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결이 아닌 공평의 원칙
샬롬^^
오늘도 주님의 축복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면 우리는 인내하고 깊은 침묵 속에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 제게는 하나님의 허락하시는 시간의 때인것 같습니다. 14여년 인내하며 준비하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오랜 기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서 허탈해 하기도하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흘러가는데로 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기다림은 지금 제게 너무 큰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파라처치'의 '샤마임'은 이제 서서히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쉼 없이 그리고 단단하게 그 중심을 잡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기억합니다. 이 역사는 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것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일임을 말입니다. 샤마임의 '멘토링 소그룹 모임'이 하나 둘 씩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샤마임 의료선교'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샤마임 농촌선교'와 '샤마임 단기선교(의료선교)'의 시작을 통해서 '파라처치'로써 '로컬 처치'의 가치를 더 높게 만드는 역사를 저는 기대합니다.^^(참고로 파라처치는 세상과 소통하는 교회의 모습을 말합니다. '파라'는 '밖에' 혹은 '반대편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CCC, YM, IVP, 두란노 등등이 있습니다. 물론 '파라처치'는 '로컬처지'(정통적인 교회)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파라처치는 교회와 세상의 소통의 통로와 같은 구실을 합니다. 샤마임 영성 공동체 또한 '파라처치'로써 로컬 처치를 섬기는 처치입니다^^.)
오늘 묵상은 출애굽기 23장 1-3절 말씀입니다.&^^
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현대 사회는 '다수결의 원칙'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옳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옳은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람을 원합니다라는 의미로 '선거'를 치루면, 그 사람이 사회의 공인이 됩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많은 부분에서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원칙이 모든 면에서 다 옳은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의 부분에 있어서, 그리고 '공평과 정의'의 부분에 있어서는 '다수결의 원칙'은 '악'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나찌즘의 폐해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모든 독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다수결의 힘'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거센 다수결의 힘에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 등의 사람들이 저항했습니다. 이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전쟁이 끝나고 다수의 독일인들의 판단이 틀렸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옳은 것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은혜는 "다수를 따라"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다수가 '악'을 선이라 주장한다고 해서 그 일에 휩쓸리지 말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거짓'으로부터 벗어나는 삶, 그리고 '악인과 연합'하는 일로부터 벗어나는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시는 '경건의 모습'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거짓과 악의 연합과 편벽된 두둔'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간혹 사탄은 '가난한 자'들의 모든 것이 옳다는 식의 논리로 우리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가난한 자'라고 해서 그가 '선'한 것은 아님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들 삶의 '악함'을 두둔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악'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수결의 인식'이 비록 우리로 '악'을 '선'으로 둔갑시키려 할지라도 말씀 앞에서 '악'한 것이면 우리는 멀리하고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의 기준은 말씀 앞에서 '다수결이 아닌 공평의 원칙'이 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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