다.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가장 찬란했던 왕조들 중 하나였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제국이 되었다. 중앙 아시아, 페르시아 그리고 인도와의 교역은 당의 보호 하에서 번창했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비단길을 따라 수도인 장안으로 들어왔다. 군사력과 정치적 힘에 자신감이 있던 당의 왕실은 외국인들에 의해 전해지는 종교를 묵인했으며 후원하기까지 했다.
외국의 예술과 음악 역시 환영을 받았다. 당시 황제 자신이 종교를 연구하고 그것을 승인했다. 황제의 칙령으로 알로펜은 수도원 건축을 허락 받았고 포교 활동을 보장받았다. 당시 몇몇의 주요 도시들에 적어도 50개 이상의 교회가 세워졌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는 대체로 금욕주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대개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AD 84년 황제의 칙령에 의해서 외래 종교의 수도원, 사원, 그 밖의 모든 재산들이 몰수당하고, 당의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본국과의 지원도 끊어지고, 중국인 지도자들을 세우지 않음으로 인해 중국인으로부터 고립되어 갔다. 10세기경 중국의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2)원조(元朝:1279-1368年)∼송(宋)의 그리스도인
1280년경 몽골족은 위대한 징기스칸의 영도하에 동유럽에서 중국에 이르는 제국을 이룩하였다. 몽골족의 원나라는 1368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인들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13세기 초 로마 카톨릭의 선교사들도 들어왔다. 이러한 선교 활동들은 몽골 제국이 몰락하기까지 번영하였다. 몽골제국은 종교에 대해 비교적 관용했던 것에 주로 기인한다. 황제는 포고를 내려 모든 종교가 각기 나름대로 존중받을 것을 보장했다.
13세기 후반, 아득한 동방에 대한 로마의 관심은 마르코 폴로와 그의 삼촌들의 놀라운 중국 여행으로 인해 새롭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1266년 그들이 첫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교황에게 쿠빌라이 칸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에 헌신한 사람들을 최소한 100명 이상 중국으로 보내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로부터 20년 후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인 몬테 코르비노 출신의 요한(John of Monte Corvino: 1247- 1328)을 중국에 보내고, 계속해서 교황은 로마 카톨릭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더 많은 프란체스코 선교사들을 보내 수 천 명을 회개시켰다.
1305년에 6천여 명의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뻬이징에서 성당을 셋이나 세웠다. 송의 지도자들은 네스토리우스파와 프란체스코파 신자들을 추방하였고 또한 친 몽골파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으로 그 종교의 개종자들을 몰아내었다.
(3) 명과 청대의 로마 가톨릭 선교
1582년에 드디어 마테오 릿치(Matteo Ricci: 1552-1610)는 중국 내에서의 예수회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의 전략은 지식 계층의 호응을 얻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층계급의 복음화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릿치는 천문학, 수학 시계수리, 지도 제작 기술로 황제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베이징에 머물 수 있게 되었고, 기독교 교회의 기반이 점차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중국의 기독교 문학이 발전해 갔다.
마침내 릿치는 2천여 명의 교인들과 기독교를 도와준 많은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남겨 둔 채 1610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중국에 기독교회와 선교의 견고한 기초를 닦아 놓은 것이었다. 그 후 2세기 동안 잦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중국에서 계속 뿌리를 내렸다. 청의 위대한 황제 강희제는 자신을 개인 교수하고 고위 관리들을 가르치게 하기 위해서 베르비스트를 초빙했다. 1692년에 황제인 강희제는 기독교의 법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칙령을 공포하였다.
1674년 첫 번째 중국인 성직자인 로웬 챠오가 주교로 임명되었다. 다양한 교단의 중국에서의 성공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의식논쟁"은 일부 특정의 의식 즉, 조상숭배에 참석의 해야하느냐, 말아야하느냐 하나님의 이란 용어를 중국식으로 예수회는 대개 "상제(上帝)"나 "천(天)"을 사용했던 반면, 도미니크파 선교사들은 "천주(天主)"가 하나님의 유일한 정확한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례논쟁은 1645부터 1745년까지 계속된다. 이에 반작용으로 황제인 강희제는 릿치에 의해 세워진 강령에 위배된 선교사들은 남아 있을 수 있었고, 후계자인 건륭제가 기독교를 반대하는 포고를 내림으로 선교사들은 추방되거나 은신했다. 서양 및 중국인 성직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은밀하게 복음을 전했다. 신자들은 순교 당하고 교인들은 흩어지게 되었다.
2. 기독교 선교 활동 역사
1807년 스코틀랜드 장로 교회의 모리슨이 마카오에 도착한 후부터 1950-51년 사이에 중국에서 선교사들이 추방되기까지 개신교의 업적에 대한 기록은 아주 복잡하다. 개신교 선교의 시기를 다음의 4시대로 나눌 수 있다.
준비기(1807-1842), 개척기(1843-1869), 확장기(1861-1900), 발전기(1901-1949).
(1) 준비기(1807-1842)
19세기 중국의 힘이 쇠퇴해 가던 반면, 서양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급속 성장해 갔다.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다른 서양 국가 상인들이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서 그전에 이루어 졌던 독점 체제를 와해시키기 시작했다. 청조는 밀(William Milne)과 프러시아 출신의 칼 구츨라프(Karl Gutzlaff), 미국 출신의 피터파커(peter Paker)와 선교사역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들은 중국어를 배웠고,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했으며,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를 출판, 배포사역을 감당했다.
최초의 중국인 목사는 리안 아파(Liang Ah-Fa)로 목사 겸 복음 전도자였다. 홍콩은 99년 동안 영국에게 양도됨으로 선교회들은 선교사들을 동남 아시아에서 중국의 5개 항구 도시들과 홍콩으로 재배치시켰다. 그것에서 개신교 선교회들은 복음 전파, 교육사업, 의료 봉사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그들의 사역을 전개해 갔다.
그러나 불평등 조약들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외국인들에 대한 분노를 가중시켰다. 이로 인해 기독교 선교는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 기간 중 선교 노력의 간접적인 결과 중 하나로 태평천국의 난(1851-1864)이 일어났다. 우상으로 가득 차고 부패한 중국을 정화시키라는 상제(上帝)의 소명을 받았다고 한 홍시우취엔(Hong Xiuquan)이 천국(天國)을 건설하고자 했다.
이 난은 급히 군대를 조직해 청의 군대를 지원함으로 무산되었다. 선교사들이 이 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서구 국가들을 지지했으며 만주 왕조를 도와주었다. 태평군들은 실제로 만주인들 보다도 외국인들에게 더 호의적이었다. 그들은 중국이 서양과의 교역하는 것과 여행하는 것에 대하여 개방적이길 바랬다. 그들은 선교사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구 열강의 간섭으로 순수한 중국식 기독교운동은 무산되고 말았다.
(2) 확장기(1861-1900)
태평천국의 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서양의 침략이 계속되는 상황하에 1861년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조약으로 중국 본토에서 땅을 소유하고 교회를 세우고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인 장애물들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만주 정부가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허드슨 테일러의 지도하에 있던 중국 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위시한 다양한 선교회들로 인하여 기독교는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이시기의 선교 활동은 일반 교육과 서양의 과학과 기술의 소개, 의료 및 사회적 봉사와 사회개혁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특징 지워 진다. 선교사들은 아편, 노름, 매춘 및 전족(纏足)을 없애려는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또한 여성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인권 운동을 벌이는 데에도 한 몫을 감당했다.
1870년대와 1880년대에는 구제의 손길을 폈다. 사회 봉사에 그들의 사역을 더욱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영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중국 침략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것이다. 비근한 예로 선교사들은 중국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확장시키려는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조종당했다. 복음 전파의 결과들을 급히 얻으려는 일부 선교사들의 조급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중국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둔감한 태도와 도전적인 방법을 서슴치 않고 사용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중국인들과 선교사들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반기독교 폭동이 양조우(楊洲:1868)와 티엔지(天津:1870)에서 발생하였고, 그곳에서 개신교와 카톨릭 선교사들은 엄청난 손실을 치렀다.
1900명 이상의 중국인 개신교 그리스도인들, 186명의 개신교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살해되었다. 3만 명 이상의 중국인 카톨릭 교인들과 47명의 외국인 성직자 및 수녀들 역시 살해당했다. 세력가들은 외세를 중국 밖으로 몰아내는 방편으로 이용하였다. 반제국주의 반서구운동은 중국의 기독교 교회를 뒤흔들어 놓았고 선교 사업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890년경 선교 운동의 확장기 말엽에는 중국인 개종자의 수는 112,808명으로 늘어났다. 2,000여명의 외국인 선교사와 1600여명의 중국인 사역자들이 중국에서 봉사했다. 중국 교회는 크기와 질 양면에서 성장했다. 복음은 거의 중국의 모든 지역에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중국의 문화와 사회의 주류에 침투되지 못한 채 수많은 중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외국 기관으로 비춰졌다.
(3) 발전기(1900-1949)
중국 관리들과 빈곤한 농민들의 격분으로 인하여 1900년에 의화단 사건(The Boxer Rebellion)이 발생했다. 태평 천국의 난은 의화단 사건을 또한 지원했는데, 외국 8개국의 군대가 베이징에서 중국 반란군들을 몰아냄으로 의화단 사건은 종결을 맺었다. 의화단사건으로 서구 열강들의 세력을 증가시켰으며, 부상하는 민족주의 운동의 불만과 적의의 초점을 만주 왕실에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게 했다. 중국은 또다시 굴복했다. 제국주의 세력은 큰 배상을 요구했으며, 만주정부는 중국의 내부 및 외부적인 문제들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의화단 사건으로 반성과 함께 선교사들과 본토의 중국인 동역자들과 평등한 동반자 의식을 발전시켜 나갔고, 기독교가 중국의 변화하는 상황과 문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중국 그리스도인들 스스로에 의해서 새로운 교회들이 세워졌고, 독립 교회의수는 급속하게 증가되었다. 많은 중국인들은 확신과 소망을 갈구했다. 수많은 중국인들은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었다.
1911년 쑨원이 이끄는 공화국 혁명은 쇠약한 만주 왕정을 와해시켰다. 손문의 지도하에 있던 혁명 운동은 점차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국민당만이 명분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상호간에 피를 부른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온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과학적인 지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기독교 문명으로 간주되었던 서구를 본받으려든 중국 지식인들의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베르샤이유 조약으로 중국에서의 제국주의의 통치가 종식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독일이 중국에서 소유했던 지역을 일본에게 할양 받도록 조인하였다. 이러한 사건의 추이로 중국의 지식인들을 격분시켰으며, 민족주의자들은 직시하게 되었다. 베르샤이유 조약에 항의하는 시위가 1919년 5월4일 에 일어나고, 이를 기점으로 몇몇 지도자들은 서구의 자유주의로부터 등을 돌려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에서 실행 가능한 혁명 이념과 전략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적인 위기를 견디며 중국의 민족주의가 중국적인 동일성의 기반으로써 유교문화를 대치하긴 했으나 중국을 하나로 묶어주는데 필요함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공산주의자들은 한발 앞서서 중국의 문제들을 무신론적 유물론의 방법으로 해결함으로써 이러한 이념적인 공백을 메워 버렸다.
마오쩌뚱은 비록 1920년대에는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남아 있었지만, 그 역시 마르크스주의에로의 유사한 지적인 전향을 경험했다. 국민당과의 내전 와중에 일본은 만주를 침략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그들의 야욕을 넓혀 갔다. 중일전쟁이 격화되었을 때, 마오쩌뚱의 게릴라전 이론은 1938년 - 1940년 사이에 벌어진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성공적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긍정적인 개혁들로 인하여 그들은 점점 더 많은 대중적인 지지를 획득해 갔다. 1946년 미국의 마샬 장군은 연합 정부를 구성하라고 지시했으나, 공산당과 국민당 양자는 권력에 대한 그들의 야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면적인 내란이 일어났고, 1949년 10월 1일에 제1회 인민 정치 자문 평의회를 개최하였고, 10월1일 마오쩌뚱은 베이징 자금성의 천안문에서 중화 인민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였다.
3. 근대사와 기독교
(1) 교회에 대한 통제와 박해가 증가된 시기
1949-1966년의 기간 중, 교회는 일정 한도 내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교회에 대한 압력은 부단히 증가되어 갔다. 1950년, 총리 죠우언라이의 영도 하에서, "그리스도인 선언(Christian Manifesto)"에 서명한다. 그 목적은, 교회를 외국과의 유대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여, 다음 해에 결성할 삼자회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있었다.
1950년대에 수많은 그리스도인 목사와 사역자들은 삼자회에 협조하기를 거부함으로 인해 결국 체포되어 수년간 투옥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1979년 후에야 비로소 복권, 석방되었다. 시골 교회는 이미 1950-1953년에 토지 개혁 운동 감행될 때 폐쇄되었다. 1958년 말기, 원래 64개였던 북경의 교회는 네 곳만이 개방되었고, 200개의 상해 교회는 23개로 줄었으며, 기타 다른 도시에도 1-4개밖에 남지 않는다.
(2) 문화혁명-전면적 종교 탄압
문화 대혁명은 1966년 5월에 젊은이들이 홍위병 집단을 구성하여 사대구습을 소멸하고, 구 지식인, 전문직업인, 종교인 그리고 마오쩌뚱과 좌파에 대해 반대할 우려가 있는 정부와 당의 지도자 등을 공격하였다. 대규모의 유혈극과 엄청난 수난이 있었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박해와 홍위병과 노동자들 간의 경쟁적인 파벌로 인한 싸움의 와중에서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시무시한 수난을 겪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혹독한 박해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특기할 만하다. 이때 극좌 분자들은 당과 종교의 "평화적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종교는 "아편"이라고 규정했다. 1965년에는 극좌파가 득세하는데, 문혁 기간중의 박해는, 무력으로 종교를 없애야 한다는 신념의 자연스런 결과로 치닫는다. 모든 종교 단체 건물은 훼손되고 폐쇄되었다. 종교 서적 및 상징물은 모두 파괴되었고, 어떠한 종교적 신앙의 표현-십자가를 다는 것까지-도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수색되었으며 성경 및 다른 여러 책들은 모두 몰수되어 잿더미가 되고, 많은 이들이 투옥되거나 노역에 처해졌다. 어떤 이들은 혹형을 받았으며 또 어떤 이들은 그런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기도 했다.
(3)비교적 완화된 정책의 실시
1977년부터 현재까지는 고무적인 양상, 문혁 기간에 극좌 분자에 의해 폐쇄되었던 종교 사무국은, 1977년초에 중국 공산당의 허가를 받아 일을 다시 시작했다. 같은 해에, 수년간 잠적했던 "애국" 종교 지도자들이 정부 기관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1978년 3월 다시금 조직되었다. 그 당시 정치적인 통제는 완화되어, 공산당은 빼이징 민주 벽을 개방할 정도로 상당한 언론의 자유를 허용했다. 각 도시의 재개방된 몇몇 교회들마다 사람으로 가득 찼으며, 그들의 대부분은 청년이었다. 도시와 농촌에서는 모두 가정 교회가 급성장하여 전도하거나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문혁의 정책이 급전되었으므로, 당 간부들도 "극좌 분자"로 몰릴까봐,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보고도 종종 못 본 척했다. 그 결과, 중국은 종교적 부흥 같은 것을 겪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더불어 거짓 종교인 마오져뚱 종교에 눈을 돌리기도 했으며, 특히 농촌에서는 미신이 다시 활개를 쳤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모여들었다. 이때 사찰과 회교 사원도 다시 개방되었다.
2] 중국의 기독교 상황
중국 정부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에 입각한 것으로, 19세기의 과학 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종교란 인류의 구시대적 유물로서 그것이 혁명 과정을 저지시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근본적으로 무신론이며 물질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없으며 사후에는 어떤 세계도 없다. 레닌주의는 이렇게 하여 독특한 중국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종교방면에 있어서 마오져뚱은, 철저히 공산주의 의 기본 교조에 의거한다. 마오져뚱의 천재성은 서양의 사상 체계를 중국 문화에 적용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 있다. 마오져뚱에게 있어서 중국은, "인간의 왕국"이고. "우리의 신은 바로 무수한 중국 인민들이다."라고 말한다.
떵샤오핑의 경제 개혁 정책이, 마오져뚱 말년 정책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해도 그의 기본 사상은 여전히 공산주의다. 1985년 3월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중국 현대화의 궁극적 목표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임을 표방하고 있다.
1982년 당과 정부는 현황을 검토한 후 두 개의 문서를 반포하는데, "19호 문서", "국민 헌법"성명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신앙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종교 문제에 대한 우리 당의 기본정책이다. 이것은 장기적 정책으로, 장차 종교가 자연히 소실될 때까지 계속 집행될 정책이다. 종교 자유의 정책은 다만 현재의 전략일 뿐이며 종교는 장차 자연히 소멸될 것이니, 공산주의의 최종 목표와 상충되지 않는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유해한 것이며, 국가의 진정한 통치권은 무신론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관점은 현재도 변하지 않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애국" 종교 단체를 승인함으로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중앙집권적인 통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8개의 국민 애국 종교 단체를 승인했고, 그중 다섯 개 단체는 기독교와 천주교에 속한다. 공산당은 이 단체들의 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각 급 애국 종교 단체의 기본 임무는, 정부에 협조하여 종교 신앙 자유의 정책을 실행하는 가운데 종교인들의 부단한 애국적·사회주의적 각성을 도모하며, 종교계의 합법적 권익을 대표하며, 종교인들이 정상적 종교 활동을 하도록 조직 및 지도하고, 종교와 관련된 공작을 잘 처리토록 한다. 모든 애국 종교 단체는 당과 정부의 영도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18세 이하의 청소년에게 전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19세 이하의 청소년들을 입교시키거나, 사찰로 보내 중이 되게 하거나 종교 경전을 학습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1983년 12월, 「중국 청년보」는 청소년의 무신론 교육 강화를 호소했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미신의 해악과 종교의 악영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삼자교회의 예배 시에 어린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제상으로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아이들은 출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출석을 금지시키면, 삼자 교회에 나오던 부모들이 가정 교회로 떠나갈 것임을 교회 지도자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정책과 국제 관계
중국 공산당은 종교가 국제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종교계의 대외적 관계는…우리 나라의 정치적 확산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국민헌법"에도 명시한 것처럼 중국 공산당도 이런 경고를 했다.
"세계의 종교적 반동 세력은, 특히 로마 교황청과 기독교 선교회는 각종 기회를 틈타 침투 활동을 벌여, "중국 재탈환의 발판 마련"을 위해 기를 쓴다. 종교적 방면에서 우리의 방침은, 국제적 우호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되, 적대적인 외세의 침투는 어떠한 것이든 결연히 반대한다." 이처럼 중국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두려워하며, 강하게 막고 있다. 이로 인해 라디오나 문서, 혹은 기타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러 중국에 가는 것을 막고 있다.
1. 삼자교회
정부 통제의 신사회(新社會)내에 있는 여러 비공산주의적 조직을 감독하는 부서가 바로 통전부(統戰部)이다. 이 통전부의 기능은 사회 다수 단체의 지지, 또는 최소한 묵인을 얻어내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반대 세력을 약화, 고립화, 중립화시켜서 마침내는 분화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통전부는 국가 내 소수 민족, 부농, 민족 자본가(상인과 공업가) 및 각종 종교 신도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임무를 감당한다. 통전부는 종교 사무국 간부를 관리 및 임명하며, 종교사무국은 "애국" 종교 단체를 관리한다(삼자 교회 및 중국 기독교 협회 포함).
삼자회는 종교 사무국 책임 하에서 교회라기 보다는 정부와 교회간의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삼자회는 정부의 한 행정 기관으로, 개방된 모든 교회를 통제하며, 교회가 규정에 따라 활동하도록 감독한다. 헌법 제29조는 삼자회의 정치적 종교적 양방면에서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본회는 중국 그리스도인들의 반제(反帝), 애국적 조직으로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가진다. 즉 중국 공산당과 인민 정부의 영도 하에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의 단결을 도모하여 조국 사랑을 촉구하는 동시에, 국가의 법률을 준수하며, 자치, 자양, 자전의 원칙과 교회의 독립과 자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삼자 애국 운동의 성과를 보위하는 것, 또한 정부의 종교 신앙의 자유 정책 집행에 협조하고, 고도의 민주화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갖춘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인 중국 건설에 적극 이바지하며, 대만의 조국 복귀를 촉진해 조국 통일을 실현하며, 패권주의에 반대해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
1950년대 초 중국 공산당은 점차적으로 기존의 개별 종교 단체에 압력을 가하면서 그 기관들을 삼자회의통치권에 복속시켰다. 교인들은 반드시 교회의 정치 학습반에 출석해야 했으며, 특히 자아 비판 회에서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남들도 비판해야 했다.
2. 가정교회
가정교회의 뿌리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의 토착교회라고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 가정교회와 토착화 운동은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가정교회는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와는 조금 다른 그들 나름대로의 토착회 된 교회, 즉 소군교회, 진야소교회, 야소가정 등의 형태로 단체끼리 가정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오늘날 가정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취회소에 속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1949년 혁명 이후 가정 교회 모임들은 삼자회 가입을 거절한 목사와 동료 기독교인들을 배반하도록 종용하는 삼자회의 태도를 비난했다. 문화 혁명 시기까지 그러한 혼란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소그룹 모임뿐이었다. 가정교회는 문화혁명 기간 감옥에 갇혔던 성직자와 신자들이 석방되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기독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런 모임이 정규적으로 계속되면서 교인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지하로 잠입해 들어갔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의 상황에 맞는 토착화된 가정교회가 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교회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 가정교회운동에서 기원하였으며 삼자운동기의 반대세력들의 모임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문화혁명기의 탄압을 통해 제도 교회가 사라져 가는 것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고 본다.
오늘날 중국 그리스도인의 80% 이상이 가정 교회 교인으로 그들은 중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주류이다. 문화혁명의 종말을 고한 1976년 이후 가정 교회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운남성의 한 지역을 예로 들면 그곳의 현 그리스도인들 중 95%가 1976년 이후에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가정 교회는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백성을 보존시키시고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가정 교회들은 극심한 시련을 통해 정화되었다. 종파의 분열 같은 불필요한 요소들도 과감히 탈피해 나갔다. 단지 말씀 선포에만 의존하지 않고, 개인적인 친숙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즉각적인 믿음의 고백에 기반을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신자 개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간증들이 예배 시간에 포함되기도 한다.
(1) 가정교회의 유형과 조직
가정교회는 농촌 가정교회와 도시 가정교회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 인구의 80%가 농촌에 거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정교회 신자들도 농촌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촌교회에는 연장자가 많지만 청년들과 어린이들도 참석한다. 대체로 나이 많은 연장자가 지도자로 있고 근래 들어 청년들이 훈련되어 설교나 전도활동을 담당하고 다른 지역을 파송되기도 한다. 도시교회는 농촌처럼 연령의 구분 없이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연장자들 모임과 젊은 지식인들, 고급중학교 이상 학력의 직장인들, 대학생들의 모임으로 구분되어 있다.
2,000명, 또 하나는 500명으로 구성된 가정교회는 주일 저녁에 계속 모임을 갖고 있다. 그중 일부 교인들은 주일 오전에는 삼자 교회에 참석하여 당국과의 마찰을 피하고 있다. 개방된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수용할 정도로 크지 않았으므로, 당국은 현재까지 주일 저녁의 가정 집회는 반대하지 않았다. 독립된 가정 교회에 대한 정책은 지방마다 각 지역 당국의 입안에 달려 있음을 반영한다.
가정교회는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1)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가정 교회들은 죄를 회개케 하는 영과, 한 때 십자가의 원수 되었던 자의 회심과, 그리고 병고침과 악한 영들로 인해 귀신들린 자들의 치유를 통해, 성령님이 역동적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크다.
3) 대부분의 목사들이 투옥되는 바람에 평신도의 지도력이 성숙되었다. 최근에 들어 이전에 투옥되었던 교회 사역자들이 풀려났으며, 그 후 나이 어린 제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평신도 사역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3.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문제점
(1) 삼자교회의 문제점
1) 목회자 문제. 목회자가 양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있다고 해도 부적격자가 많고 부패현상 또한 심각하다. 그리고 목회자간의 세대차이에서 오는 갈등, 복음적이고 충성된 목사와 정치적이고 완고한 목사간의 갈등이 크다. 그리고 농촌교회의 전임 목회자 부재 현상은 상당한 기간 동안 호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2) 가정교회와의 갈등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3) 삼자교회의 정통성 문제. 중국이 더 과감한 시개혁과 정치체제 변화를 추구할 경우 삼자교회는 정통성 논리에서 가정교회의 입장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4) 어린이 주일학교 운영 문제와 청년회 지도 및 운영 문제가 심각하다.
(2) 가정교회의 특성과 문제점
데이비드 애드니(David H. Adeney)는 가정교회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가정교회는 토착적이다.
2) 가정교회는 가족단위에 기초한다.
3) 가정교회는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했다.
4) 가정교회는 그리스도의 主되심을 강조한다.
5) 가정교회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확신한다.
6) 가정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7) 가정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이다.
8) 가정교회는 서로 돌아보며 나누는 교회이다.
9) 가정교회는 평신도의 지도력에 의존한다.
10) 가정교회는 성경적 가르침이 필요하다.
11) 가정교회는 고난으로 정결케 되었다.
12) 가정교회는 열심히 전도한다.
가정교회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강성광은 가정교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즉 사역자의 양적, 질적 부족, 이단문제, 무분별한 지도자 순종 의식, 과거의 방법을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경직성, 외지 사역자들의 그릇된 선교활동, 종파간의 차이점, 삼자교회와의 갈등, 삼자회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의 새로운 압력, 복음의 편중 현상, 농촌과 도시의 균형적인 교회 성장의 문제, 물질적 유혹의 위기에 처한 신자들, 성경 및 신앙서적의 부족 현상 등이 있다.
또한 믿음의 시련이 가져다준 문제점으로, 고난의 경험이 없는 자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 그리고 박해 기간 동안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배반하거나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태도, 이로 인한 영적 자만심 그리고 다른 사람, 특히 서양인들을 포용하고 용납하며, 함께 나누는 일을 꺼려하는 일들이 새롭게 문제시되고 있다.
부흥하는 교회 가운데 훈련받은 사역자가 부족하다. 중국의 다양한 신학교 출신의 기독교인들 모두가 성숙하고 훈련받은 목회자와 복음 전도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한탄하다. 삼자 애국 운동(TSPM)/CCC신학교의 600명 이상의 전임 신학생들과 가톨릭 애국 협회(CPA) 신학교의 700명의 신학자들로는 너무 적은 수여서 특히 신학적으로 훈련받은 연로한 지도자 세대가 빠르게 사라져감에 따라 더욱 현재의 필요들을 충당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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