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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상과 성숙 25-향심기도의 의지와 지향

영성에 대한 생각들

by 지심 정경호 2007. 9. 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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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향기마을

Lectio Divina / 관상과 성숙 25- 향심기도의 의지와 지향

# 향심 기도의 의지와 지향.

 

향심 기도는 주의(注意, attention)하는 것이 아닌 지향(志向, intention)하는

기도이다. 즉 이 기도의 기본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계시다는 순수한 믿음으로 지향하는 기도로서 관념이나 느낌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향심 기도의 목적은 우리 존재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주관하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활동하심에 접촉하려는데 두기 때문이다.

 

관상기도의 핵심은 순수한 믿음으로 움직이는 것에 있는데, 이러한 순수한 믿음은

향심 기도에서는 단순한 종류의 주의를 통해서 성령께서 기도를 이끌어 가면서

순수한 의식으로 이끌려 가게 되며, 이것은 순수한 의식이 참자아를 바라보는

하나의 직관(直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을 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의 지적 능력이 아니다.

지향에는 의지의 작용이 필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깊은 친밀함의 수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현존하심과 접촉하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기능들은 이러한 접촉의 경험에 대하여 해석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작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지는 받아들이는 일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관상기도의 으뜸가는 일로써, 그 어떤 기능도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없는 것이다. 즉 향심 기도는 이러한 의지의 역할을 이용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열어 드리는 기도의 방법인 것이다. 이렇듯이 의지는 하나님께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버릇을 길러주는데, 이러한 받아들임의 습관은

성령의 활동하시고 이끄심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증가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지를 ‘적나라한 의지’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의 목표로써, 기도자가 모든 감각의 맛을 다

잃어버린 후에도 의지만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지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을 열어드리는 것을 ‘지향’이라고 한다.

이러한 지향은 매우 수용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수용적인 수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지향은 의지의 선택의 기능을 계발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말은 바로 의지는 영적인 사랑을 하는 기능으로써, 이 기능은 선택을 함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이 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의지의

선택은 지속적으로 자아포기를 선택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랑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시는 사랑의 관심을 다른 것들에게도 가지신다는 그분의 태도를

기도 안에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열어드리는 믿음의 지향이 우리 안에 있을 때

다가오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내면세계의 여정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일상적 사고(思考)가 우리 의식을 후면으로 물러가게 하는데, 이때 우리의

주의는 그러한 사고에 집착하게 되고, 이러한 사고는 ‘의식의 강’1)이라는

물줄기의 흐름에 떠내려가게 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지향이란 바로

그러한 의식의 강에 떠 있는 배에 사로잡힌 의식을 다시 강의 깊은 곳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열망하는 것2)을 말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강의 보이지 않는 곳을 끊임없이 지향해야 하는 가운데서 아무리

보아도 강의 물 속은 보이지 않음으로 끊임없는 지향을 위해서는 ‘믿음’이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여기에서 지향의 수련을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의식은 성령께서 우리를

향하여 움직여 오신다는 것을 알뿐이고, 이러한 지향의 습관 속에서 하나님

안에서의 쉼을 누리게 됨을 느낄 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우리의 지성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의지는 지성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한한 진리도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러한

사랑의 능력은 관상의 기도에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지의 지향이 관상에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고자 할 때 이것을 훼방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성들의 기능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분심(혹은 사고)들이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게 되면 쉽게 지향의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 보편적인 우리의 의식의 성향이기에, 이때 다시 지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거룩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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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서 의식의 강이라는 표현은, 내면의 세계를 프로이드가 이야기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설명할 때 쓰는 ‘빙산의 일각’과 비슷한 것으로써, 의식의

강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현존이 있고, 그리고 그 안에 참 자아가 있는데,

리의 의식이 일상적 사고에 집착하게 되고 사로잡히게 되면 의식의 강 위에

떠 있는 ‘사고의 배’들에 우리의 의식이 실려서 하나님의 현존과 멀어지게 됨으로써

분심에 사로잡히게 되어서 관상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게 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2) 의지는 선이 이성에 의해서 통과된 후에 그 선을 취하게 하는 기능으로써, 이 기능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그것을 동의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인간의 범죄 전에는 오류가 없는

선택으로 인해서 완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이러한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의지의 지향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지향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는 열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샤마임 수도원 공동체
글쓴이 : 지붕과 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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