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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관상 기도를 통한 영적 성숙에 대한 연구 26/ 향심기도(상징으로서의 거룩한 단어)

향심기도

by 지심 정경호 2006. 5. 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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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으로서의 거룩한 단어

                                                                                              강병찬 목사

 거룩한 단어는 우리의 헛된 집착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현존의 곳으로 향하도록 지향하게 하는 도구이며 활시위가 당겨져서 목표물을 향하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끌어 당기시는 그 분에게로 나의 의지를 끌어가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교제를 하도록 안내하는 안내자인 것이다.

 거룩한 단어는 어떠한 것을 선택하였든지 관계없이 거룩하다. 그 이유는 그 단어의 뜻이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지향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단어는 절대 신비이며 당신 안에 머물고 계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드린다는 기도자의 지향을 나타낸다.

   거룩한 단어는 기도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나 화살표이다. 또한 이것은 마음의 집착을 흘러 내보내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드리고 그분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지향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거룩한 단어는 기도자 자신의 원천으로 파고들 수 있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거짓 자아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또 거짓 자아가 관심을 갖는 것, 그리고 그 거짓 자아를 자극하고 강화 시키는 세속적인 것들과도 동일시한다.

  인간의 의지는 무한한 사랑으로 향하고, 인간의 마음은 무한한 진리로 향하도록 만들어진 만큼, 아무 것도 이것을 막지 않는다면 의지와 마음은 사랑과 진리로 향하도록 되어 있다.

  거룩한 단어는 여러 가지 사고들을 줄여서 하나님께 열어 드린다는 하나의 생각으로 집약시키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곳, 즉 영적인 영역으로 우리 자신이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조건이다.

 하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내적 체험을 갖고 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 모든 사건들, 그리고 모든 자연들 속에 계신 그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때에 우리는 어떠한 외적인 감각으로 그리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의 일치를 즐기는 체험을 갖게 된다.


 어떻게 거룩한 단어가 작용하는가?

 거룩한 단어는 당신이 내면의 수준에서 생각하는 단순한 사고이다. 단어의 단계에서 넘어서 순수한 인식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내면화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듣는 말씀들을 넘어가서 그분과의 일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향심 기도를 하려고 앉아서 거룩한 단어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룩한 단어를 넘어서 그 단어가 지향하는 분, 즉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관념도 넘어서, 절대 신비이신 하나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를 당신께 끌어 당기고 계신다. 하나님의 현존에 동의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그분의 현존이다. 이 기도의 목적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끊임없이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접촉을 이루려는 데 있다.

 만일 당신이 새 친구를 정규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면 빠르게 서로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도를 하루에 두 번, 아침 일찍 한 번 그리고 저녁 식사 전에 한 번 할 것을 권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장기적 목표를 하나님과의 우정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에 둔다면 별 재미없게 느끼는 기도의 시간도 당신을 부담스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전 기도 시간 동안 사고의 물결이 끊임없이 몰려오면 어떻게 하나?


 상상은 영구히 작동하는 인간의 기능이기 때문에 언제나 상상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하나님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하나님께서 늘 편안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좋은 길로 당신을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신뢰하여야 한다.

 사고들이 지나가 버리면 거룩한 단어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기본 법칙은 강 위에 떠가는 모든 사고들을 떠  내려 보내는 것이다.

  초기에는 거룩한 단어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그 지향을 유지하기 어렵다. 향심 기도에서 당신이 어떤 다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알아차렸을 때에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간다.

  거룩한 단어의 의미나 그 단어로부터 오는 반향 같은 것을 알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거룩한 단어는 하나의 몸짓으로서 당신의 지향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지향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다.

 거룩한 단어는 내적 침묵에 이르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므로 당신이 어떠한 생각도 넘어서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현존 안으로 일단 들어가면, 거룩한 단어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다.

  거룩한 단어는 오직 상징일 뿐이다. 우리의 의지가 향하는 곳을 가리키는 지침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우리의 몸짓이며 표시이다.

 향심 기도의 기본적인 초점은 신인적 존재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더 깊게 하려는 것이다.

  성령께서 당신의 기도를 더욱더 이끌어 가면서 당신은 아주 순수한 의식으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 순수한 의식은 당신의 참 자아를 바라보는 하나의 직관이다. 이 세상에서는 순수한 믿음으로가 아니고는 하나님을 곧바로 아는 길 이 없다.

 성령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지만, 언제나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그들이 하나님과 더 좋은 의사 소통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데, 이 의사 소통은 심리적 기능으로 하는 인식의 영역을 넘은 것이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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