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카즘 연구-예수기도 ♣ 공회에서 희롱 받으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2 : 63-71 찬송 : 149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십자가의 은총이 여러분의 심령에 ‘자비로우심’으로 임하시를 축언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수하들에 의해서 희롱을 받으시는 장면이 잘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의회에 끌려가셔서 말의 희롱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여러 심문을 하게 되는데, ‘죽이기 위한’ 말의 모략을 일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의 말 장난에 대해서 그들의 하는 말을 이용해서 도리어 자신의 그리스도이신줄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말로 모욕하며 죽이려는 모습 속에서 지금도 악에 속한 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그리고 기독교를 향하여 질문하는 말을 접하게 됩니다. 이 질문들은 ‘네가 선지자냐?’라고 묻고 있으며, 동시에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묻습니다. 또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대답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고난 받으시면서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를 싫어하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내 방식대로, 그리고 내 삶의 스타일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의와 공의와 죄를 짓지 않는 회개’에 대해서 선포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세상은 ‘선지자 노릇을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64절에,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하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자신들의 방식대로 끌려오기를 바랬습니다. 제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자신들의 삶의 스타일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면서도, 이들은 ‘말씀의 정신’ 보다는 자신들의 형식과 자신들의 법칙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만일 그리스도면, 마땅히 자신들의 히브리적 사고에 순종하는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법칙을 통해서 메시야를 통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잘못된 삶의 습관과 스타일에 대해서 ‘질책’하시며 도리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이들의 이익을 보는 것들을 모두 엎으셨습니다. 이들은 분노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메시야는 자신들의 야망을 흡족하게 하는 존재로 와야 했습니다. 오늘날 왜 한국교회가 흔들리고 있을까요? 어쩌면 한국교회가 너무도 ‘타협’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의 강단이 하나님의 칼 같은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그대로 선포해야 하고, 주님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어떤 면에서 목회자들을 길들이는 일들을 해왔습니다. 자신들의 교회에 구미에 맞는 목회자를 원합니다. 그래서 석사를 해야 하고, 박사를 해야 하고, 기도 보다는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목회자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보십시오.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강단을 잘 지키는 목회자는 그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강단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어떤 면에서 지금 한국교회는 ‘고난의 십자가’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교회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마귀와 타협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얻고자 하는 것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이 제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요, 말씀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강단에 ‘기적’이 사라졌습니다. ‘표적’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생각과 각 교회의 특색에 맞는 색깔들이 진하게 칠해져서, 하나님의 뜻은 온데 간데 없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들과 맞지 않다고 해서 버렸습니다. 도리어 이들은 자신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자신들의 고집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예수님은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이 같은 역사와는 반대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과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냐 말하라?”고 질책합니다.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비웃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교회가 어떤 힘을 갖겠는가?라고 최고의 교만의 말을 뱉어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경멸하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교만한 생각들입니다. 67-69절에,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이미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다시 묻습니다. 이들의 질문은 ‘믿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비웃으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명분을 찾고 있는 것이요, 예수님을 심판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는 믿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물어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로 가득한 곳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세속적인 사람들, 그리고 회의주의로 물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그 마음에 ‘비웃음’이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믿느냐?’ 그런데 이런 세속적인 사람들의 대답은 아예 이런 질문을 부정합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회에는 나옵니다. 왜냐하면 종교생활이요, 문화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믿음 생활은 종교생활이 아니요 문화생활이 아닌 줄 믿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더 잘합니다. 음악회에 가보면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화센터에 가면 삶을 더 풍요롭고 즐겁고 의미있게 사는 법을 강의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역사’, ‘영생의 생명을 얻기 위해서’ 믿음의 생활을 하는 곳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 위해서 오는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 교회인 줄 믿습니다. 교회에 다른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생명을 얻는 곳입니다. 이 부분을 분명히 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나머지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삶의 터전에서 여러분의 노력으로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되지 않으면 교회 생활은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문화가 가득한 곳이 되어버립니다. 최근에 여러 목사님들께서 한국교회의 흐름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마을목회라는 용어 때문입니다. 농어촌에서 목회하려면 마을로 들어가서 이장도 하고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옳은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주객이 바뀌면 안 됩니다. 마을에 들어갔는데, 강단의 말씀이 퇴색해 버리면 그것은 목회가 되지 않습니다. 구약으로부터 신약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은 말씀을 보존하고 전파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도시교회에서도 말씀의 중요성이 아닌 형식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안된다는 이상하리만큼 패배주의적이고, 타협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교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요? 말씀과 기도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교회는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하고, 기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생명은 말씀과 기도의 역사가 살아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씀, 오직 기도의 역사를 교회에 이루어 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공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라고 묻습니다. 네가 교회냐? 네가 말씀으로 세상을 살릴 수 있겠느냐?라고 묻습니다. 70절에,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지금 교회의 머리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온갖 싸움을 다 걸어오는 곳이 세상입니다. 세상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세상은 전쟁터의 장소일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세우셨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주셨고, 말씀의 권능을 주셨고, 믿음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입술의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신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려는 ‘악한 마귀’가 물어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즉, ‘네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군사들이요 교회냐?’ 이 말들이 우리에게 들려지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교회만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요, 교회만이 유일한 구원의 장소입니다. 교회를 통하지 않으면 세상은 복을 받을 수 없고,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교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여, 우리는 복음의 말씀 하나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선포하십시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나머지는 우리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역사하실지를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실지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붙드십시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눈에 펼쳐지지 시작할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은총이 우리 가운데 말씀으로 기도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립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주님을 희롱하는 세속적인 종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하셔서, 더욱 깊은 영적인 지혜를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선지자의 선포를 행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구원 받을 유일할 길임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또한 교회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살아계심을 기대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교회 성전의 공의와 정의와 역사의 뿔이 세워지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뿔을 잡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옵시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심판이 그대로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교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대사의 역하를 하는 곳이오니,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이 살아움직이는 우리 교회 되게 하셔서, 오직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말씀으로 기도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8'고난주간 세 번째 새벽기도회 팔라마스 보나벤투라 지심 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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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 록펠러 어머니의 10가지유언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주일예배에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4. 오른쪽 호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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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두 가지 방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지심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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