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록 서투르지만 흔연한 자세로
내 나름의 길을 걸어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네 가지 종류 또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번한' 삶과 '특수한' 삶,
'고독한' 삶, 그리고 '완전한' 삶입니다.
이 중 세 가지는 현세에서 시작하여
현세에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삶은 하나님 은총에
힘입어 이승에서 시작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천상에서도
언제까지나 이어지게 됩니다"
-무지의 구름-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삶의 형태
생각과 나눔 / 지붕과 쉼
무지의 구름의 대작에 대하여 감히 해석하고 탐구한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 벅찬 일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깊은 관상의 세계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때 그때 묵상을
정리해가려고 합니다. 다만, 잘못된 생각이 우리의 지향의 방향에
분심이 될까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펜을 잡아 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곳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묵상과 명상의 경험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하나님 안에서 나의 벗에게 라는 처음 시작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형태의 삶에 대한 저자의 말을 접하게 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스도교에 영성이라는 것이
깊이가 있는 것일까요? 타종교에 비해서 너무 얇팍하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처음 메마름을 겪으며 하는 말 같습니다.
타종교에는 수행의 깊이가 있는 것 같은데, 기독교에는 없다는 식의
발상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타종교의 영성의 깊이를 초월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와 타종교의 무는 그 차원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러한 질문들의 발생은 '평범한 삶'에서 '특수한 삶'으로의 초대
뒤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삶은 세상과 짝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쪽 발은 세상에 두고, 한쪽 발은 교회에 두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은 특별히 이런 어린신자들에게 세상으로 가지 못하도록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이제 주님의 세계에 눈을 막 뜨면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의 응답 후에 성령의 체험이 있게 되면서,
흔히 말하는 '성령의 충만'을 체험하게 되지요.
그런 충만이 일년 365일 계속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순간 영의 메마름을 경험하게 되면서
답답함과 무미건조함 앞에서, 더 이상의 깊은 세계에 대한
무관심이 증폭되게 됩니다.
우리는 이같은 시기가 가장 축복된 시기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이같은 시기에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되기 시작할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헨리 나웬이 말한 것처럼
외로움이 고독으로 바뀔때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성령의 세계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삶을 '고독한 삶'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독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합일을 사모하는
'관상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자신의 아집으로 눈이 멀었던 것이
이제 정화의 길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완전한 삶'을 향한 새로운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겠지요.
관상 세계에서 새롭게 보여지는 하나님나라의 확실한
체험의 세계는 우리의 영혼이 가난함과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짐을 통해서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겸손의 길'이겠지요.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는 즐겁고 복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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