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찬 목사
신적인 일치(Divine union)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표이다.
향심기도는 관상기도로 들어가는 데에 일어나는 장애를 줄이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신중하게 마련된 방법은 관상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제공한다. 만일 관상 기도로 이끌어 가는 방법도 관상기도의 일부라고 그 뜻을 확장 해석한다면, 향심기도는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한 단계 한 단계씩 오르는 관상기도의 사다리에서 제일 첫 번째 다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향심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직관력을 세련시켜 관상기도로 쉽게 들어가게 하는 방법이다.
관상기도로서 유익을 얻으려면 심령과 신경조직에 어느 수준의 내적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항생제를 먹을 때 약물로 효과를 보기위해서는 적당량의 항생제를 먹어어야 하는 것과 같다. 또 질병을 이기기 위해서 핏속에 요구되는 양만큼의 항생제가 들어 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수련으로서의 향심기도는 우리의 정신 집중이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의 흐름에서부터 빠져 나오도록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사고의 흐름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핵심적이고 깊은 자아의 다른 부분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기도는 우리의 의식을 우리 존재의 영적 수준에 열도록 하는 것이다. 이 수준을 우리의 기억, 상상, 감정, 내적 체험, 외부 사물의 인식, 등과 같이 것이 떠 있는 큰 강으로 비유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적인 사고와 감정에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정신적 현상들이 솟아나는 그 원천을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이 수준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가 이 수준의 의식을 개발하기 위하여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심령 위를 떠내려가는 가치들보다도 내적 수준에서 발견하는 가치가 우리에게는 더욱 기쁨을 주는 가치들이다.
우리에게 신체 훈련, 음식, 후식, 수면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지로 내적 침묵의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침묵이 우리에게 가장 깊은 새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향심기도의 방법은 기도 중에 일어나는 어떠한 사고 심지어 아주 신앙심 깊은 사고라 할지라도 떠 내려 보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심기도는 스위치를 켜듯 하나님의 현존을 켜는 방법이 아니고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달렸다.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 드리는 것이며, 그 결과를 결정하는 이는 하나님이다.
[스크랩] 참자아, 거짓자아 - 서문 1 / 바실 페닝턴 (0) | 2007.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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