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찰의 눈!
샬롬^^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은혜를 통해서 함께~~^^
한 주간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평상시 갖지 못했던 여유로움이 생겨나고, 그 여유를 통해서 더 폭넓은 경험과 느낌들을 갖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세상은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과 죽음!' 삶이 풍요롭기를 원하는 인류의 바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문제 앞에서 고뇌하는 인류의 절박함들이 그들의 예술로 승화하는 모습은 찬란하다기보다는 인류의 몸부림이요 비장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절규가 없이 어떻게 예술이 탄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보면 예술은 결국 삶과 죽음의 고뇌라고 보아야하나요?^^
오늘 묵상은 마태복음 6장 22-24절 말씀입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 말씀에 보면,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눈이 몸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보여야 행하는 것이겠지요. 보이지 않으면 취할 수 없는 것이요, 보이는 것은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눈을 몸의 등불로 비유하시면서 "빛과 어둠"을 이야기하시는 것일까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을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이 눈은 우리의 단순한 '시력'을 허락하는 육체의 눈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통찰하는 통찰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통찰력, 그리고 세상을 바라볼 때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진 그 무엇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눈'입니다. '통찰의 눈!'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됩니다. 그것은 이 눈을 갖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어떻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참된 안목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하나님이냐 재물이냐'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통찰하는 새로운 눈이 허락됩니다. 그러나 재물을 선택하면, 재물은 '물질'이며, '피조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묻혀지게 되어서 세상을 통찰하는 것이 아닌, 세상 속에 파묻히게 될 뿐입니다. 결국 눈이 어둡다는 것은 '재물'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세상은 지금까지 '풍요의 신'인 '재물'을 선택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사라졌고 영적 어두움 만이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나의 눈에 등불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어둠 속에서 헤매는 길을 걸어갈 것인가? 이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둠을 비추는 눈'이 없으면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알과 아세라'를 선택해봐야 결국은 '심판과 죽음'이 있을 뿐이지 않습니까?^^
어느 날 지심
ⓞ지심 정경호 words more... 샤마임 출판신청 일백교회,일백선교200원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