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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샤마임 소식지 08-04호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by 지심 정경호 2008. 11. 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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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호

샤마임수도원공동체 소식

샤마임수도원 공동체는 활동하는 관상기도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바른 영성의 확립과 보급을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샬롬^^

 

#01. 샤마임 찬양 소식

"~찬양과 함께"의 방에 실린 찬양 중에, 은혜로운 찬양 5곡을 소개합니다.

1)모세홍해축제

2)송명희 시인의 시와 드라마


 
 

송명희 시인의 시와 드라마 이어듣기
출처 :마┃주┃보┃기┃ 글쓴이 : SHARI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lF4/1486(원문보기)
//

3)요한의 아들 시몬아

4)주를 앙모하는 자

5)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02. 샤마임 말씀의 창

"~말씀의 창"의 방에 올라온 주목할 만한 말씀을 소개합니다.

1)트로트가수 문희옥 간증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mS7/414(바로보기)

2)감사하라/박종순 목사님(08,10,05)http://cafe.daum.net/shamaimprayer/AmS7/413(바로보기)

 

#03. 감동의 동영상

샤마임 카페에 올라온 동영상 중에 함께 나눌 감동의 동영상을 소개합니다.

1)대금 퓨전 째즈 "어떤 하루"

 

2)다시 떠난 탕자 이야기

 

#04. 영성이야기

샤마임과 함께 연구되고 공유되는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나누고자 합니다.

1)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 - 헨리 나우웬

 

- I -

당신은 여러 면에서 상처를 받았다.
당신이 치유를 바랄수록 상터가 얼마나 깊은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큰 도전은 당신의 상처를 ‘삶’으로 이기는 것이지
‘생각’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걱정하는 것보다 우는 것이 낫고,
상처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깊이 느끼는 것이 낫고,
그것에 대해 말하기보다 당신의 침묵 가운데 가져가는 것이 낫다.


당신이 계속 직면하는 선택은 당신의 상처를 머리로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마음으로 가져갈 것인가이다.
머리는 상처를 분석하고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며
그것에 대해 말하고 쓰기 위한 단어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근원에서 궁극적인 치유가 나오지 않는다.
당신의 상처들을 마음으로 내려가게 해야 한다.
그러면 상처를 이길 수 있고
그것이 당신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상처들보다 크다.


- II -


당신 안에는 어린 양과 사자가 있다.
영적 성숙은 어린 양과 사자가 함게 눕도록 하는 능력이다.
사자는 당신의 어른이고 적극적이며 솔선하고 결정하는 자신이다.
하지만 당신 안에는 두려워하고 상처 입기 쉬운 어린 양이 있다.
사랑과 지원과 인정받음과 양육이 필요한 자신이다.

사자에게만 주의하면
당신은 지칠 대로 지친 당신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린 양에만 주목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주목이 필요한 피해자가 되기 쉽다.
영적 삶의 기술은 당신의 사자와 어린 양을 완전히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필요를 거부하지 않고도 단호히 행동할 수 있다.
지도력을 제공하는 재능을 배반하지 않고도
사랑과 관심을 요구할 수 있다.


- III -


너는 이런 저런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문제는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의심과 걱정이 많은 네 자신을 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느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일시적인 감정이나 열정 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선택은 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며,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때로는 마음 속에서
'그렇게 믿어봐야 소용없어.
6개월 전의 고통을 아직도 겪는 것만 해도 알잖아.
옛날보다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어. 난 변한게 하나도 없어'
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가 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있다. 나는 네가 내게
더 가까이 와서 내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를 바란다.
너에게 새로운 마음과 영혼을 주겠다.
나는 네가 내 입으로 말하고,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으며 내 손으로 만지기를 바란다.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너의 하나님임을 의심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신다.
너는 이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루하루 선택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지나간 세월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지 선택할 시간이 온다.
지나간 세월을, 새롭게 태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간 헛된 노력의 시간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반대로 하나님이 네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신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너의 미래는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알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여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앞으로도 힘들고 괴로운 선택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네게는 이제까지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 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네 곁에서 너를 위해
위로와 기도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과 그 분이 보내신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고,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너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든 선택의 시간이 오더라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 헨리 나우웬,
[마음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소리(The inner voice of love)] -

원문바로가기) http://cafe.daum.net/shamaimprayer/Bj0a/8

 

2)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 01-간단한 살핌을 통해서 본-

본회퍼의 신학사상-그의 7작품을 중심하여- : 제 1 장 본회퍼 연구를 위하여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와 그의 쌍둥이 누이 사빈(Sabine)은
1906년 2월 4일 독일의 브레슬라우(Breslau)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교회사가 칼 폰 하제(Karl von Hause)였고,
본회퍼의 아버지 루드비히 본회퍼(Karl Ludwig Bonhoeffer)는 외과의사였다.
1912년 본회퍼의 가정은 베를린(Berlin)으로 이사왔고 부친은 베를린 대학의
정신분석학 교수가 되었다. 16세에 본회퍼는 목회자가 되려고 결심했는데,
부모로부터 아무 지지도 못얻었고 그의 형들에게서 반대를 받았다.
1923년 가을에 그는 튀빙겐(Tübingen)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년후(1924년) 그는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이곳에서
여러 석학들을 만났다. 본회퍼는 홀의 지도하에
「루터의 편지들(1540~1546)에 나타난 바, 그의 생애 말년에 있어서
루터의 자기 작품에 대한인상들」 및 「1535~1545에 있었던 신학논쟁에
의한 루터의 성령론」을 썼다. 그리고 조직신학 교수요, 본회퍼의
재학중 2권의 『기독교 교리사』를 출판한 바 있는 제베르크 밑에서
신학석사(the licentiate of theology)를 취득했다. 1972년 본회퍼는
제베르크의 지도하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그 제목은
『성도들의 교제 : 교회의 사회학에 대한 교의적 탐구』(Sanctorum
Communio : A Dogmatic Investigation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 였다. 1928년 본회퍼는 신학훈련을 끝내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Barcelona)에 있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교회의
부목사로 부임했다. 1912년 베를린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교수가
되기 위한 논문(Habilitatio-nsschrift)을 제출했는데, 이것이
1930년에 끝마친 『행동과 존재:조직신학에 있어서 초월주의적
철학과 존재론』(Act and Being :  Transcendental Philosophy
and Ontology in Systematic Theology) 이었다. 본회퍼는
교수자격을 얻은 직후 교수직을 수행하기에 앞서 1930년
늦여름에 미국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 갔다. 이때에
본회퍼는 미국 신학생들이 깊은 신학보다는 경건, 사회적 관심
및 실천적 윤리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을 발견하였다. 1932년
바야흐로 히틀러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는 교회의 영역까지
침투해 들어왔다. 이때에 히틀러와 “독일 기독교인들”에
대한 항거 운동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본회퍼는 이들
복음주의자들의 히틀러 항거운동에 가담하였다. 1933년
여름에 휴가를 얻어 런던에 있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본회퍼는 영국에서 목회적
의무를 다하면서 독일교회의 반 히틀러 투쟁에 계속 참여함으로
바야흐로 본회퍼는 독일밖에서 독일교회의 반히틀러
투쟁의 대변인이 되었다. 1935년 4월 그동안 세워진
"고백교회의 긴급 고백교회 총회로"부터 부름을 받아 귀국한
다음 발틱해 근처에 있는 징스트(Zingst)에서 25명의 목사
후보생들을 돌봐야 했다. 그러던 중
핀켄발더(Finkenwalde, Pomerania)에 새로 건립된 비합법적
고백교회계통 신학교를 책임맡게 되었다. 본회퍼는
이 피켄발더 기간에 17세의 마리아(Maria)라는 여자와
약혼하였다. 1936년 2월 29일에서 1936년 3월 11일까지
스웨덴에서 열리는 에큐메니칼회의에 참석하여 덴마크와
스웨덴을 견학하였는 바, 코펜하겐, 룬트, 스톡홀롬, 웁살라
등을 방문하여 주립대학, 교회를 견학하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본회퍼는 독일교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던 중
1936년 8월에는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는데 본회퍼는
이 기회에 독일 고백교회의 반히틀러운동에 대하여 널리 알렸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정복한 지 1년 후인 1939년에는
체코를 침공했다. 이때에 본회퍼의 영국친구들은 본회퍼가
본국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니버와 레만(Paul Lehmann)은 본회퍼를 미국 유니온
신학교로 초빙하였다. 이때 그는 1년 동안 미국에 머물고
다시 귀국하여 고백교회를 위하여 일할 것을 약속하고
그들의 초빙을 수락하였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본회퍼는 독일에 남겨두고 온 형제들에 대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본회퍼는 뉴욕시에 있는
독일인 피난민들 교회에서 목회하도록 초대되었는데
그는 독일로 자유롭게 귀국할 것을 결심하였다.
본회퍼는 1939년 6월 25일에 독일에 도착하였다.
1940년 여름 이후 본회퍼는 독일 군부내 군정보부에서
정보부장부관으로 일하는 그의 매부 도나니(Hans von Dohnanyi)의
알선으로 군정보부가 채용한 민간인 요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를 적(敵) 그리스도로 간주하였다. 이때에 본회퍼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하여 스위스에 가서 바르트와 W.C.C 총무인
후프트(Visser's Hooft)를 만났으니, 그는 이때 군정보부 요원이었다.
1942년 가을에 본회퍼가 약혼했는데, 바로 이때 이미 같은 정보부
상관 가운데 한 사람은 체포되었다. 그래서 본회퍼와 그의 친구들은
체포될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1943년 4월 5일 본회퍼는 비밀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18개월 동안이나 베를린에 있는
테겔(Tegel)형무소에 보냈다. 베트게에 의하면 1944년 9월에 있었던
히틀러의 처형에 대한 지령에는 본회퍼가 제외되어 있었으나 점차
치밀한 조사 끝에 1945년 4월 5일에 있었던 히틀러의 특별 지령에
따라 본회퍼는 처형될 인사들의 명단에 실렸다. 1945년 2월
부헨발트(Buchenwald)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옮겨졌다.
1945년 4월 3일, 부활절 다음 화요일에 이들 국제 옥중 인사들은
플뢰센부르그(Flössenburg)에 있는 비밀경찰 강제수용소에 있는
비밀경찰 강제수용소로 또 옮겨졌다. 1945년 4월 9일 동틀 무렵
본회퍼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그는 20세기의
순교자의 죽음을 죽은 것이다.


이형기의 "본회퍼의 신학사상" 중에서

원문 바로가기)http://cafe.daum.net/shamaimprayer/DYAS/7

 

3) 관상과 성숙 04 : 관상이란 무엇인가?

 

                                                                 글 /  지붕과 쉼

 

 

 

오늘은 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상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는 관상 즉,

Contemplation의 역사들이 흡수되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이 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관상이라는 용어가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Contemplation이라는

용어의 어원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이 용어를 잠시 살펴보면,

관상이라는 핵심적인 단어인

Contemplation은 두 가지의

독특한 원천,

즉 성서와 그리스의 철학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관상을 표현할 때

'전인격으로 아는 지식',

즉 '하나님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지식'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da'ath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용어를 그리스 성서에서

히브리어 da'ath를 번역하면서

gnosis( 靈智)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gnosis라는 용어를

그의 서신들에서 사용하고 있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친밀한 지식을

갖추기를 권면하였습니다 .

왜냐하면 이러한 친밀한 지식이

바로 크리스찬의 

영적 성숙의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용어들을

그리스 교부들,

즉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 등의

교부들이

신플라톤주의 학파에서

Theoria라는 단어를 가지고 왔는데,

이 단어의 원뜻은

'진리의 지적 시각'을 뜻하고 있으며,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theoria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의 최고의 활동'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theoria에 교부들은

'사랑을 통하여 얻어지는 경험적인 지식'이라는

뜻의 da'ath의 의미를 가미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 theoria의 용어를

이와 같이 확대해서 이해하면서

라틴어 contemplatio(관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러한 전통을 6세기 말에

대 그레고리오가

'사랑으로 가득히 충만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이라는 의미로 Contemplation을 설명하게 됩니다.

 

성 그레고리오의

관상은 성서에 대한 묵상의 열매였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써

'하나님 안에 쉼'이라는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친밀한 체험에 바탕을 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뜻으로 Contemplation을 이해했고,

이러한 이해는 중세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관상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관상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샬롬. 

 

원문 바로가기)http://cafe.daum.net/shamaimprayer/8maL/277

 

#05. 아름다운 시와 글

샤마임에 올라온 게시물 중에 나누고 싶은 글과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나는 주님의 것/김정준 목사님

나는 주님의 것

내가 주님의 것 되고자 원하기 전에
주님께서는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셨나이다.
내 부모 형제에게서 선함이 없고 내 자신에게서 아무런 의로움이 없지만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주님께서 이것을 주님의 소유물로 하셨어도
천지나 역사에 털끝만한 변함이 없겠지만
주님께서는 그저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내 과거나 미래도 거룩한 보증을 할 수 없건만
그저 주님께서는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이것을 주님 것이라 하시면 마음 쓰시기 괴로우실 텐데
그래도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하나이다.

주님께서 나를 주님의 것이라 하시지만
이것은 또 앞으로도 몇 번이나 주님을 반역할지 모르는데
그래도 주님께서는 너는 나의 것이라 하나이다.
이것이 주님의 것 됨으로 주님의 곳간이 부해질 것 아니건만
그래도 주님께서는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내게는 아직도 뱀 같은 간사함이 있고 표범 같은 악독함이 있다온데도
그래도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주님, 너는 내 것이라 하신 참 뜻을 모르겠나이다.
이것을 몰라도 주님께서는 상관하지 않으시고
그저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주님, 이것이 주님의 소유의 하나이오니 쓰셔도 당신 뜻
또 버려도 당신 뜻이외다.
다만 당신 뜻만이 이루어지사이다.



-김정준 목사님의 기도-
http://cafe.daum.net/shamaimprayer/DZCE/24(원문가기)

 

2)우리는 당신의 것/키르케고르


하늘의 아버지시여!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용서로
받아주옵소서

부디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보화가 있는 곳에 있음을 알고,
우리의 국적이 있는 당신의 나라를
동경(憧憬)함으로써,
당신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 세상 이별의 날이
고통스럽기보다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당신과의 재회(再會)가 되게 하옵소서

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장래의 일이겠지요

그러나
때로 우리의 힘이 상실되고
피곤함이 우리를 이슬처럼 덮으며
그래서 어두운 밤 속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우리의 욕망과 노심초사(勞心焦思)
그리고 분노가 용솟음칠 때,
더욱이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우리의 마음이 불안 속에서 전율(戰慄)할 때,

그러한 때에
아, 아, 아버지 우편에 계시는 주님이시여!
이 세상의 삶에 있어서도
우리는 당신의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을
부디 우리로 깨닫게 하셔서
깊은 심령 속에 강하게 지닐 수 있게 하옵소서

 키르케고르와 함께 하는 52주 묵상여행
  (최홍덕 옮김, 패스터스하우스 출판) 中에서
http://cafe.daum.net/shamaimprayer/DZCE/25(원문바로가기)

 

3)나는 사랑의 소유자 이고 싶습니다.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우린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로 부터 시작됨을 ......
또 하나님의 이끄심 없이는
한순간도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깊은 성찰의 삶이
하나가 되어 우린 살아갑니다.
나는 하나님의 전에 장식되어진
백합화이고 싶습니다.
꽃들은 시들고 버려지겠지만
최후까지 주님의 전에 향기를 날린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포악한 행위와 입술
그리고 강팍한 마음과 조급함들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율법의 잣대를 갖고 있는 시선들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말없는 백합화는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로
모든 이들을 기쁘게 합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은
첫째도 사랑이요.
둘째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다한 허물과 죄까지 덮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지에 더욱
나는 사랑의 소유자이고 싶습니다.
당신을 향하여
이웃을 위하여
사랑에 가득 젖은 따뜻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 평화의 사람

 

원문바로가기)http://cafe.daum.net/shamaimprayer/ArJB/295

 

#06.클래식과 국악 이야기 & 성화 예술

샤마임에 함께 하고 있는 클래식과 국악 그리고 성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방입니다.

1)비발디 - 플륫 협주곡 작품 10-3번 La Notte(밤) RV439 ...

2)헨델 - 합주협주곡 5번 D장조 작품 6 ...

3)베토벤 - 교향곡 2번 D장조 작품 36 ...

4)베토벤 / 레오노래 서곡 3번 마즈막 2분

5)카를 코하우트 / 류트 협주곡 D 장조 - 존 슈나이더만(류트), 갈랑트리 앙상블

 

#07. 샤마임 토론의 방

"난상토론"에 올라온 글을 소개하고 나누는 곳입니다.

1)'붉은악마와 개신교 근본주의,누가 더 불길한가?'

'성경에 보면 우상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공중변소로 만들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국에 가득한 절과 성당을 모두 공중 변소로 만들게 해달라는 비젼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경주 불국사에 가면 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래 된 낡은 건물들과 우상뿐입니다.

절대로 가지 마세요. 입장료가 모두 우상숭배에 사용됩니다. 또 경주는 영적으로

암흑도시입니다. 경주에 가면 사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한 선교 단체의 선교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한 달전 쯤에 읽은 것이고,

기억에 의한 것이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은 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단체의 이름이 정확하지 않겠지만 영문 GM*로 기억됩니다. 가까운 친척이

개신교의 성직자라, 개신교 단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매체를 가끔 접하면서

느끼는 것이 개신교에서도 극과 극을 달리는 차이입니다.

왼쪽으로는 사회신학, 민중신학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으로는 근본주의가 있는데

근본주의 개신교는 위의 글에서 보듯이, 다른 종교를 절대로 공존해서는

안될 악마로 봅니다. 해방신학조차 공인하는 가톨릭은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달리하는 입장에 대해 가끔 제한을 하므로 이것이

한스 큉 신부처럼 교회 밖의 구원론을 막는데 보는 것처럼 사상의 자유를

막기도 하지만 극단으로 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개신교의 문제는 아무도 간섭하기 어려워 이단이 아닌 기독교 계통의

사이비 종파의 출현에도 속수무책이라는 것과 함께 누구도 신학이나 실천 신학에

있어 이렇게 극단으로 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태어난 행복 중에 하나가 다종교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 백화점이라고 할만큼 전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 종파가 한국만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나 국가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종교나

신앙의 다양한 견해에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접하기 쉽다는 것은 지배적인

종교만 있는 국가나 종교분쟁이 있는 나라와 달리 이 점에서 만큼은 한국은

철학과 종교 연구에 있어서 만큼은 축복 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종교의 성전을 공중변소로 만들자는 개신교 근본주의의 주장에

솔직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붉은 악마'를 둘러싼 논쟁입니다.

 

"붉은 악마"를 "붉은 호랑이" 등으로 개칭하자고 하고 "하얀 천사"를 만든

개신교 근본주의에서 제기한 이 문제는 서태영 하니리포터가 한기총의 의견의

일부를 타당하다고 하면서 붉은 악마가 잘못된 작명이라고 하면서 한기총의

일부 견해를 지지한다고 한 내용입니다.

 

▶관련기사 - '붉은악마'보다 더 불길한! (서태영 리포터)

 

한기총의 논란을 미국 대통령이 아랍에 대한 전쟁을 십자군

전쟁으로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저로서는 명확하게

서태영 리포터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한겨레 21에 박노자씨의 기사에 보듯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십자군 전쟁 발언의 뒤에는 이른바 개신교근본주의의

신학적 입장이 숨어 있습니다.

근본주의(Radicalism)는 때로는 가장 과격한 혁명적 입장을 말하기도

하며(독일 농민 전쟁을 주도한 토마스 뮌쩌의 천년왕국 운동도 근본주의

운동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반면에 보수조차 적대하는 극보수,

초보수의 입장을 말하기도 합니다.

한기총의 입장은 근본주의입니다. 아랍을 사탄이라고 하는 입장입니다.

인류 최후의 전쟁으로 천사와 개신교 신자 대 사탄의 전쟁이 될 아마겟돈에서

개신교 근본주의와 이스라엘이 연합한 천사의 군대가 개신교 근본주의 신자를

제외한 모두 비개신교 세력(반개신교가 아니라 비개신교입니다.)을

절멸시킨다고 요한 계시록의 묵시 문학을 이해하는 것도 근본주의 신학입니다.

과연 서태영 리포터가 이러한 한기총의 신학을 이해하고 주장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주의 개신교 신학은 한마디로 절대로 다른 믿음과

신앙과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기총이

왜 그렇게 "붉은 악마"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붉은 악마"만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근본주의는 아랍과 사회주의,

불교 등등 모든 비개신교적인 것을 사탄으로 봅니다.

서태영 리포터의 견해는 그러므로 개신교 중에서도 근본주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의 공공정책은

일부 종교, 종파의 입장에 따라서는 안됩니다. 교과서에 '붉은 악마'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일부 종교, 종파의 견해에

불과합니다.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일부 종파, 종교의 견해를 교과서

내용에 반영한다면 우리 나라 국어, 사회 등, 사상, 철학이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할 과목의 교과서에는 아무 것도 실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천사와 악마의 구분을 확실히 하여야 한다는 서태영 리포터의 견해에도

찬성 할 수가 없습니다. 영어로 악마는 devil입니다. 어원은 divine입니다.

divine은 빛이라는 뜻으로 인도-페르시아 계통의 언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빛, 혹은 빛의 신을 의미합니다. 아직도 조로아스터교(배화교로 잘못 알려진)

등에서는 Divine을 유일신으로 인정합니다. 유일 신, 그리고 개신교,

기독교에서도 빛과 소금으로 때로는 신을 의미하기도 하는 빛인 devil이

악마를 뜻하는 용어가 된 것은 서구와 영어의 횡포인 셈입니다.

또 개신교에서 우상이나 악마로 표현하는 바알이나 기타 중동의 신들은

모두 악마가 되었다는 것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한 종교의 신은 다른

종교와 접할때, 우월한 문화의 하위신이 되거나, 아니면 악마가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러한 영문표기를 서구와 영문의 해석에 춤출 필요도

없을 것이거니와, 악마라는 표현이 과연 악마를 뜻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 작명법이라는

은 너무나 뻔한 것이라서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또 악마는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공존 할 수 없는 존재이겠지만,

다른 종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악마도 성불할 수 있는

존재로 봅니다. 단순히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일 뿐입니다. 자기를

세 번이나 살해하려고 한 제바달다(불교에서는 가장 악한 존재를

비유할 때 제바달다 같다고 합니다. 악마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악마라는 표현입니다.)를 성불하리라고 수기(예언)를 내린

석가모니의 불교의 입장에서는 하등의 문제가 될 것도 아닌 표현입니다.

그야말로 악마를 악마로 보는 것은 개신교, 기독교의 입장일 뿐입니다.

붉은 악마라는 명칭은 서태영 리포터는 악마를 천사라고 두둔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오직 개신교의 입장일 뿐입니다. 악마든

신이든 성불해야 할 존재로 보는 불교에서는 "붉은 악마" 든 " 하얀 천사" 이든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두둔한다고 볼 필요도 없습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붉은 악마' 명칭에 대한 한기총의 입장은 개신교

근본주의의 불길한 극단주의의 주장 일뿐입니다. 나아가서 일부 종파,

종교의 극단적인 입장이 관철되는 사회라면 소름이 끼칠 정도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개신교 근본주의의 주장이

전면적으로 관철된다면 한국에서 개신교의 교회를 제외한 모든

종교의 건물-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교 문화재를 포함해서-들이

공중변소는 아니더라도 파괴 될것을 상상하면 끔직한

반달리즘-문명파괴주의-이 아닐까요? 한국은 개신교가 국교가 아닙니다.

교과서에서조차 특정 종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내용이

실리는 데도 간섭하고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종교라면 마땅히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서태영 리포터에게 묻고 싶습니다. 한국의 모든 절과 성당이

공중변소가 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요?

하니리포터 김승열 /notwho@hanmail.net">notwho@hanmail.net



편집시각 2002년09월01일18시26분 KST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wX8/65 <원문보기>

 

#08. 주일학교와 율동(어린이 찬송가 편)

"율동, 몸찬양, 기타 주일학교 찬양을 소개하고 주일학교에 대한 중요한 이슈들을 소개합니다."

어린이찬송가 001장 다찬양 드리자[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2장 사랑으로 우리를[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3장 가만히 모여 앉아[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4장 예수님 우리들은[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5장 우리들이 모여서 [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6장 이 아침 우리들의[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7장 주의 이름 찬양해[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8장 고요하게 정성들여[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09장 하나님 아버지[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0장 함께 주를 찬양하세[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1장 주 예수 이름 높이어[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2장 노래하는 산새처럼[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3장 즐거웁게 불러라[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4장 들길을 걸으며[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5장 땅에서 저 하늘이[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6장 주를 찬양하리[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7장 바닷물에 세수하고 [악보]
어린이찬송가 018장 내 작은 입으로 [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19장 맘과 뜻과 정성다해[찬양+악보]
어린이찬송가 020장 방긋 방긋 웃는 꽃 [찬양+악보]
 

#09. 이달의 책 이야기

읽을 만한 책을 한 권씩 소개합니다

1)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인간 정신의진화에 관한 전문가이자 명강의자로 알려진 그는 1952년부

터 정신 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정신 치료 협화의 종신
회원으로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다수의 과학 논문과 강연 테이프를 발표 했으며, 1973년에는
<음식을 통한정신 치료>를 노벨상 수상자인 리누스 폴링과 공동 저작
하여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여년에 걸친 연구와 수 천 명을 대상으로한 실험의 열매인 이 책
은 "표면의식에서는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간의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그 동안 잠자고
있었던 내면의 神性(신성)이 활성화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해 준다.


또한, 기독교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 도교가 말하는
神明(신명)시대, 증산이 말하는 후천 개벽시대가 밝아오고 있음을 예표
하듯, 실험 결과를 통해 최근 인간의의식 레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알려 주어, 충격을 안겨 준다.

 

 http://cafe.daum.net/shamaimprayer/AG5j/75(바로가기)

#10. 샤마임 칼럼

이곳은 누구나 "~테마&샤마임소식지"에 글을 올리시면

이곳에 글을 실을 수 있는 장으로 마련된 곳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제목: 황량한 북녘땅의 에덴동산

 

평양과학기술대학 부총장 정진호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이 현재 북한의 수도 한 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 땅에 하나님의 비져너리(visionary)들이 세운 '평양과학기술대학'이

그것이다. 기자는 그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정진호' 설립 부총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까지의 숨겨진 이야기와 그의 삶을 헌신케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설복을 현재 일정중인 캐나다 토론토 현지에서 들어보았다.

 

 

일주일에 5일을 술에 절어 지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서울대 공대에 입학한 정진호 교수는 80년대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반정부시위에

늘 가담했고 그로인한 내면의 공허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1주일에 닷새를 술로 지새워야만 했다.

당시 교제하던 여자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소개 받아

100일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 최문선 교수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목사님의 주례로 세우자는

예비신부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할 정도로 철저한 안티기독교의 신봉자였다. 아내가 교회에 간 사이

갓난애를 안고 담배를 피워댈 정도로 교회와의 담을 쌓고 자신만의 세계관속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결혼 후 3년간 교회 근처에도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술에 취해 살아요...

그렇게 30살까지 술과 연애, 문학을 도피처로 삼던 정진호 교수의 인생에 예수님이 찾아오면서 술에 찌든

그의 인생은 끝나고 말았다. 1988년 미국 MIT대에서 박사 후 과정(Post Doc)을 밝기 위해 보스턴 유학길에

오를 무렵, 먼 이국땅에서 정진호 교수는 친구로부터 한인교회 출석을 권유받았다. 그 교회에 하버드대와

MIT대에 다니는 교포와 유학생이 많았기 때문에 그저 사람을 사귀는 셈치고 출석했다. 그러던 중 바비큐파티인줄

알고 찾아간 후배 집에서 'Gate bible study'라는 유서 깊은 성경모임을 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날의 모임이

인생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된 것이다. 1년여쯤 지난 후, 창세기 공부가 끝날 무렵에는 감추어진 놀라운

복음의 비밀들이 깨달아지면서 성경말씀의 묘미에 사로잡혔다. 점차 깊이 있게 묵상하게 되면서 신앙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큰 충격이 느껴지면서 교만한 마음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6개월간을 눈물과 회개로 보냈다. 서서히 인생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성령의

새 술에 취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에게 가장 큰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연변 행을 결심하게 되셨나요?"

1990년 미국 코스타 집회에 참석하여 당시 연변과 기대를 짓기 위해 교수요원을 뽑으러 다니는 김진경 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드려서 복음과 민족을 위해 살아가는 신앙 선배의 모습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해 시야가 넓어지면서, 나의 전공과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와 우리 민족의 회복을 위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중국과 북한을 향한 비전이 내 생각을 계속 사로잡았으며, 마침내 연변 행을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사명은 믿음과 복음 안에서 막힌 담을 허물고 우리민족이 다시 통일과 회복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열방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키워내며 준비시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기에 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연변에서의 성공이 평양입성의 발판 마련

94년 연변에 처음 발을 디딘 정진호 교수는 지금까지 이천 여명의 '연변과 기대' 졸업생을 배출해 내게 되었다. 10년

넘게 정진호 교수는 '연변과 기대'에서 재료공학과 과학사를, 부인 최문선 교수는 음악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 대학에

재직하는 200여명의 교수진은 모두 자원봉사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 모두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김진경 총장을

중심으로 최선을 다해 일구어 낸 결과였다. 이렇게 인재 양성에 성공한'연변과 기대'를 기켜보던 북한 최고지도부는

결국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2001년 김진경 총장에게 '평양과 기대' 설립을 요청하게 되고, 군부대가 있던 평양시 낙랑

구역을 대학 부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순교자의 터 위에 세워지는 '평양과학기술대학'

대지 33만평, 건평 2만 4000평의 규모에 박사원(대학원)과 다양한 대학학부, 부대시설이 들어서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은

2007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공사현장에서 교회 종탑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이를 추적해보니, 놀랍게도 그 종탑은 한국 최초의 외국인 순교자이자 1907년 '평양 대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던 '토마스 선교사' 기념교회당의 흔적이었다. 놀라웠다! 결국 복음의 비전을 들고 설립되는 '평양과 기대'는 순교자의 터 위에, 100년 전 거대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던 바로 그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2007년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일어났던 부흥 운동이 꼭 100주년 되는 해이다.

때문에 '평양과 기대' 건립은 단순히 남북협력을 통한 대학설립이 목표가 아니라, 이 땅에 부흥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었다.

 

'과부 두 렙돈'처럼 귀하고 귀한...

한창 대학설립을 준비하던 98년, 김진경 총장이 북한 당국에 42일간 억류되고 결국 북한에서 추방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게다가 우리나라 언론과 세계의 시선은 마치 이적행위를 한는 것처럼 몰아세웠다.  어렵게 2001년 설립허가를 승인받지만, 2003년 경기불황과 함께 북한 핵 보유시설이라는 국제정치적 폭풍이 몰아치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마저도 동결됐다.

어려운 상황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건축도 하기 전에 경제불황이 몰고 온 자금난은 더욱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꼭 필요한 물질들을 하나님 시간표에 맞추어 보내주셔서 공사가 중단 없이 지속됐다는데...

정진호 교수의 간증을 듣고 급히 돈을 구해 전철역으로 달려와 건네준 때밀이 아주머니의 '과부의 두 렙돈 같은 헌금', 평양

현장에서 일한 중국 노동자들의 월급을 헌금으로 마련해 연변과기대까지 직접 찾아와 건네준 어느 사장님, 길거리에서

부채와 액자를 팔아 수년간 모은 적금을 들고 온 뇌성마비 장애우 정재완씨. 이 외에도 수많은 이들과 함께 평양과기대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열정은 감동적이고 생생했다.

 

이 땅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현재 '평양과기대' 서립 부총장으로 사역중인 정진호 교수는 눈물로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어려움들의 해결책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고백한다. 이런 그의 마음속에 변치 않는 하나의 소원은 "부흥"

이다. 가지 또한 정진호 교수가 굳게 믿는 부흥의 물결이 2007년 다시 한 번 한반도 온 땅에 물들이기를 소원해본다. "여호와여

주의 일을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합3:2).

                                                                                             글/이순호 기자 . 출처:크리스타니티 '아름다운 사람' 4월호

평양과기대(PUST)란 무엇인가?

:Pyongyang University of Science & Technology

 

중국 연변에 연변과기대(YUST)를 설립해 성공적인 중외 합작교육기관으로

반전시킨 바 있던 (사)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북한 정부와 공식적으로

 합의(2001년 3월 1일)하여 평양에 세우는 최초의 남북합작 국제대학이다.

2005년 현재 평양시 낙랑구역 승리동 부지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마다

북한의 엘리트 청년들이 입학하게 될 평양과기대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명 석학들이 교수진으로 일하게 되는데, 그들은 각자의 명예와

부를 뒤로하고 오로지 한민족의 화해와 협력, 통일과 부흥의 초석이 될

평양과기대를 위한 한 알의 밀알처럼 헌신하려는 것이다.

 

 

샤마임수도원공동체는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샤/마/임/수/도/원/공/동/체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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