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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상 기도를 통한 영적 성숙에 대한 연구 29 / 향심기도-신화적 회원의식

향심기도

by 지심 정경호 2006. 4. 3.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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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적 회원 의식

신화적 회원의식이란, 소속 집단에 대하여 과잉으로 동일시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에 대하여 동일시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집단에 충성을 하게 되며, 이러한 충성은 우리에게 집단에 속해 있다는 느낌으로 인한 안전감과 즐거움과 위력감을 가져다주게 된다. 이러한 신화적 회원의식이 일어나는 첫 집단은 보통 ‘가족’으로부터 시작되고, 그리고 아동기의 동료집단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과잉동일시는 집단에 속한 회원들에게 집단의 가치관을 동조하게 함으로 인해서, 어떤 올바르고 건설적인 변화에 대하여 강한 힘으로 저항하게 만드는 문제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회원 의식의 수준에서 ‘권위’라는 것이 작용하면, 이 권위는 ‘독재’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러한 독재에 대하여 저항할 수 없는 초자아가 형성되어지게 된다. 성장하는 개인이나 인류의 삶에서 초자아라는 것은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초자아는 바로 어떤 것이 옳은 행동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것임을 결정하는 정서적인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흔히 이러한 초자아의 형성의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부모들의 훈육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에서 “하라”와 “하지 마라”라고 지시하며 그것에 따르지 않을 때에 처벌이나 위협을 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가치관을 받아들이면서 생겨나게 되는 것이 바로 초자아이다. 이러한 초자아가 성장하여서 진정한 양심이라는 것을 형성하게 되는 때에는, 부모들과 선생님들에 의해 형성된 초자아와 진정한 양심간의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시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러한 싸움은 초자아의 승리로 확정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왜냐하면 초자아를 어기는 것은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의 근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죄책감을 일으키는 가치관은 우리의 진정한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우리가 속한 집단이나 가족 안에서 생겨나면, 그것에 대하여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토마스 키팅은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일화를 해석하면서 이야기한다.


예수님은 신화적 회원 의식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강력히 말씀 하셨다.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식들, 그의 형제와 자매들, 심지어 자기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 14, 26).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갖는 힘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말씀이 그분이 우리의 부모를 사랑하지 말고 돌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의 시대에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는 대신 성전에 헌금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맹렬히 단죄하셨다. 이 문맥으로 보면, 우리가 복음의 가치를 따르지 못하도록 막는 사회적 동조의 행동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라고 촉구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면서 우리 자신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계가 변한다. 우리는 부모에 의존하는 관계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동등한 관계로 바뀐다. 그동안 의지하던 우리의 관계는 끝나고 새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가치에 거스르는 어떤 일을 하라고 요구할 때, 우리는 “사랑해요. 그렇지만 이 문제만큼은 그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영적 성장이나 도덕적 가치관의 성숙을 위해서는 바로 초자아의 독재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가치관을 거부하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것들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재평가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이 초자아의 가치관을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하나님과의 폭넓은 관계의 측면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어떤 일을 행할 때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으로 인한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을 경험하는데, 하나님과의 관계의 측면에서 이러한 양심이 재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진정한 양심이란 이성과 믿음의 기초 위에 작용할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양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양심은 이러한 양심이 아닌 초자아에 의해 옳고 그름의 정서적 판단을 하는 것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화적 회원 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가치관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재평가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재평가는 회복된 이성과 믿음 위에서 작용되어지는 진정한 양심의 회복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평가의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관상’이다. 관상은 이러한 신화적 회원의식으로 만들어진 초자아를 통해서 만들어진 선입견이나 가치관에 대하여 우리의 내적인 자유 함이 생기게 됨으로 인해서 이것들을 복음에 비추게 되고, 이러한 복음의 비춤을 통하여 우리 안에 있는 가치관들을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상을 통한 재평가에 의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열매들이 있는데, 잘못된 죄의식과 진정한 죄의식의 분별을 들 수 있다. 또한 집단 동일시에 따른 충성의 자의식이 좀 더 성숙된 수준의 의식을 소유하게 되는 자의식의 깨우침이 있게 되어지며, 이러한 자의식의 깨우침이 있는 인류가 늘어날수록 신화적 집단의식의 수준에서 정치를 하는 국가 정부의 구조도 또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화적 회원 의식이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는 ‘공포의 정서’인데, 이것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를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깊어지게 하지 못하는 방해물이 된다. 특별히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두려움”이 생겨나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며, 심지어 이러한 방어의 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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