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 자아와 향심 기도
강병찬 목사
거짓된 자아란 곧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착각으로서, 뇌나 신경조직 속에 저장되어 있는 습관적 행동형태와 정서적 습관들이 쌓인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그것들은 인생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어떤 상황에 부딪칠때 컴퓨터 단추를 누르면 일어나듯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
인간의 생애에 발달 과정이 있다는 것은 지난 100년 동안 아주 잘 알려져 왔고 이것은 영적 여정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개인적인 역사는 우리의 뇌나 신경 세포의 생물적 컴퓨터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의 기억 저장소에는 우리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특히 강한 정서적인 성격을 띠는 것들이 모두 저장되어 있다.
우리가 이성(異性)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사색적인 자아 의식이 완전히 발달하게 되는 12, 13세경에는 아동기 또는 그 이전에 유아기 때의 판단에 기초를 둔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이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유아는 태중에 있을 때, 그 환경이 매우 훌륭하여 모든 욕구가 충족되고 완전한 안전을 느꼈었다. 새로운 환경은 그 태중의 훌륭한 환경과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유아의 전 관심은 즉각적인 욕구 충족이며 음식과 더불어 가장 큰 욕구는 애정이다.
아기가 자기를 환영하지 않는 환경으로 들어가게 되거나, 그의 출생을 주저하는 경험은 삶이 주는 모험을 받아들이는 데 대해 정서적으로 주저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그 아기의 중요한 욕구인 안전에 대한 생물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년째에 접어들면서 아기는 다양한 정서가 발전되어 즐거움과 애정, 자기 존중에 대한 욕구들도 경험하게 된다. 이 때에 아기는 부모나 다른 식구들로부터 그 이전보다도 더욱 따뜻한 사랑과 감싸줌을 필요로 하게 된다.
생물적인 생존에 필요한 욕구 중의 어느 하나가 다른 형제들과의 경쟁이나 위험한 환경에 부딪쳐서 충족되지 않음을 지각하면 인생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정서적으로 동의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때, 그 아이의 연약한 정서적 삶은 본능적 욕구의 죄절을 극복하기 위해 보상적 욕구를 발전시키거나, 아니면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무의식 속으로 눌러 넣어 버린다. 우리는 어리 적의 이러한 사건들을 기억 하지 못할 수 있지만 우리의 정서는 기억한다.
안전이 결핍된 것을 느꼈을 경우, 우리가 자라난 그 문화에 특징적으로 존재하는 안전의 상징이 아주 커다란 매력을 갖게 만든다. 우리의 이성이 활동하기 훨씬 전에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발전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어떤 사건 때문에 좌절되었을 때에, 우리가 만약 원하는 안전의 상징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비탄, 분노, 질투, 등의 괴로운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4세에서 8세 사이의 사회화 과정 중에, 부모와 선생과 동료 그룹의 가치관을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특정 그룹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에 따라 우리의 집단 동일시나 자아 가치관을 형성한다.
어렸을 때 만들어진 행복을 위한 프로그램이 이미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성인으로서의 행복의 추구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린애 같은 기대를 가지고 계획되는 경향이 있다.
정서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무의식은 기억하고 있다. 그것들은 신체 속에 저장되어 있다. 신체는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은 정서적 에너지를 저장하는 창고이다. 그 결과로, 어떤 사람은 신체와 신경계통에 에너지가 건강하게 흐르는 것을 막아 버린다. 이것은 다시 그 아픔을 감추기 위하여 보상적 활동을 더 강하게 한다. 중독이란 자신이 직면하기를 원치 않는 정서적 아픔에서 자신의 의식을 분산시키는 궁극적인 방법이다. 영적 여정은 인격성장의 한 과정이며, 이 여정은 신성한 정신치료의 한 형태이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보통 신체와 정서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수준에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강한 각각의 수준에는 우리의 기억 저장소에 미리 녹음된 끝없는 비평이 그것과 상응하게 저장되어 있다. 강한 정서가 일어나면 그 사람은 즉시 솟구치는 비평에 사로잡혀서 그 비평들은 평화와 고요와 초연함에서 더욱 멀어지고 그래서 관상을 요구하게 된다.
향심기도가 하는 실제의 일은 하나님의 현존에 동의하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심리적인 내용과 함께 현재의 순간을 떠나 보내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취약하며 행복을 위한 정서 프로그램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어느 때이고 원래의 지향-즉 우리 안에 하나님이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것에 동의한다는 지향-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어떤 방법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수련을 하면, 우리는 즉시 떠나 보내는 것이 수월해진다. 그러면 우리는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가는 데 이 무지의 구름은 조그만 동의의 행동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발전되는 것이다.
관상기도로 성령은 자아 중심적 성향의 뿌리를 치유해 주며 우리의 의식 활동의 원천이 된다. 거짓 자아가 아니라 성령의 영향 아래 자발적으로 행동하려면 과거의 정서적 프로그램은 지워지고 대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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