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임재, 등잔대-쳐서 만들라
샬롬^^
오늘도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흔히 신앙주의에 대해서 '인본주의', '신본주의'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한쪽에서는 '신본주의'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죄의 성향 때문이겠지요.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간혹 신앙이 좋다고 생각되었던 분들의 교회 안에서의 행동에는 자신들의 세상에서 행했던 생각과 습관을 가지고 교회를 바라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의견이 옳다'는 '민주주의'의 단점이 드러나는 순간이겠지요.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수의 의견이 옳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세계2차대전 때에 히틀러를 따랐던 독일인들의 다수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고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말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대신에 '하이 히틀러'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말합니다. 그들의 다수가 틀렸다고 말입니다.^^ 일본은 지금도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은 정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다수가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생각이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 해서 '소수'의 생각이 옳은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본주의'는 '틀렸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신본주의'가 옳다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독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독재는 영혼을 살리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독재하심은 '죄'를 없애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재하심은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은 교회 안에서 '인본주의적인 생각'들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 외에는 다른 세상의 사상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교육의 철학과 이념은 교회교육에서 통하지를 않습니다. 세상의 교육 이념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혹은 인문주의)'의 사상에 바탕을 둡니다. 그러나 교회의 교육 이념은 '하나님 제일 주의', '말씀 제일 주의'에 둡니다.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반기를 들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반기를 드는 '사탄'과 같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자꾸 성찰해야겠지요. 혹시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ㅜㅜ...우리는 충분히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가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은 서두가 너무 길었나 봅니다.ㅎㅎ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 25장 31-36절 말씀입니다.^^
31 너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쳐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결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잔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다른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오고 다른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오게 하며 33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쪽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같게 할지며 34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며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오늘은 '등잔대'에 대한 첫 번째 묵상을 행하게 됩니다. 등잔대를 오늘 모두 묵상하려고 했는데, 등잔대 묵상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세 번 나누어 묵상을 행하겠습니다.^^
등잔대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등잔대는 365일 한 순간도 꺼뜨려서는 안되는 너무도 중요한 성막의 도구입니다. 등잔대는 결코 꺼져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항상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지면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영광도 사라지게 됩니다. 너무도 놀랍지 않습니까? 성막이 파괴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는 '등잔대'의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박해의 시대에도, 그리고 타락하면서 죄를 짓는 시대에도 등잔대의 불은 제사장들에 의해서 24시간, 365일 끊임없이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밝혀져서 비추어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7개의 등잔대의 불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비추어지는 은혜의 불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묵상 중에서 제 마음에 다가온 말씀은 "등잔대를 쳐 만들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주석학적'으로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묵상의 깨달음이기에 나눔을 행합니다. 7등잔대는 후에 요한 계시록에서 '7교회'로 상징됩니다. 결국 7교회는 두들겨서 순금으로 변화시켜 불을 밝혀야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24시간, 365일' 계속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독 교회에서는 사람의 영혼을 쳐서 다듬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ㅎㅎ 재미있지 않습니까? 세상적인 습관을 가지고 교회에 왔다가 '시험'에 듭니다. 차라리 이런 '시험'은 그 영혼에게 복되지 않을까요?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순금'이 입혀질 때까지 말입니다.^^
어느 날
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샤마임 출판신청 일백교회,일백선교200원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