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임 영성 이야기 2154 / 소사사 돌라와 야일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영혼 위에~^^
민족의 명절 설 연휴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2022년의 여정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물론 지난 1월 1일의 출발이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지만, 여전히 민족적인 정신은 설을 통해서 새로운 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개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민족의 피에 흐르는 전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설을 지내면서 이번에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의 여파가 이제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만날 수 없는 분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격리와 병원에 들어가서 치료하시는 분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려움을 느끼게 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백신을 접종했기에 그렇게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아무튼 올해는 좀 더 희망적인 일들을 꿈꾸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코로나가 그렇게 큰 문제로 다가서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위드 코로나'가 실제의 삶에 적용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다만 아직 속단은 금물임을 항상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사사기 10장 1-5절 말씀입니다.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본문은 소사사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에 분명히 활동했던 판관들이 있었음에도 사사기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필요 없는 내용들은 모두 삭제시키는 내용을 우리에게 보입니다. 다만 이들의 활동도 역사 속에서 분명히 자리하고 있기에 이들을 간략하게 기록하는 정도에서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들을 기록할 때 사사의 한 세대의 의미를 그들의 이름과 지역을 통해서 충분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아의 아들 돌라(1)"는 에브라심 산지 사밀에 거주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사의 출신은 '잇사갈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서의 설명은 더 이상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학자들에 의하면 '사밀'은 후대에 '사마리아'로 추청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무튼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부아'라는 이름의 뜻이 '입'이라는 점에 있고, 그의 아들 돌라의 뜻은 '벌레'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벌레와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판관으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능력자로 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능력과 지위와 상관 없이 구원자로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입만 가진 자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돌라' 이후에 소사사로 "야일(3)"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야일은 상당히 부요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이 삼십 명이 있었는데 모두 어린 나귀 삼십을 타고 다녔음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에 나귀를 타고 다닌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부와 권력이 상당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야일"의 뜻은 '깨우치는자', '비추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깨우치는 자로서 그리고 비추는 자로서의 판관의 직무를 감당한 이 사람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는 점에 어떤 힌트와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돌라'와 '야일'의 판관기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구원자로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늘까지(4)"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오늘까지 전해지는 사사들의 기록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증명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것입니다. 비천한 자의 아들로서 사사로 쓰임 받은 역사와 지위가 높은 자로서 또한 이스라엘을 구원시키는 역사를 이루는 판관의 역사는 실제로 그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임을 분명하게 본문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상당히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허락합니다. 그것은 예전의 기록된 말씀이 오늘까지도 역사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말씀은 예전에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다면, 그 역사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오늘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들의 편견과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역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은 주님의 사람들을 세우셔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며 민족과 교회를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 자신이 서 있다면 그것처럼 영광스러운 사건은 또 없을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돌라와 야일의 소사사를 통해서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총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오늘도 복음의 역사 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게 하옵시며, 우리의 삶의 한 자리에서 주님께 쓰임 받는 영광의 은혜도 입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