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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상과 성숙 5-관상의 이해

영성에 대한 생각들

by 지심 정경호 2006. 12. 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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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향기마을

 

 

 

관상과 성숙 5

 

글 / 지붕과 쉼

관상의 이해

관상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흔히 신비한 그 무엇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상은 신비한 세계에서의

신선놀이나, 영적인 세계에서의 아름다움 속에 거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즉 관상에 대하여, 사람들이 기대하는,

강렬한 체험이 있는 그러한 정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관상은 무엇인가?

관상은 “자기 존재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것을 관상이라 하는데,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이다.

즉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조금씩 가까이 가게 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지식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 영혼은 그 사랑의 불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는데,

이 부르심은 우리에게 은총으로 다가오게 되고

이것을 체험하는 것이 관상이다.

그러므로 관상의 체험은 우리의 의지와 뜻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과 우리가 이 관상의 은총을 받을만한 능력이

갖추어졌느냐 하는 것과 또한 성령의 역사 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로서, 이것은 내적인 변형의 과정을 우리에게 거치게 하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또한

이러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일치로 향하게 한다.

즉 이러한 관계를 통한 일치로 향하는 관상은 믿음, 소망, 사랑에 의해

성장하는, 다시 말해서 변형의 과정 속에서 있어지는 성장의 열매이며,

또한 이 성장을 지속시켜 주는 것이다.

 

변형의 차원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관상을 ‘어두운 밤’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밤이란 무엇인가?

“어두운 밤이란 영혼에게 끼치는 하나님의 한 작용으로써 영혼을 그 자연적

및 영성적 무지와 불완전에서 정화시키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흔히

관상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주부적 관상’ 또는 ‘신비적 신학’으로

불렀고, 이것의 의미는 이러한 정화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영혼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으로 기르시는데, 이때 영혼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영적인 길로 나아가는

사람, 혹은 나아간 사람의 길(여정)을 어두운 밤이라 하고, 또한 이 길을

조명의 길(照明, Via purgativa)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주부적 관상(注賦的觀想, Conetmplación infusa)을 의미한다.

 

어두운 밤에 영혼이 들어가게 되면 수동적인 정화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영혼에 지극히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정화의 수동적인 밤에 영혼을 두시지 않으면, 그 영혼 안에 있는

불완전함을 깨끗하게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어두운 밤이란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우리의 영혼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서, 어두운 밤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그 안에서 재미와 젓의 맛을 떼게 하시고 메마름과

내적 암흑 속에다 영혼을 둠으로 해서 내적인 치료, 즉 영혼의 정화를

이루게 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정화의 과정,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가는 은총을 어두운 밤이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관상은

인간의 표현하는 능력을 철저하게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넘어섬은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영혼의 능력을 초월하시기에 ‘어둔밤’이라 부르며,

또한 이러한 초월하심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자신의 존재의 세계에 있는

더러움과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괴로움과 아픔을 느끼기에

어두운 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캄캄한 관상을 ‘비밀’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랑으로 영혼 안에 내려지고 부어지는 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어두운 밤을 통해서 영혼은 ‘자기부정’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자기인식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이것을 통해서 참된 자신을 찾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상에 대하여 더 선명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관상이 아닌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 관상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오해들이 있는데,

관상에 대하여 하나의 긴장 해소의 훈련으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관상은 하나의 기술이나 훈련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향(指向)하는 기도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또한 관상기도를 하나의 은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관상이 은사가 아닌 이유는 관상은

믿음, 소망, 사랑의 성장을 깊게 하는 것으로 영혼의 실체와

그 기능들을 정화, 치유, 성화 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관상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관상기도를 어떤 현상이 생기기전에 미리 알게 되는 그 무엇이나,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감지하는 능력이나, 신체적인 리듬들,

즉 호흡, 심장 박동, 신진대사 등을 조정한다거나,

육체이탈(肉體離脫)의 경험이나 부양(몸이 떠오름)의 경험이나

혹은 초월적인 경험, 그리고 초감각적인 심리 현상과 같은

의사(疑似)심리현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관상은 순수한 믿음의 길로서 이러한 현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이러한 현상들을 관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관상이란 이와 같이 순수한 믿음의 길을 가면서 겪게 되는

‘어둔밤’의 과정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과의 일치를 향하여 가는 정화의 길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내적인 변형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깊게 하는 깨달음의 일치를 이루어 가는 여정을 가리킨다.

 

샬롬!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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