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를 묵상하며 / 욥 27:13-23
13.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사업은 이것이라, 14.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라...19. 부자로 누으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거시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20 두려움이 물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 갈 것이며 21. 동풍이 그를 들러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 22. 하나님은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던져 버릴 것이니 그의 손에서 도망치려고 힘쓰리라...
-욥기 말씀 중에서 -
* 샬롬^^
내일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무하는 교회도 무척이나 분주한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결혼식이라 바쁘고, 다른 쪽에서는 겨울맞을 준비들을 하느라 바쁜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새든지, 그래서 교회 사찰집사님과 다음 주에 다시 손보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손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못질을 한 번 하려면, 모든 식구들이 다 피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목사'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기계를 고치든지 다른 것들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사찰집사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느끼는 것은,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겠지요. 서로 돕고 살라고 말입니다. ㅎㅎ.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위로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악인이 잘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악하게 살면서,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면서도 주말에 즐길것은 다 즐기고 어려운 것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호화스러운 세상의 삶을 추구하면서 말입니다. 욥도 참 그런것 같습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는데, 자신의 모든 소유는 다 사라지고, 자식들마저 다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자신을 버렸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썩어져 죽어가는 몸뚱아리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런 욥에게 친구들마저 책망하며 욥을 질책하는데, 욥은 이러한 가운데 놀라운 사실을 하나를 깨닫습니다.
욥은 말합니다.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14) 얼마나 놀랍습니까? 악인은 언제나 자신이 부각되는 일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성향을 지녔습니다. 어떻게 하면 튀어볼까, 어떻게 하면 쉽게 돈을 벌어볼까? 이러한 연구를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 보기에 악인은 번성합니다. 잘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악인은 번성하여도 '칼'을 향하여 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악인이 아무리 엄청나게 기름지고 맛있는 진수성찬을 맞이하여도 그의 배는 배부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악인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사람을 짓밟습니다. 그래서 부귀를 얻지만, 그러나 악인의 마지막은 '칼'의 저주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악인이 맛있는 음식을 끝없이 탐하지만, 그 탐하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놀랍게도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에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나를 인정해 주시면 된다는 것에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도 부인하고 나도 부인하며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는 것, 이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칼'도 피하여 가구요^^, 초라한 음식에도 '배부름의 은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만족.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또 욥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악한 부자들은 결국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19)는 말씀처럼 '허망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에 우리가 부자로 살았는데, 저녁에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세상의 악인들의 인생의 최후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욥의 이러한 이야기에 우리는 한편으로 위로받지만, 한편으로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실만한 일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재력입니까? 세상의 명예를 얼마나 많이 쌓았느냐라는 기준일까요?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에 대하여 물어보실까요? 아마 하나님 앞에 가서 우리가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를 더욱 의지했는지, 그 믿음의 수준을 보실 것 같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오직 믿음의 수준은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욥은 말합니다. 악인들은 잘되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중심에는 언제나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물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방에 그를 앗아 갈 것이며, 동풍이 그를 들어 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20-21). 인생의 참된 성공이란 어쩌면 세상에서 잘나가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성공한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의 심령에 '행복'이 없다면 그 인생은 실패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의 문제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참 불쌍할 것입니다. 인생에 폭풍이 있고, 동풍이 있습니다. 이러한 폭풍우의 파도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 폭풍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돈으로도 못하구요. 명예와 권력으로도 못하는 것이 인생의 폭풍우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심하게 폭풍우가 몰아닥쳤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폭풍우 앞에서 두려움에 휩쌓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웠더니, 예수님의 한 마디, "잠잠하라"라는 말 앞에 그 폭풍우는 잠잠해진 사건을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인생의 두려움의 폭풍을 주님께 맡기는 인생이 참된 축복의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평강'을 누리는 인생입니다.
오늘 저는 말씀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고독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나의 믿음의 수준'이 조금더 성장하여서,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으며, 인생의 두려움의 폭풍 속에서도 잠잠히 예수님을 의지해서 '샬롬의 축복'을 놓치지 않는 행복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심령에도 함께 하시기를 축언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