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Gospel Contemplation)을 함께 행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관상을 행하신 후에, 체험에 대한 나눔을 행하여 주세요. 답글을 통해서
나누시면, 리플을 통해서 좀더 나은 기도의 세계를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과 관상에 대해서
묵상과 관상은 다소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래의 설명을 보시면 쉽게 그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음의 성서 대목을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 복음 20장 19절에서 2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개역성서-
19.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공동번역-
20. 19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0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21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22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24열 두 제자 중 하나로서 쌍동이라고 불리던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다. 25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토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도 같이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들어 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7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28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대답하자 29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대목으로 묵상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과 생각들로 기도를 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말하는 평화란 나에게 무엇인가?
2. 도마는 왜 의심을 했을까?
3. 보고 믿는 것과 보지 않고 믿는 것의 차이는?
즉, 묵상은 이성적인 사고력을 많이 이용하는 기도입니다. 그 원인들을 캐어 묻고 나에게도 적용시켜보며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인식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관상으로 이 대목을 기도한다면 어떨까요?
관상은 이성적인 사고력보다는 상상력을 통해서 그 장면과 인물들을 바라보고 그것으로부터 감동하고, 때로는 우리 자신이 기도안에서 등장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되기도하고 도마가 되기도 하고, 혹은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제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관상은 우리의 오감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디베랴 호숫가에서 낚시질을 하는 베드로를 볼때는 바닷냄새를 상상하며 더 깊이 그 장면에 빠져들 수 있겠지요.
따라서 묵상은 능동적인 기도라고 한다면 관상은 수용적인 기도입니다. (주의! 수동적인 것이 아닌 수용적입니다) 관상은 그 장면과 대목에 내 자신을 맡기고 깊이 머물 수 있도록 나를 성령에 허용하는 기도입니다.
물론 묵상과 관상을 이런 특징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도중에는 두가지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묵상과 관상을 구분할 수도 없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도를 해 나아가면서 어떤 식의 기도방식이 자신에게 익숙한지 바라보고 선택하면 될 것입니다.
[스크랩] 영신수련 2,3 (0) | 2008.03.15 |
---|---|
[스크랩] 영신수련 1 (0) | 2007.06.28 |
[스크랩] 충만한 주님의 사랑으로 /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0) | 2007.05.14 |
[스크랩] 복음관상의 방법 (0) | 2006.05.30 |
[스크랩] 초보자를 위한 복음관상 방법 1 (0) | 2006.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