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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상과 성숙 34 / 관상기도의 적용상의 대안

향심기도

by 지심 정경호 2009. 1. 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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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상과 성숙 34 / 관상기도의 적용상의 대안 지붕과 쉼
              # 관상 기도의 적용상의 대안

              관상 기도의 적용의 대안은 매우 광범위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관상의 적용이 한국 개신교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 한국교회가 교회의 성장만을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영혼을 돌보지 않은데서 오는 문제에 기인한다.

              교회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

              즉 교회의 진정한 성장은 개인의 영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문제인 것이다. 교회의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은

              현재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개발되어 있고 쓰여

              지고 있다. 그것은 군중에 대한 교회의 집착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집착으로 인해서 교회의 구성원들은 시끄러운 소음과

              분주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영적 성장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점점

              더 교회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성장을 위한 분주함에서 ‘어떻게

              하면 개인의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는데 있는가?’라는 물음에

              기인한다.

               

              이러한 물음에 답으로서 본 소고는 관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제시에 앞서서 한국교회의 현대 영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성령운동’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성령운동은 문제점들과 교회에

              공헌한 점이 있는데, 복음주의 성령운동의 문제점은 개인적인

              측면, 교회적인 측면, 선교적인 측면, 사회적인 측면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이중의 하나의 예를 살펴보면,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성령운동이 대부분 부흥운동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우상화’를 낳게 했다. 즉 부흥운동은 행동적이고,

              즉각적이며, 개인적인 성향을 띄었는데, 이 운동의 결과로

              부흥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시킬 수 있었으나 동시에

              개인적인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상도 일어나게 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측면은 ‘개인의 우상화’를 낳게 했다는데

              중요한 점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능력으로 인해서 특정한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자리를 탐했으며,

              그것을 비전 삼으면서 군중을 많이 모는 자가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역자’라는 생각들을 낳게 된 것이다.

               

              반대로 성령의 운동은 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성장은

              문제점을 낳게 되었는데, 그것은 교회의 ‘독단주의’이다.

              독단주의는 의견에 대한 불일치나 의심을 허락지 않는 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독단주의는 확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신앙생활 속에서 발생되는 의심과 회의에 대한 생각들을

              억압하여 무의식에 넣게 되는 문제로 인해 신앙상의 문제점을

              발생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체험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가져와서 마치 체험이 영성의 모든 것이 되는 것과 같은 착각을

              가지게 했다. 이것은 은사주의의 등장이 있게 했고 본 소고에서

              말한 대로 ’기복신앙‘과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본질을 회손

              시키게 되는 일들이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의 기복적

              축복신앙과 군중에 대한 집착은 외적인 모습에 집착하는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갖추게 했으며, 내적인 면에서의 성화와 함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영적 성숙’의 문제를 소홀히

              하게 되는 역기능을 낳게 했다. 이것은 ‘거짓자아’를 통한 ‘우상’,

              즉 거짓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문제로 심각하게 남아있음을 현

              교회는 직시해야 한다.

               

              반대로 가톨릭은 개신교와 같이 뚜렷한 양적인 교회의 성장은

              없었지만, 계속적으로 내적인 성장을 추구했고, 많은 영성의

              훈련을 통해서 신자 개인의 내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왔다. 단적인 예로 『무지의 구름』이라는 책은

              영국의 성공회 전통에 서 있는 책인데, 가톨릭의 몇몇의 신부들을

              중심으로 관상기도의 방법을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가톨릭 내에서는 ‘관상’이라는 기도의 방법이 대단히

              성행하고 있고, 뿐만 아니라 본 소고에서 이야기하는 ‘거룩한 독서’,

              또한 ‘이냐시오 영신수련’ 등의 ‘피정’과 이에 대한 ‘영적 지도’를

              통해서 올바른 영성과 삶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개신교의 영성수련은

              기도원이나 수양관이라는 집회의 장소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수많은 군중의 소집으로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에 대한 진단과

              해답을 얻게 하는 게 아닌, 기복적인 또는 샤마니즘적인 기도를 낳게

              하는데 비해서, 가톨릭은 꾸준하게 ‘수도원’을 통해서 신자들을

              교육시키고 영성수련을 행하여 왔다. 수도원의 내적인 지향은

              침묵과 더불어서 골방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진정한

              ‘하나님 현존의 체험’이 있게 하는데, 이 현존의 체험은 생활 속에서의

              성령의 참다운 열매를 맺게 함으로 가톨릭은 현 사회의 인정을 받게

              되는 인식을 얻게 되었다.

               

              현 한국 개신교는 이와 같이 현 교회의 거짓 신앙에 대하여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 개혁은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허상을 바라보고 표면적인 면만을 바라보고 있는 교회에 진정한

              ‘영적 성장’을 줄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의 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

              본 소고에서는 관상의 적용의 대안 점으로 첫째, 침묵 수련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늘려나가야 하며, 둘째, 신학교의 신학생들에

              대한 관상 훈련과 셋째, 한국교회를 뒤덮고 있는 제자양육에

              관상 수련을 첨가하고, 넷째, 영적인 현상에 대하여 올바른

              지도를 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의 양성을 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관상은 허상에 불과한 거짓자아를 죽이는 효과가 있으며

              종국에는 하나님과의 일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생활 속에서

              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관상의 수련을 통해서 많은 부분에서

              우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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