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본회퍼-간단한 살핌02-기독론

하나님의 사람들

by 지심 정경호 2008. 10. 6. 09:51

본문

반응형

 
      본회퍼- 기독론 Ⅲ. 기독론(Christologie, 1933) 1. 여러 학자들의 견해 본회퍼는 히틀러가 독일의 최고 실력자(Chancellor)가 되던 1933년 여름에 베를린대학에서 『기독론』(Christologie)을 강의했던 바 학생들의 노트들을 토대로 베르게(Bethge)가 재구성한 것이 바로 기독론이다. 이것이 독일어로 1960년 본회퍼 총서(Gesammelte Schriften)에 실렸으며 영어로는 1962년에 『중심이신 그리스도』(Christ the Center)로 출판되었다. 그런데 이강의 내용은 전체가 3장으로 구성되었으나 히틀러의 억압 때문에 1장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나를 위하여, 2장 역사적 그리스도까지 끝내고, 3장 영원하신 그리스도는 강의할 수 없었다. 본회퍼가 이 『기독론』을 강의할 당시 기독론에 관한 유럽의 신학적 좌표에 대하여 펠리칸(Pelika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933년 신약성경 연구가 라이마루스로부터 브레데의 길을 편력한 후 이 막힌 길로부터 바야흐로 빠져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1933년엔 디벨리우스의 『복음서의 양식사』(Formgeschichte des Evangeliums) 제 2판이 나왔으며 이보다 2년 전에는 불트만의 『공관복음서 전승사』의 제2판이 출판되었다. 물론 본회퍼의 기독론에 역사적 예수를 교회의 신앙의 그리스도와 분리시킬 수 없다고 하는 저들의 영향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본회퍼는 그 당시에 인기를 끌던 기독론을 모방하지 않았다." 하르낙의 『교리사』(Dog-mengeschichte, 1886~9)과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 1900)은 19세기 자유주의적 개신교의 기독론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든지, 로고스(Logos)라든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이라든지 하는 교리적 기독론을 전혀 배제하였다. 이 하르낙이 세상 떠난지 2개월도 못되어 본회퍼가 베를린 대학에서 취임 강연할 때 하르낙은 물론 홀(Karl Holl)같은 교수까지도 루터의 신학사상에 나오는 교리적 기독론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하면서 본회퍼는 특히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위격을 비교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전형적인 시도로서 이러한 경향이 그 당시의 신학계의 지배적인 풍조였다고 하였다. 펠리칸은 본회퍼의 『기독론』의 주제를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역사와 사회에의 현존이나 자연과 우주에의 현존보다 구원론적이요 교회론적인 현존이 "그리스도의 현존"의 출발이라고 역설한다. 펠리칸은 하르낙의 기독론에 반대하며 본회퍼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긴밀히 연결하였다고 본다. 펠리칸은 필립스(Phillips)의 주장(thesis)에 반대하여 이 『기독론』이 19세기의 역사적 예수나 고대의 그리스도의 양성(two natures in the One Person)에서가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하는 바 교회론의 구원론적인 경험인 "나를 위한 그리스도(Christ for me, Christus pro me)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펠리칸은 이 기독론의 문제는 선물(Gabe=gift)과 과제(Aufgabe=task)의 문제라고 한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위한"(pro nobis)선물이시오, 나아가서 이 그리스도는 "성경과 전통"의 유산을 통하여 전해지는 바 이 성경고 전통에서 그 의미가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펠리칸은 고대의 기독론은 형이상학적으로 나갈 염려가 있고 종교개혁의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행동들에만 관심한 나머지 종교개혁의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행동들에만 관심한 나머지 기독론의 존재론적 물음들을 소홀히 했다고 보고 본회퍼야말로 행동과 존재의 통일로서 예수 그 리스도의 실제적 현존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인리히 오트(H.Ott)의 본회퍼 해석은 가장 폭넓은 현실(Wirklichkeit)에 상부하는 존재론적 기독론 혹은 기독론적 존재론에 촛점을 맞춘다. 오트는 『윤리학』에 나오는 "현실" 개념(Ethics, p.61)이 이미 『기독론』(1933)에 근거함을 지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현실적이고 여러 현실들 가운데서 하나의 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서 현실적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진실로 현실적인 분이시다. "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현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는 현실이시다. 그리하여 오트는 모든 현실적인 것의 존재론적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기독론이라고 말한다. 오트는 『기독론』이 강하게 주장하는 바 그리스도께서 말씀(Word), 성례(Sacrament), 공동체(Community) 안에 계시고 이 말씀, 성례, 공동체와 동일화되신다고 전제하고 그리스도의 실존과 역사와 우주의 주되심을 말하고 있다. 『기독론』에 관련하여...본회퍼의 바르트 비판과 성육신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는 교회론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그러면 1932년에 출판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Ⅰ/1rhk 1933년에 출판된 본회퍼의 미완성 작품인 『기독론』의 관계는 어떠한가? 바르트의 경우 "교회는 교회에 의해서 교회에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사건에 있어서만 끊임없이 그리고 연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된다."고 할 때 본회퍼는 이처럼 하나님의 초월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구축되는 바르트의 교회론이 성육신의 구체성과 연속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본회퍼의 기독론은 근본적으로 교회론을 통해서 펼쳐진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위엄이 이 세상으로부터 물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론에 의해서 보호받는다. 웰펠(Woelfel)은 본회퍼 『기독론』에 있어서 교회론이 중요성을 포착하면서 바르트보다 일찍이 본회퍼가 더 "교회적"이요 "복음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상 펠리칸과 월펠의 지적에서 적어도 우리는 본회퍼의 『기독론』이 『성도의 교제』와 『행동과 존재』의 중심 주제인 "교회공동체로서 실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계속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오트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주권 영역이 역사와 실존, 그리고 자연과 우주에로 연장되는 것을 발견한다. 2.본문분석 서론 부분에서 본회퍼는 인간의 이성(logos)을 초월하면서 이 이성에 대면해 있는 "반로고스"(the counter-logos)를 말하는 바 이는 어떤 아이디어(理念)가 아니라 역사에 등장하신 인격(Person)으로서 말씀(the Word)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인간의 이성은 인격이신 그리스도와의 해후에서 죽었다가 살아난다. 그런데 그리스도(the counter-logos)와 인간의 이성(human logos)의 해후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며 이 해후의 경험을 통하여 이성은 기독론적 질문을 제기한다. 즉 교회 안에서의 케리그마(Kerygma)를 통하여 일어나는 은혜와 신앙의 기독론적 지식의 전제요 출다. 마치 바르트가 1931년 안셀름(Anselm)의 (『지성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rns Intellectum)에서 교회 안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복음 말씀을 듣는 것(은혜와 신앙에 의한 구원)을 신학적인 지식 추구의 출발과 전제로 하듯이 본회퍼 역시 교회를 장(場)으로 하는 신앙의 지식으로서 기독론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론 뿐만 아니라 모든 신학적 지식 추구는 은혜에 대한 반응인 바 교회의 케리그마를 전제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할 것은 하나님의 초월적 행동의 주된 통일인 교회의 케리그마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반응과 연장으로서 교의적 지식 추구를 본회퍼는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행동과 존재의 종합이요, 케리그마틱 도그마틱(the kerygmatic dogmatic)이다. 본회퍼에 있어서 기독론의 문제는 "무엇"이나 "어떻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어디"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본회퍼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인격 혹은 위격(Person)을 중요시한다. 본회퍼는 기독론은 곧 구원론이라고 하는 쉴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와 리츨(Ritschl)등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 처럼 "사역"(Work)을 "위격"(Person)에 선행시키거나 결코 위격을 무시해버리지 않는다. 본회퍼는 은혜와 신앙으로 인격을 변하고 행위가 그 다음에 이어진다고 하는 "이신칭의"와 "성화"에 유비하여 그리스도의 "위격"을 그의 "사역" 앞에 두었다. 그래서 본회퍼는 다음의 멜랑히톤의 기독론을 이와같은 "사역" 중심의 기독론의 기원으로 보고 비판하였다. 사실은 이 멜랑히톤의 기독론은 형이상학적 교리를 강조하던 중세 스콜라주의에 반대하던 중 그렇게 되었다. 본회퍼는 제1부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나를 위하여(Pro me)"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양식(1.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 2.성례로서의 그리스도, 3.교회로서의 그리스도)과 그리스도의 자리(1.인간 실존의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 2. 역사의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 3.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본회퍼의 기독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영화롭게 되사 영화롭게된 몸으로 편재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the ubiquity of the glorified Lord와 the body of the glorified Lord)인바 이는 루터의 성만찬의 신학에서 집약되었다. 즉, 예수님의 신비로운 몸(the mystical=s-piritual body of the glorfied Lord)이 성만찬때의 봉헌의 말씀이 있은 후 시․공(時․空)적으로 공존(localized coexistence) 하신다는 사실이다.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신․인(the God-man)이시요 이분이 신․인으로서 시간과 공간 아래 내재(man)하시는 동시에 초월(God)하신다고 주장할 때, 이 "신․인 한분"(the one God-Man)이 기독론의 출발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편재와 교회내적 현존 모두에게서 그런데 이처럼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을 "사역"에 선행시킨다. 본회퍼는 적어도 여기에서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믿는 성도들과 연합해 계시며 교회 안에 시공적으로 현존하심을 말한다. 본회퍼는 이 "신-인"의 현존이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해서 가능한 가를 문제삼는 "어떻게?"의 문제는 우리가 풀 수 없으니 우리는 이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지니는 구원론적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의 완전한 인격이신 신․인은 교회 안에서 말씀, 성례, 성도의 공동체로 현존하신다고 하는 "나를 위한 구조"를 갖는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구조"는 새 인간에 관련하여 세 가지 요소를 갖는다. 첫째, 예수님의 역사성인 바 이는 타자를 위한 처음 열매인 그를 따르던 사도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 둘째,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형제들(새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 존전에 대신 서셨던 바 그는 새 인간 그 자체이시다. 셋째, 새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동하시는 까닭에 새 인류가 그분 안에 있으며 그분 자신이 그것이다. 1)그리스도의 현존양식 (1)말씀으로서 그리스도. 본회퍼는 이 제목하에 6가지 내용을 취급한다. 첫째,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진리이다....성령은 말씀을 통한 능력과 행동이다...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시기 위하여 오직 이 말씀에 속박되셨다. (2) ...인간은 만사의 의미를 이해 해야한다. 인간은 자기의 실존을 알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다. 인간은 로고스(logos)를 지녔다....하나님은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로고스로서 인간을 만나신다. 셋째, "인간의 말은 "생각(idea)을 내포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리스도는 인간을 향한 살아있는 메시지 전달(address)로서의 '말'이시다. 말의 개념에는 메시지 전달과 개념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전자에 속한다. 넷째, 그리스도는 메시지 전달로서 인간에게 책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호소이다...다섯째, 그리스도는 예언자처럼 말씀의 부대자(bearer)애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분 자신이 말씀이시다. 예언자의 경우는 그의 말이 그의 인격 자체가 아니라 그의 과제이다...여섯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말씀 안에 현존하실 뿐 아니라 교회의 말씀으로서 현존하신다. 즉, 그리스도는 구두로 외쳐진 설교 말씀으로 현존하신다... 위의 다섯 가지는 말씀의 본질을 말했고, 여섯째에는 설교 내지는 선포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본회퍼는 케리그마틱한 신학을 펼치고 있으며 동시에 그의 교회론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성례로서 그리스도. 본회퍼는 설교의 그리스도와 성례의 그리스도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동일한 분이 설교와 성례에 있어서 심판하시고 용서하시는 그리스도, 곧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말씀 설교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의 로고스를 사용하시고 성례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의 몸을 사용하신다...그는 피조물이지만 새 피조물이시다...하늘에 올라가 영화롭게 되신 분이시오, 신․인으로서 우리의 형제요 주님이시고 피조물이며 창조주이시다. (3)교회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 "...교회로서 실존하시는 그리스도는 전 인격이시다. 즉, 그는 높아지셨다가 낮아지신 분이시다. 교회로서의 그리스도의 존재는 말씀과 성례로서의 그리스도의 존재 처럼 걸림돌의 형식을 갖는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인 한, 교회는 죄가운데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교회는 죄의 세대 가운데에 죄성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옛 아담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교회 자체(고전 12)이시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릿히요 또한 모든 지체들이시다. 에베소서에서 비로소 머리와 지체가 나뉘는데, 이는 바울의 글이 아니다." 이상에서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말했다.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의 형식, 성례의 형식, 및 성도들의 공동체의 형식으로 현존하신다고 할 때, 기독론과 교회론은 서로 뒤얽혀 있다. 2)그리스도의 자리 (1)인간실존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 본회퍼는 위에서 "누구?"의 문제에서 "어디?"의 문제에로 옮겨갔다. 즉,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이신가?"의 물음에서 이분이 "어디에 계신가?"의 물음으로 넘어왔다. 그리스도는 시․공속에 보편적으로 계시는 인격이신데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 혹은 "교회로서 실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전제한다. 이 부활하시고 영화롭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인간 실존, 역사, 자연을 하나님께 중보한다. 그리스도는 붕보자의 위치를 확보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한 중보자이시다"라고 하는 구원론을 출발점으로 하였다. (2)역사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 보회퍼에 있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중보자의 역할에 유비하여 국가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한다. " 교회 공동체로서 실존하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가능하나 그리스도 자신의 중보 역할이 더 원초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3)하나님과 자연의 중심으로서 그리스도. 교회의 성례는 노예되었던 옛 피조물이 새 자유를 위해서 해방됨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인간 실존과 역사의 중심으로 성취되지 못한 율법의 성취, 곧, 화해이시다. 그러나 자연은 저주아래 있다. 죄책 때문이 아니라 자유의 결핍이다...이처럼 자연은 그것의 중심인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가 아니라 구속을 발견한다. 이상에서 말씀, 성례, 성도들의 공동체의 형식으로 현존하시며, 말씀, 성례, 및 성도들의 공동체이시기도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한 인간실존, 역사, 및 자연의 중보 내지는 중심이신 까닭에, 본회퍼의 기독론이 단순화 우주론적 기독론, 존재론적 기독론, 단순히 세상을 긍정하는 비종교화의 기독론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기능과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이형기의 "본회퍼의 신학사상" 중에서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