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목제의 요제, 거제물을 거룩하게 하라! 샬롬^^ 오늘도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어제는 제게 기쁜 날이었습니다. 대심방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제 조그만 기도에 응답하셔서 '살 수 있는 길'을 잠시 보여주신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던가요! 그래서 인생이겠지요.ㅎㅎ 참 재미있는 인생의 묘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주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주님은 여전히 역사하시고, 주님은 여전히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사회는 그 구조가 모순 투성이로 되어 있습니다. 잘 사는 자들을 위해서 못 사는 자들을 더 못살게 합니다. '큰 기업이 살아야 전체 국민이 잘 산다'라고 거짓말도 합니다. 왜냐하면 큰 기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잘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힘은 국가의 힘을 능가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요즘 제 마음에 '국가가 기업에 아부하는 꼴'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봅니다.ㅎㅎ 경제도 정치도 전혀 알지 못하는 작은 자의 생각일 뿐임을 먼저 전제하면서 생각을 나누어 봅니다. 그런데 구약성서를 읽다보면 지금 현대의 국가 시스템보다 더 치밀하고 공평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말씀들을 보게 됩니다. 분배의 몫을 분명하게 구분하시는 말씀들 앞에서 '탄성'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현대는 매우합리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간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의 머리는 하나님의 지혜의 한 부분에도 못미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묵상은 출애굽기 29장 23-28절 말씀입니다.^^ 23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개와 기름 바른 과자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가져다가 24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를 삼을지며 25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26 너는 아론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것이 네 분깃이니라 27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28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니라 오늘 묵상은 어쩌면 오늘날 이 땅의 교회를 향한 쓴소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쉽지 않은 부분이라 묵상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비우면서 다시 한 번 정리하여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요제는 흔들어 주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거제는 제물을 높이 들어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입니다.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요제와 거제의 제물은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이 몫에 대해서는 어떤 이스라엘 백성들도 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레위지파는 '땅'을 분배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몫이 바로 제사장의 '기업'으로 분배가 되었습니다. 바로 제사장을 이루는 지파의 기업은 하나님이었고,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요제와 거제물, 화목제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몫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품삯'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은 이것들을 통해서 제사장이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고 살게 하셨는데, 이 부분에서 특별히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것들을 통해서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 교회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허락된 체계입니다. 레위지파에게 허락되는 것은 '거룩하게 한' 요제와 거제물이어야만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의 몫은 이처럼 거룩한 것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것이 이들의 몫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제사장의 몫, 목회자의 몫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목회자 생활의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옛날처럼 '먹을 것'이 없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옛날보다 더 심각하지 않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나가는 쪽지 한 면에 지금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 하나를 나누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교회 초창기 선교사님들이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실수 한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분들은 '황제에 가까운 생활'을 한국 땅에서 누렸습니다. 그러나 한국 현지인 교회들의 비참함은 '독립'이라는 주제 하에 방치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배를 곪아가며 목회했습니다. 배고픈 목회! 그리고 지금 50-60대의 목사님들은 황금기의 부흥을 맛보며 목회했습니다. 동시에 그 밑에 있는 일명 '부목사(원래 부목사라는 직함은 없습니다. 모두 목사이겠지요. 다만 '부교역자'라는 말은 맞습니다)'님들은 교회 사역 속에서 매달 매달 자신들의 '사역이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고민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엘리야의 까마귀가 얼어 죽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엘리야'가 아니라는 사실도 회피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요제'와 '거제'는 제사장들의 몫이었듯이, 이제 한국교회는 이들을 돌아볼 때가 되었지 않을까요? 사역자들의 대부분의 모습들을 보면, 이들은 빚을 내서 공부하고 지금도 빚을 갚으며 한발 한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교회'는 '절망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사역을 포기하면 살 것 같은 유혹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목사가 뭐 돈이 필요있어?"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요제와 거제'를 거룩하게 해서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분들은 '목사가 제사장인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약과 신약은 전혀 상관성이 없는 것일까요?^^ 구약이 필요 없으면 '기독교'는 '아무것도 아닌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오늘 묵상하다가 혼자 열불이 났나 봅니다. 용서를 빕니다. 다만 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잘못된 제도나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무도 힘들어 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면서, 오늘 '화목제의 요제와 거제물' 앞에서 제 자신부터 거룩하지 못한 모습에 회개하면서, 주님께 이 땅의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샬롬^^ 어느 날 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샤마임 출판신청 일백교회,일백선교200원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