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심기도에서의 의지와 지향
강병찬 목사
향심 기도는 기도 중에 끊임없이 찾아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방해는 우리의 생각, 상상력, 관심, 기호, 잡음 등을 흘려 버리고 우리의 의지를 우리 안에 존재해 계시는 하나님께로 지향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리라고 믿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갈 지향을 갖는다. 관념이나 느낌으로가 아니라 순수한 믿음으로 스스로를 하나님께 열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문을 아주 부드럽게 노크하는 것과 같다. 이 문은 상대 쪽에서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무제한 기다림의 게임이다. 이 기도는 기대하는 것이 아니요 떠나 버리는 훈련이다.
향심기도는 모든 감각을 지나가게 하는 훈련인데 그 감각한 내용을 밀어내거나 언짢게 여기지 않고 그냥 떠나 보냄으로써 하는 것이다.
더 깊은 주의에 이르른 것은 사고를 덜 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이런 때에 기도자는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이른 것이다.
이 기도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영상도 사고로 간주한다. 상상이나 기억이나 추리 등이나 어떠한 감각에서 일어나는 감각 행위는 모두 사고이다. 흐르는 강의 표면에 흐르는 것들에 주의를 주지 말고 그 강 자체에 주의 주는 것이다.
향심 기도는 하나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고 하나님의 활동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령은 기본적으로 치유적이라는 특성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우리가 병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건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성령의 의료적인 활동(고전적으로는 이것을 정화이라고 부른다.)에 부딪히면 우리는 아마 대단히 놀랄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 안에서 쉴 때에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어떤 행복한 고요를 경험하는 대신에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강한 정서나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은 거친 움직임에 부딪치기도 한다. 어떤 진료는 매우 고통스러울 수가 있는데 이것은 의사가 우리의 고통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이 심각해서 그러한 심각한 치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적으로 더 적응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팔에 안겨 자신이 쉬고 있다는 영상이나 하나님의 사랑하는 눈빛 안에 머물고 있다는 영상을 쓰기를 더 좋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징은 단지 우리의 지향을 나타내려고 사용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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