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 / 행동과 존재
* 여러 학자들의 견해*
본 작품은 1931년에 출판된 것으로
본회퍼의 교수자격 취드을 위한
논문이었다. 1930년에 출판된
『성도의 교제』에 이어 초기 이론적인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두 작품이 모두
기독론을 밑에 깔고 있는 교회론을
주제하고 있다. 즉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공동체로서 실존하신다는 점에서
이 두 작품은 모두 교회를 통한 계시의 실존과
연속성을 다루고 있다. 본회퍼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일 년을 머물고 베를린으로 돌아와
교수직을 수행하려던 즈음 본을 방문하여
바르트를 만났다. 이 때가 1931년이었으니 그의
『행동과 존재』가 출판되기 직전이었다. 이때에
본회퍼는 그의 친구 에르빈 수츠에게 보내는 글에서
“지금까지 내가 신학을 해 오면서 바르트를 보다
일찍이 만나지 못했던 것처럼 후회스러운
일은 없다”고 하였다. 월펠은 바르트와 본회퍼가
모두 19세기 독익의 자유주의적 개신교를 비판하고
신종교개혁 신학을 지향한다고 한다. 월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본회퍼의 신학 사상을 바르트의
교의학에 비추어 본회퍼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요 교회 중심적이요, 계시의 현실성에서
출판하는 신학적사고요, 변증신학을 거부하는
신학이다”라고 주장한다. 필립스는 본회퍼의
신학이 바르트적이다 지적한 바 제레르크의
“종교적 선험” 홀의 “양심의 종교” 독일 관념론의
“종교성”을 주로 『행동과 존재』의 본문을
인용하여 거부하고 있다. 본회퍼는 이러한 경향을
비판할 때 전적으로 바르트와 동일하다. 그러나
본회퍼는 『행동과 존재』에서 초기 바르트의
초월주의를 비판하고 “계시의 공동체성”혹은
“교회로서 실존하시는 그리스도”에서 계시의
존재성을 계시의 초월적 행동과 종합하려고
시도했다. 쉐르만은 본회퍼가 바르트의 인식론적
초월적 계시 개념을 수정보완하여 계시의 인격적
초월, 윤리적, 사회적 초월의 면을 말한다고 본다.
본회퍼는 “신앙”의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하나님 개념처럼 다만 초월적이요 비객관적으로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다. 그는 “신앙”의 실재와
연속성을 중요시한다. 본회퍼는 바르트적인 객관적
초월주의와 불트만적인 주체적 초월주의를 극복하고,
아퀴나스 신학 및 다른 종류의 존재론들을 극복함에
있어서 “아담안에 있음”과 “그리스도 안에 있음” 혹은
“죄인들의 공동체”와 “성도들의 공동체”가 지니는
연속성 홋은 존재적 측면은 매우 중요하다. 하인리히
오트는 본회퍼에 있어서 계시의 초월성과 연속성을
함께 보장하는 것은 교회공동체요 이 때에 연속성은
개인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초개인적인 공동체에
달렸다고 보았다. 하인리히 오트는 말씀의 사건에
관련하여 그것은 성도의 교제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필립스의 본회퍼에 대한 주장을 소개하면,
1930년의 『성도의 교제』와 1931년의 『행동과 존재』가
제새하는 바 “교회로서 실존하시는 그리스도” 내지는
“계시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교회 울타리 안에
국한시키는 협소한 입장이라고 지적하면서
본회퍼는 1931~`1933녀에 그의 『기독론』을
교회론과 관계없이 넓게 다르고 있다고 본다.
『성도의 교제』와 『행동과 존재』에서 본회퍼는
이미 그리스도론에 밀착된 교회론을 다루었거니와
그의 『기독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주제로 하여 그의 교회론과 나아가서
실존과 역사 그리고 자연과 우주를
중심으로서의 기독론을 다루고 있다.
*본문분석*
1930년 『성도의 교제』에서 교회의 사회학적
측면들을 다룬 다음 1931년 『행동과 존재』에서
본회퍼는 바르트 초기의 계시 개념이 초월
일변도요 우연적 계시 행동 일변도임을 지양하고,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게서 초월적 행동자이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시고(존재) 바로 이
계시가 교회 공동체로서 현존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바 계시의 초월적 행동과 계시의
존재의 종합을 교회론에서 찾는다. 이런
의미에서 본 작품 역시 그리스도론을 밑에
깔고 있는 교회론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1)행동으로서의 계시. (1)계시의 우연성.
본회퍼는 바르트의 계시의 자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계시는 전적으로
행동이다. 이 계시는 수용하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그 무엇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에 달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를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
본회퍼는 초기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이
계시의 초월성과 하나님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교회마저 여지없이 심판과 위기속으로
몰아 넣은데 반하여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신.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내에서 그리고
교회의 모습으로 우리가 ”포착“하고 ”소유“한다고
주장한다. (2)계시에 대한 지식. 신앙은 인간 스스로
창출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오직 하나님의
순수행동“에 의존한다. 본회퍼는 ”실존적지식“을
출발점과 기초로 하는 신학적 지식 체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본회퍼는
『행동과 존재』의 종합을 추구한다. (3)인간의 결단.
본회퍼는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인간의 결단의 문제,
무엇보다 일단 예수 그리스도와의 은혜로 말미암는
초월적 해우를 가진 이후, 즉 하나님의 결단이 있은
이 후, 새 인간 실존의 계속적인 결단을 문제삼는다..
본회퍼는 기독교인의 실존에 대한 루트의 ”의인인
동시에서 죄인“이라는 주제에 유비하여 예수
그리스와 만난 기독교인 내지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요 도잇에 ”아담 안에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초월적 일변도의 경향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본회퍼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 그리나
”아담 안네 있는 존재“라고 하느 그리스도인의 존제의
측면을 부각시켰다. 이것 역시 행동과 존재의
종합에 해당한다. 2)존재의 계시. (1)존재의
존재. 본회퍼는 하이데거의 개념인 “존재”와 “존재자”의
개념을 사용하여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떻게 “존재자”이시면서 이 “존재자”를 넘어선
“존재”이실 수 있는가를 추구 한다. 본회퍼는
교회론을 토앟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2)계시에
대한 지식. 현상학적 탐구란 인간 자신이 자기
자신 안에 “존재자들”을 통한 본질직관의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에 이 “존재자들”읠 배후에 있는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진정한 계시의 존재론이
성립하면서 인간 실존인 “나”와 이 “나”에 대면해서
참 인식적 대상의 구조가 있어야 한다.(3)“...안에 있는
존재”인 인간. 진정한 계시의 존재론은 위에서 언급한
기본구조 이외에 “...안에 있음”도 포함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신적인 인격 안에 있는데 이 신적인
인격은 “존재”인 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자로
존재하느 존재”로서 인간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에 인간
실존을 구축하여, 우리 실존은 이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며 동시에 교회안에 존재한다.3)행동과 존재의
통일로서의 교회. 본회퍼는 4가지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첫째, 교회는 인간실존 이해의 장...둘째, 교회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이 존재 양태의 가능성. 셋째, 교회 안에
인간의 존재 양태의 가능성 넷째,교회 안에 신학적 지식.
본회퍼는 교회와 교회의 설교를 전제하면서
“용감하게 죄를 범하라!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 용감하고 기뻐하라”고
멜랑히톤에게 주는 루터의 명제를 다시 고쳐
“용감하게 반성적 사고를 계속하라.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이 그리스도 안에서 더 용감하게
기뻐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신학이 올바른
신학인가에 대한 판단은 도그마가 말해야 한는데,
이 도그마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설교에 의해서
지도 받아야 한다.”
-이형기의 "본회퍼의 신학사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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