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은 그 근원인 "교회의 근원"에서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또 받아야 한다.
이 근원은 단순히 역사적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철학적으로 성립 또는 해석되는 초월적인 ㅡ교회사의 방향을 좌우하는 ㅡ "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전혀 구체적으로 "주어진 "것이요 "제정된" 것이며 "맡겨진" 것이다.
교회가 이해하는 신앙에 따라, 역사 안에 활동하는 하느님 자신의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안에, 인간을 위해, 결국 인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활동에 의해 결정된 이 교회의 근원은 단순히 역사의 첫 순간 또는 첫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든 순간의 온 역사를 규정한다. 교회의 본질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현실 교회는 그 근원을 등한시하거나 거기서 완전히 멀어질 수 없다. 이 근원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모든 역사적 양상과 모든 변화와 모든 일시적 우연성 속에 항상 참되고 계속 타당한 것이 주어진다.
교회의 본질은 주어져 있을뿐 아니라 맡겨져 있다.
세계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세계사의 변화 속에서 그 근원적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부동성(immobilismo)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응성(aggiornamento)에 있다. 교회는 항상 새로이 새로운 날(giorno)에 참여해야 하고, 항상 새로이 역사의 변화와 인간생활의 변모에 적응해야 하며, 항상 새로이 개혁과 쇄신과 재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숙고해야 할 일은 현재의 실태에서의 출발이요 과거의 근원에의 조회(照會)이며 미래의 교회상의 추구이다.
교회의 존망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메시지 안에 있는 그 근원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교회의 존립근거는 결정적으로 타당한, 따라서 지금도 타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활동이다.
근원을 되돌아봄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어느 시대의 교회에 있어서나 조회의 근거로 존속하고 있는 신앙의 원초적 증언에서 구체화된다. 원초적이기에 이 증언은 비할 데 없이 독특하며, 비할 데 없이 숭고하기에 그것은 생생한 구속력을 가지고 계속 모든 시대의 교회의 판단 기준이 된다.
이 원초적 증언, 원초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다. 다른 모든 교회 전통은 그것이 아무리 심오하고 탁월한 것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 하느님의 말씀의 원초적 증언을 중심으로 이 원초적 메시지를 ㅡ 제각기 다른 역사적 상황에 따라 ㅡ 해석,주석,설명,적용한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 원초적 메시지는 바로 줄곧 변천하는 교회 선교의 상황에 의하여, 계속 변모하는 일상생활의 질문과 문제와 요구들에 의하여 그 깊이가 드러난다. 모든 주석과 해석, 모든 설명과 적용은 원초적인 생명력과 박진한 구체성과 탁월한 현실성을 가지고 증언하는 성서의 메시지에서 거듭 새로이 그 판단 기준과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 성서는 교회 전통을 "규정하는 규범"(norma normans)이며, 전통은 "규정된 규범"(norma normata)으로 보아야 한다.
근원적 설계의 현대적 적용
그러나 분명히 말해 두자: 시대가 지나고 교회가 변하고 교회의 자기 이해가 변하는 속에서 신약성서에 나타난 실제의 교회 ㅡ 이 역시 이미 변화와 복잡한 다양성을 보이고 있었다 ㅡ 에 대하여 숙고한다는 것, 그것은 옛것일수록 더욱 완전하며 원시교회야말로 "황금기"의 교회라고 찬양하는, 낭만적 호고(好古)취미의 교회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에 입각한 신학이 지켜야 할 중대한 의무는, 어는 한 시대에 ㅡ 설사 가장 오래된 시대라 하더라도 ㅡ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근원이 되었었고 또 나날이 살아 있는 교회의 근원이 되고 있는, 하느님 자신의 생생한 종말론적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밝히는 일이다.
어느 그리스도교 신학이 이러한 연구태도의 의무에서 면제될 수가 있는가!
신약성서를 숙고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2세기의 유대인 크리스천이나 16세기의 재침례파 처럼 비역사적으로 신약성서의 교회를 반복,재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교회는 우리가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 따라야 할 모델이 아니다.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여 되풀이하는 것도 그 자체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 문자(文字)는 죽이고 영(靈)은 살린다는 것은 교회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가 그야말로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려면 단순히 과거만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역사성을 지닌 교회로서 항상 변하는 세계, 항상 과거가 아닌 현재에 사는 세계 속에서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가 신약성서의 교회를 숙고해야 한다는 것은 교회의 수시의 진전상이 모두가 신약성서에 의하여 허용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사에는 과오와 퇴보도 있어 왔다.
원초적 증언인 신약성서의 메시지는 변하는 역사 안에서 언제나 최고심(最高審)의 구실을 한다. 그것은 만대의 교회를 평가하는 규범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탕을 둔 근원에서 비롯하여 이미 교회의 본질을 충만히 지니고 있는 신약성서상의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본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시켜서 적용하여야 할 근원적 설계다.
신약성서상의 교회 이외에 교회의 근원적 설계가 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출처:어둠속에 갖힌 불꽃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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