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마임 영성 이야기 2174 / 행한대로 행하는 싸움, 블레셋과 삼손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영혼 위에~^^
『파토스와 에네르기아』를 출간하면서 제 영성 수련에는 또 다른 차원의 영성에 대한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아직도 멀었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분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주님의 현존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튼 제게 기쁨이 되는 순간은 지금까지 깨다지 못했던 동시에 항상 허락하셨던 은혜의 역사 안에서 새롭게 보여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더 걸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 인생이라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더 많은 것과 더 깊은 것 그리고 더 높고 넓은 영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라는 것은 이 세계에 들어서게 하는 출입문과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이 세계를 볼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의 세계를 더 설명할 수 없음에 안타까움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제 작은 사명을 겨우 감당할 수 있었다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한해 제가 작은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파토스와 에네르기아』를 작년 한 해 썼던 것처럼, 이번 해에도 이 같은 작은 안내의 책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통성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한국적 기도에 대한 연구를 영성수련을 지금까지 해오면서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기도에 집중하면서 꿈꾸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사사기 15장 9-13절 말씀입니다.
9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
10 유다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 하는지라
11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하니라
12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
13 그들이 삼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다만 너를 단단히 결박하여 그들의 손에 넘겨 줄 뿐이요 우리가 결단코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고 새 밧줄 둘로 결박하고 바위 틈에서 그를 끌어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잡기 위해서 올라와서 레히에 가득했습니다. 이에 유다 사람들이 "너희가 어찌하여 올라와서 우리를 치느냐(10)"고 물었고, 블레셋인들이 "우리가 올라온 것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려 함이로라(10)"라고 답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삼손을 잡아서 자신들에게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블레셋과 유다의 전쟁은 불가피하게 된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이에 유다 사람들이 삼천 명을 에담 바위 틈에 숨어 있는 삼손에게 내려갑니다. 그리고 삼손에게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11)"하고 물었고, 삼손이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11)"고 답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두 행하려는 말들의 부딪히게 됩니다. 그것은 블레셋의 삼손을 향한 행함의 폭력과 삼손의 블레셋을 향한 행함입니다. 들 다 행하려는 것이요, 이 행함의 역사 안에는 하나님께서 삼손을 통해서 블레셋을 치려는 뜻이 동시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무튼 삼손은 자신을 블레셋에게 넘겨주려고 온 삼천의 유다 앞에서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12)"고 말합니다. 이에 맹세하고 새 밧줄 둘로 삼손을 결박하고 끌어내어서 블레셋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거대한 힘 앞에서 유약한 유다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삼손을 결박해서 넘겨주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더 많은 세력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영을 받은 한 사람을 통해서 열방의 힘을 무력화시키며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적 원리를 우리가 미리 안다면 세상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새 밧줄 둘(13)"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무르게 됩니다. 새 밧줄 둘이면 삼손이 꼼짝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유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지라도 새 밧줄 둘이면 한 사람의 생명은 끝날 수 있다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새 밧줄 둘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삼손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셨기에 이 같은 세상적인 방법의 새 밧줄 둘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에 속했습니다. 다만 삼손에게는 새 밧줄 둘이 문제가 아닌 자신이 계획했던 블레셋을 칠 정당한 이유를 얻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생각하는 한계인 새 밧줄 둘을 통해서 오히려 적들을 방심시키며 더 큰 역사를 준비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이 새 밧줄 둘로 인해서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기회를 얻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강할수록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서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행한 대로 갚아 준다는 도전 앞에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도리어 그것의 허점을 이용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승리의 역사를 쓸 수 있음에 대한 지혜를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세상은 새 밧줄 둘이면 꼼짝하지 못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것을 통해서 더 자유로우며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의 확신을 통해서 방심하고 있는 부분을 공략하게 하옵시며, 이를 통해서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