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허락하라 샬롬^^ 오늘도 주님과 여러분의 사이에 응답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응답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두 가지의 응답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허락하시는 응답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응답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은 쌍방계약이라 볼 수 있겠지요.&^^ 물론, 하나님의 계약은 항상 일방적인 희생으로 시작해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은총의 계약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쌍방계약이라 볼 수 없는 면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계속되는 은혜의 역사에 대해서 '쌍방계약'이라는 이미지를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응답'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새벽기도로, 그리고 간절한 간구의 기도로, 그리고 예배의 자리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기를 바라시는 우리의 응답이겠지요.^^ 오늘 묵상은 마태복음 3장 13-15절 말씀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오늘 말씀은 드디어 예수님의 공생애의 삶이 시작되려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세례 요한에게 회개의 세례를 받으시러 갈리리로부터 요단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뵙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이에 세례 요한이 반박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이 말은 당연한 말입니다. 어떻게 감히 피조물이요 종인 인간이 하나님의 머리에 '세례'를 부을 수 있습니까?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이 말씀 앞에서 세례 요한은 순종합니다. 말씀은 세례 요한이 '허락'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허락하기를 청하였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제 허락하라"라는 말씀 앞에서 제 마음이 멈추어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라'라고 응답을 기다리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일방적인 분이 아니셨던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요청을 자신의 피조물에게 요구할수 있는가? 이제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에 대해서 허락하기를 바라시는, 아니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와 같이" 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는 예수님과 피조물인 '나'를 포함한 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는 의의 역사를 순종으로써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말이 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고 사리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면 '허락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아멘'해야하겠지요! 그것이 어떤 길이든, 혹은 그 길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역사일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길이 '제자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의 응답은 '제자의 길을 걷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어느 날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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