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내는 좁은 문
샬롬^^ 오늘도 주님께서 생명의 문으로 인도하는 은총을 베푸시길...^^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서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내는 것의 차이점이 있을까요?ㅎㅎ 살아가는 것은 느낌상 흘러가는 대로 사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런데 살아내는 것은 '치열한 그 무엇'이 살아가는 것에 첨가되는 듯 합니다. 살아가는 것은 아무나 누구나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겠지만, 살아내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몸부림치는 치열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허락하신 능력으로 살아내는 것을 보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찬양이지 않을까요?
오늘 묵상은 마태복음 7장 13-14절 말씀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오늘 묵상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입니다. "좁은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 그리고 좁은 길을 통해서 펼쳐지는 협착하고 좁고 험한 길에 대한 인생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필 예수님은 왜 좁은 문에다 좁은 길을 말씀하실까요?^^ 그리고 왜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실까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어떤 면에서 고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을 걷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이 싫기 때문입니다. 인간 성정은 '죄의 즐거움'을 좋아하고, '죄'로부터 흘러 나오는 쾌락을 즐거워하며, '부요'와 '풍성한 복'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죄와의 타협을 하고 싶어합니다. 이 길이 '큰길'입니다. '자아'를 섬기는 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길을 탐하고 누구나 이 길을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길의 끝에는 '심판과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길, 즉 '좁은 문'에서 시작되는 '협착한 길'은 찾는 자가 적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베풀어집니다. 그런데 이 길은 '옛 자아'가 죽는 길입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인기가 없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은 오늘도 우리 앞에 펼처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길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포기하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자는 '치열함'을 영적인 싸움으로 치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좁은 문은 '치열하게 살아내는 싸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살아냄의 역사는 우리로 애달프게 만들지만, 그 가운데 감격과 기쁨이 있고, 영적 성화가 이루어지면, 영생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내는 길'입니다.^^
어느 날 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샤마임 출판신청 일백교회,일백선교200원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