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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마의 어릿광대 3-고독과 친밀함(강박 충동으로부터의 자유)

하나님의 사람들

by 지심 정경호 2007. 5. 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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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 충동으로부터의 자유

 

   고독은 두려움과 분노에 의해 일시적으로 뭉치는

것보다 더 깊고 심오한 결속에 이를 수 있는 장소이다.

비록 두려움과 분노가 우리를 함께하도록 강요할 수는

있지만, 일반적 증거가 태어나게 할 수는 없다. 고독

안에서, 우리는 함께 강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고독 안에서,

우리는 동료를 우리의 가장 깊은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투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 우리와 함께 불림을 받은

형제, 자매로서 인식하게 된다. 고독 안에서, 공동체는

공통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공동의 부르심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실제로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고독은 함께하는 시간과 대조되는 개인적인 시간이

아니며, 우리의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시간도 아니다.

고독은 공동체 생활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고독은 공동체가 성장하는 터전이다. 우리가 홀로 기도하고 공부하고

읽고 쓸 때, 또는 서로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조용한 시간을 단순하게 보낼 때, 우리는 우리 동료에 대해

보다 깊은 친밀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함게 이야기하고,  놀거나

함께 일할 때에만 서로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많은

성장이 분명히 이와 같은 상호 인간적 행위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상호 행위들은 고독에서 그 결실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고독 안에서,

우리와 다른 이들과의 친밀함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리적

현존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적어도 어렵다는 점에서 서로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말과 제스처 또는 행동에 좌우되지

않는 상호 결속,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결속을 깨닫게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육체적 접근에, 즉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말하고 먹고, 함께 예절을 참여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여

바라본다면, 공동체 삶은 기분에 따라, 개인적 매력과 상호 친화성에

따라 즉시 변하게 된며, 따라서 요구가 많은 피곤한 삶이 되어 버릴

것이다. 고독은 공동체 삶을 위해 본질적인 것인데, 왜냐하면 거기에서

우리는 일치된 모든 행위들을 우선하는 본질적인 조화를 깨닫기 시작

하기 때문이다. 고독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기 이전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과, 공동체 삶은 우리 의지의 창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일치된 존재 현실에 대한 순종적 대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고독 속으로 몰입하게 될 때는 언제나 우리의 인격적인 통교를 초월하는

사랑을 증거하고, 우리가 처음부터 사랑 받아 왔기 때문에 지금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1요한 4,19). 고독은 우리를 공동체가

힘을 얻는 그 양육적 사랑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

두려움과 분노의 강박 충동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며, 우리를

불안하고 난폭한 세상의 한복판에 희망의 표징이며 용기의 원천으로

존재하도록 하여준다. 간략히 말하면, 고독은 제삼자가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 보라"고 말하게 하는 그러한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준다.

 

 헨리 나웬 -로마의 어릿광대(고독,독신,기도 그리고 관상에 대한 묵상)-중에서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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