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분노의 힘
고독이 어떻게 사랑에 대한 우리의 공동체 증거를 심화시켜 줄 수 있는가? 각박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 안에서, 두려움과 분노는 인간 행위의 강력한 힘이 되었다. 우리는
매일의 신문들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두려움에 휩싸이고, 분노의 포로가 되어
가는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종교 공동체들이 두려움과 분노에 의해 오염된
끊임없는 활동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공동체들 안에서
함께 속해 있음의 의미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장소, 즉 좌절감을 표현할 수 있고, 실망을
함께 나누고,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 그러한 장소에 대한 점점 더 커져 가는 요구를 보게
된다. 과거에는 안전함과 자기 확신을 느꼈던 많은 종교 공동체들이 자기 회의로 인하여,
그리고 자신의 무기력함을 깊이 느끼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종교적
삶에 만족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자신들의 성소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이 세상에 어떤 실제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의심스련 동기와 잘못된 소망에 의해 자신들이 잘못 인도되어 왔던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 회의(懷疑)의 맥락 안에서, 많은 이들이 깊은 소외감과 외로움의 감정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자주 그들은 자신들이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모색하려
시도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실제적인 요구가 얼마나 깊으며, 공동체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이때까지는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던 깊은 성적 충동이 의식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고, 자주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
을 바라면서 친밀감을 보다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그들이 원하게
된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의 두려움과 분노에 아주 민감하고, 이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결을 모색하였던 그들은 자주 공동체가 채워 줄 수 없는 애정과
부드러움에 대한 강렬한 욕구도 체험하게 된다.
따라사 우리는 종교 공동체의 많은 이들이 파리를 불면서 춤을 추라고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어린이들(루가 7,32)처럼 되는 것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정도로 이 세상의 두려움과 분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도 있겠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계속되는
활동과 내적 고뇌에 지친 나머지, 그들은 우선적인 관심을 자신의 육체적, 감정적 생존에 두게
될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스럼고 애정 어린 현존에 대한
생생한 확신을 주는 증거의 삶을 그들로부터 기대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그들에게 요구한다.
이 모든 것은, 친밀감이 실제로 체험될 수 없는 공동체는 두렵고 성난 우리의 세상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창조적 증거자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우리는 공동체 삶에 있어서
고독의 중요성을 아주 조심스럽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지금부터 나는 무엇보다 먼저 지속적인
친밀감의 원천으로서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헨리 나웬, "로마의 어릿광대"-고독,독신,기도 그리고 관상에 대한 묵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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