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영혼 위에~^^
어제는 두 분의 목회자 부부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들이라 감사하기도 했지만 하루 온 종일의 시간들에 대해서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분들의 위로와 힘이 저희 부부에게는 상당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만남의 시간에 처음 경험하는 하루 온종일의 시간은 마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시간 같았습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참된 코이노니아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와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성도와 성도의 만남을 통해서 코이노니아의 영성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어제는 코이노니아의 새로운 깨달음을 체험하는 하루의 삶을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오늘 묵상은 사사기 6장 11-14절 말씀입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을 바라봅니다. 기드운은 그곳에서 밀을 포도주 틀이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그 당시 미디단의 압제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게 하는 모습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밀을 포도주 틀에 타작하고 있는 모습은 이스라엘 사라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게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다가와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놀라운 메시지에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묻습니다.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13)"라고 탄원합니다. 자신 안에 용맹성이 있었던 기드온 다운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현실은 너무도 냉혹했고 하나님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어쩌면 당연히 하게 될 질문이요 탄식의 내용이 기드온의 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 것이 아니냐(14)"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로 놀라게 하는 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하셨지만, 곧 그가 말하는 바는 여호와의 말씀이셨음을 알게 되는 대목입니다. 왜 이런 기록이 있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본문의 "여호와의 사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13)"라는 말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찌 현실이 이럴 수 있을까요?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를 해도 현실이 변하지 않으며 찬송하고 예배에 집중해도 희망의 길이 보이질 않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함께 하시는데 왜 이렇습니까? 어찌하여 역사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항변하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원망 섞인 말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보내 것이 아니냐(14)"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라는 말에 대해서 '내가 너를'이라는 말씀으로 응답이 임합니다. 지금 현실의 장소에 '나'라는 존재를 그래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응답의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행하는 나의 작은 행동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큰 대승을 거두는 역사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와 함께 행하십니다.
사랑과 자비의 주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가 '내가 너를'이라는 응답으로 우리의 귓가에 들리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믿음을 회복하게 하옵시며, 권능을 발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이름을 주셨사오니,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재창조의 역사를 오늘 우리를 통해서 다시 시작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