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카즘 연구-예수기도 ♣ ‘어디 있느냐’ 물으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창 4:8-15
들어가는 말 오늘 이 새벽에도 성령의 충만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을 체험하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언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예배를 드린 후,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이 분노하였고 심지어 아벨을 죽이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쯤 지났을 때,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시기를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가인이 “내가 알지 못한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숨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우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라고 말씀하면서 가인을 저주하셨습니다. 농사하던 자 였던 가인은 이제부터 땅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땅에서 그 어떤 소산물도 얻을 수 없었고, 평생 ‘유리하는 자’로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에 가인이 자신의 죄의 중함을 깨닫고,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만났을 때, ‘살인자’이기에 자신을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셨습니다. 이 표는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이 칠 배나 받으리라”라고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인의 자신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의 내용 앞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인과 아벨이라는 아들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학자들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많은 자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대표성을 띄는 아들들만 족보에 기록하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가인은 아담 후손의 사회와 자연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가인의 저주 받는 모습을 통해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을 접하게 됩니다. 살인한 죄인인 가인에게 다시 한 번 하나님은 무한하신 사랑을 허락하시며, ‘회개의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회개와 회복’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들이 있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으나,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9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말씀에서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원어를 보면, “야다티”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야다티’는 ‘야다’, 즉 ‘알다’라는 단어의 ‘과거 완료형 부정’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즉 “나는 처음부터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인은 자신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처음부터 전혀 알지 못합니다”라고 전적인 부인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형제의 문제에 대한 철저한 회피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인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하여 ‘기만’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의 모습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상황을 알지 못하실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바 되신 분이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 그리고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다 알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솔직하게 다 고백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고백의 모습에 도리어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용서하시며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이 새벽에 여러분의 문제와 고민이 있으시다면, 그 사실을 하나님 앞에 기도로 모두 아뢰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 모두 토해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모습으로 여러분의 문제 하나 하나를 어루만져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가인은 자신의 죄를 회피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자신의 죄를 회피한 자는 땅의 저주를 받아서 인생을 피하며 방황하는 시간으로 채우게 됨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에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회피’하과 ‘핑계’하는 가인을 향한 저주입니다. 이 저주는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땅을 갈아 농사지어 살아가는 자의 삶에 ‘땅의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망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노력해도 ‘땅’은 도리어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회개하지 않고 회피하며, 핑계’하는 인생이 받는 저주입니다. 사람마다 ‘걱정과 두려움과 죄의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죄의 문제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피하려 하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오시면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가인에게 ‘회개’하고 ‘직면’하고 ‘회복’할 시간을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의 아버지 ‘아담’이 죄를 짓고서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아 아담에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과 같은 음성이셨습니다. 아담에게 ‘회개하고 회복할 시간’을 허락하시는 질문이었는데, 아담은 이 음성 앞에서 ‘회피’함으로 ‘회개’하지 못했고 결국 에덴에서 쫓겨 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가인에게도 똑같이 이렇게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곳에 모인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 혹시 묻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즉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모습을 주님 앞에 가감 없이 고백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놀랍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영혼에게 하나님은 ‘저주’가 아닌 도리어 ‘복에 복을 더하시고’, ‘은혜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어둠의 문제, 두려움의 문제, 죄의 문제를 예숙 ㅡ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기에, 오늘 여러분의 심령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다면,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직면하여서 회복되는 놀라운 은총의 시간이 이 새벽에 있어지시기를 축언드립니다. 셋째, 저주를 받은 가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이 살해를 당할 수 있음을 고백하는 가인 앞에 하나님은 ‘표’를 주사 가인을 죽이면 ‘칠 배의 벌’이 임할 것임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저주 받아 죽어 마땅할 가인을 이렇게 보호하시는 것입니까? 이러한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주를 하시면서도 여전히 ‘가인’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죄로 인새 고통당하는 가인의 일평생을 통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가인을 보면서 많은 아담의 후손들이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셨습니다. 가인을 향한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까지 미뤄두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라는 엄청난 재앙을 통해서 이 땅에 만연했던 죄인들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하나님은 의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물의 심판에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왜 세상은 죄가 많은 사람들이 잘사는 것일까? 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저런 악인들을 그냥 방치하시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오늘 가인의 사건을 통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이르면 모두 자신들의 죄만큼의 형벌을 받게 되는 ‘심판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마치 추수할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를 함께 두는 것처럼, 그래서 알곡이 가라지 때문에 때가 되지 않아서 뽑히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은 분명히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악인들 중에서 선택받은 자들이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은혜의 시간임을 우리로 알게 합니다. 나아가는 말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오늘 우리는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죄의 문제는 결국 우리에게 ‘고통과 두려움과 절망’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죄의 문제로부터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여, ‘회피’는 해결이 아닌, ‘저주’로 다가옴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인생’이 아닌 ‘축복의 인생’이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고 ‘죄’를 회개하며 ‘직면’하여서 인생의 어둠을 물리치는 길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직면하면 하나님은 성령의 충만하심을 허락하심으로 인생에 방황하는 영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변모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의 복으로 임하시기를 축언드립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가인을 향하신 말씀 중에서 우리를 향하신 음성이 들리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가인이 자신의 죄를 회피하여서 ‘저주’를 받는 모습 앞에서, 사랑의 주 하나니 아버지, 우리도 가인과 같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오니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도리어 ‘네가 어디 있느냐?’,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네 이웃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회개’하며 ‘직면’케 하셔서 방황하며 떠도는 저주 받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칙되는 축복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죄의 문제는 십자가에서 다 해결되었으므로, 우리 자신의 인생의 죄의 문제, 고통의 문제, 절망의 문제를 십자가 앞에 가감 없이 내놓아서 모두 해결받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새벽에도 성령의 충만하심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거듭나며 성장하기를 소망하오며 우리로 축복의 인생이 되시기를 바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어느 날 보나벤투라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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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주일예배에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4. 오른쪽 호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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