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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영성 이야기 2176 / 삼손의 목마름과 엔학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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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심 정경호 2022. 3. 2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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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임 영성 이야기 2176 / 삼손의 목마름과 엔학고레
 

 

샬롬^^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어제는 토요일을 지내면서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성도님들 중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교회 예배와는 상관이 없이 집에서 치료하고 계신 것으로 전화를 받았지만, 시골인데도 이제는 코로나가 너무 많이 퍼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봄 심방도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동네마다 코로나 확진자들이 발생하다 보니까 '심방'에 무리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외에는 모든 것을 멈추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영상 예배'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촬영을 하는 것이지만, 요즘 스마트폰의 영상도 화질이 매우 좋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영상의 비대면과 대면 예배가 동시에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오늘 주일 예배도 상당수의 성도들이 참석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상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할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사사기 15장 18-20절 말씀입니다.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이 천 명의 블레셋인들을 멸하고 심히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18)"라고 기도합니다. 이 말씀에서 삼손이 행했던 천 명을 멸했던 사건을 "구원"이라 표현하고 있음에 상당한 의미를 느끼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는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시대로 들어가면 '전쟁'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볼 때, 이것은 기적적인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을 홀로 상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기에, 삼손은 이 사건을 '구원'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삼손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자)" 거기서 물이 나왔습니다. 이에 삼손이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었기에 그곳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다고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통해서 삼손은 20년을 사사로 지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0년의 역사를 삼손이 책임진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사역에도 20년의 기간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개인이 교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섬기는 기간을 20년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경우 부목회자로 섬기는 기간을 빼고서 담임 혹은 위임으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기간을 보통 20년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년의 기간은 오늘 상당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엔학고레"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엔학고레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리고 엔학고레라는 지명이 이 당시에는 잘 알려진 곳이었음을 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곳 지형이 특이하게도 나귀 턱뼈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데 많은 생각들을 갖게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바위를 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짖는 자에게 물을 터뜨리셔서 마시게 하셨음에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에 대해서 새롭게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엔학고레는 삼손이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신앙고백적 의미가 담겨진 지명의 이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엔학고레의 역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짖는 자에게 엔학고레의 역사를 허락해 주십니다. 도저히 불가능하고 구원의 손길이 멈추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곳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짖으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엔학고레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며 구원의 역사로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역사는 기도하는 자의 삶 한 가운데 돌파되고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엔학고레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인 삼손의 역사 앞에서 그의 부르짖음이 목마름을 해갈하는 엔학고레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주여 우리에게도 엔학고레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없이 살수 없는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오니, 주님 오늘도 부르짖는 영혼 위에 구원과 생수의 공급을 허락하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어느 날
팔라마스 보나벤투라 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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