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교회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앙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적극적인 요소가 아무리 많이 지적될 수 있다고는 하더라도 하나님은 아니며 신성한 존재도 아니다. 물론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활동과 교회의 활동은 동일한 것이 아니고 항상 서로 부합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활동은 그분이 이루어 놓은 어떤 결과에 의해서 대치되어 무용지물화할 수 없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따라서 교회는 전지.전능한 것도, 자족.자율적인 것도, 영원.무죄한 것도 아니다. 은총과 진리의 근원도, 주님도 구세주도 심판자도 아니다. 교회의 어떤 우상화도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온갖 위협과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온전히 하나님으로부터의 삶과 하나님에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요컨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순종의 인간 공동체이다.
(2) 우리가 교회를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바로 교회라는 뜻이다:
신앙인 공동체인 교회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교회는 우리들과 대립되는 하나의 지성인 집단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요, 교회는 우리다. 우리가 교회이기에 교회는 구도자와 방랑자의, 의지할 데 없고 고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죄인과 순례자의 공동체다. 교회는 우리이기에 죄많고 순례하는 교회다.
교회의 어떤 이상화도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어둠속에 방황하면서, 온전히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 용서와 구원에 의탁하는, 온전히 하나님께 신뢰하는, 요컨대 자기 자신을 믿지는 않는, 들음과 믿음의 인간 공동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믿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1)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에서 오는 교회가 신앙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믿지 않는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앙인들을 통하여 존재한다. 국민 없는 국가가 없고 지체 없는 육신이 없듯이, 신앙인 없는 교회란 없다. 교회는 단순히 하나님의 뜻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루어야 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결단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근본적인 결단에서 이루어진다. 이 결단이 신앙이다.
(2)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서 오는 신앙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개인을 신앙에로 부른다. 그러나 개인이 신앙 공동체 없이 신앙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신앙 역시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앙인들 안에 존재한다. 나아가 이들은 유리된 개체로, 고립된 신자로 사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 것도 아니다. 신앙인 공동체가 메시지를 전하고 신앙의 응답을 촉구하는 데서 얻는다. 이것은 그리스도 신자가 반드시 교회가 좋아서 믿는다는 말은 아니다. 도리어 현대인은 ㅡ 가령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와는 달리 ㅡ 여러모로 교회가 싫은데도, 교회의 역사적 양상 안에 나타나는 신앙의 양상이 여러모로 못마땅한데도 믿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흔히 교회는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분을 믿는 것과 더불어 ㅡ 덤으로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ㅡ 받아들여지는 데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비단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신앙의 터전이요 고향이다. 공동체의 신앙은 개인의 신앙을 자극하고 촉진하며 계속 감싸주고 이끌어준다. 이리하여 개인의 신앙은 공동체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공동체의 진리에 참여한다. 개인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역사성과 상대성과 고립성을 너무나도 깊이 의식하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자기의 신앙이 온갖 독자적인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의 더 광범하고 더 다양하며 오래고도 새로운 신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비단 항상 부담스런 일일 뿐 아니라 또한 항상 해방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신앙은 단순히 교회에서 나올 수는 없고, 교회도 단순히 신앙에서 나올 수는 없다. 교회는 개인의 신앙의 결단과는 상관없는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며, 신앙인들도 스스로 모여 교회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앙과 교회는 서로 의존하여 서로가 도와서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신앙과 교회의 근거는 서로가 상대방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독자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비로운 하나님의 구원 행위 안에 그 공통의 근원이 있다. 신앙이 먼저냐 교회가 먼저냐 하는 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끝이 없는 질문이다. 신앙도 교회도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절대화된 신앙은 교회를 붕괴시킨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위험이다.
절대화된 교회는 신앙을 파산시킨다. 이것이 카톨릭의 위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행위가 신앙에도 교회에도 앞선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의 교회다. 이것이 역사적 변화 속에서도 영속하는 교회요, 비본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앙의 주체와 대상이 되는 교회다. 현실 교회는 그 안에 살 만한 교회다. 그것은 사실 이상으로 자신있는 주장을 하고 바로 그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그런 이상화된 교회가 아니다. 또 그것은 사실 이하로 자책하는 주장을 하고 바로 그 때문에 아무 약속도 해주지 못하는, 그런 과소평가된 교회도 아니다. 현실 교회 안에 사는 인간은 이상주의적 환상이나 의기소침한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신앙인 공동체 안에서 분별있고 명랑한 신앙에 이른다. 현실의 참 교회는,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런 세상에 봉사하면서 현재 안에서 미래를 가지고 있는 교회다.
지금까지 우리가 현실 교회에 대하여 말해 온 것은, 참으로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거나 혹은 고작 변죽을 울렸을 뿐이다. 신앙의 주체요 신앙의 대상인 교회, 이 신앙인 공동체는 대체 누구를 믿는가? 역사적 존재인 교회, 이 역사적 순례단은 대체 누구에게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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